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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Sep 28. 2021

잃어버린 집중 존을 찾아서

글을 쓴다는 것


가을이다. 여름과 가을 사이 줄다리기를 하던 9월의 끝 무렵이 되니 하늘은 더 높아졌고 피부에 맞닿는 공기는 청량하기만 하다.

바람결이 솜처럼 보드랍게 다가오는 계절이 내겐 가을이다. 찬 기운은 하나도 없고, 바람과 햇볕은 너울너울 조화로워 가만히 있어도 마음은 풍요롭다. 가을바람에 정서적 안정이 스며드니 매일 걷는 길이 더 애틋해진다.


몇 걸음만 걸어도 비 오듯 흐르던 땀으로 햇살 피하던 여름날을 뒤로하고, 살짝 콧잔등에 땀이 맺히는 정도니 시간만 나면 밖으로 뛰쳐나가는 요즘이다. 봄과 여름엔 그저 몸의 건강을 위해 걷는 날이 많았다. 적당한 온도가 되어야 걸을 수 있는 계절이니 나의 동향보다는 바깥의 동향을 살피는 것이 먼저였다. 가을 아침, 가을 오후, 가을밤. 어느 시점을 갖다 붙여도 좋은 때가 가을이기에 내게 '가을 타나 봐.'는 묶어둔 마음을 풀어 제치고 걷는 것을 의미한다.









하늘에 기대어 행동의 반경을 최대한 좁히고 최소한의 사람과 소통하며 나의 숨소리만 들리던 몇 달이다. 하던 일을 내려놓고 길을 걸으며 난 내가 갖고 있는 문제를 곱씹었다. 

무언가에 집중할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어 마음은 물먹은 하마와 같다. 몸이 생각을 따라가는 건지, 마음이 몸을 따라가는 건지 헷갈린다. 그럴 때는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몸이 먼저 움직이면 일단 생각은 좀 가벼워진다. 


뭔가에 빠져들었다...라는 표현은 집중하는 상태를 일컫는데, 무엇에 빠져들었던 것인지, 아니면 빠져들 뭔가가 없어서 그랬던 것인지 그저 나는 뻗어도 닿을 수 없는 하늘만 바라보며 길을 걷기만 했다. 삶이 등고선처럼 고저가 있듯이 집중력에도 기복이 있나 보다. 어떤 날은 할만했고 살만했는데, 어떤 날은 의욕이 땅거미처럼 가라앉았으니 꽤 긴 시간 동안 효율과 능률은 나와 더 멀어졌다.

그럼에도 툭하면 나는 길을 걸었다. 무언가 집중할 것을 찾지도, 집중해야 할 것에도 빠져들지 못하는 나를 한참 탓했는데, 걷고 또 걸으면서 내게 시간을 준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채찍질이 필요 없다.


비워낼 만큼 비워내면 이것도 넌더리가 나겠지... 하는 배짱으로 흐르는 시간에 기대었다. 의무감으로 걷던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내가 다니는 길에 집중을 하게 된다. 매일 똑같은 길이 매일 다르게 느껴졌다. 날씨에 따라,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따라 단 하루도 같은 형상으로 내게 길을 내주지 않더라. 그 길을 하루에 1만 5 천보씩 꼬박꼬박 걸으면서 안도했다.

이것이 일이라면 좋겠지만, 그래도 걷는 동안 뇌는 다른 감각을 최대한 억제시켰으니 집중하지 못하는 나를 잠시 잊을 수 있었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은 아님을 느꼈다. 

낮엔 파란 하늘에 기대었다면 밤엔 달빛과 별을 벗 삼아 걸었다. 밤낮으로 길을 걸으며 생각했던 것이 있다.


나는 삶의 요소요소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삶의 여정에서 얼마나 감흥할 수 있는가? 나는 나 아닌 다른 어떤 것을 볼 수 있는가? 

일할 힘이 없다고 판단되어 물음표를 던졌는데, 무엇보다 일상에서도 기꺼이 집중하는 것이 부재하다고 느끼니 질문이 꼬리를 문다.

정신적으로 보다 안정되고 이상적인 집중력을 보이는 상태를 존(zone)이라고 하는데, 흔히 이 상태에 접어들면 오로지 일이나 공부에 집중하게 되어 모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무언가에 집중하여 하루를 생산적으로 (꼭 그래야 할까?라고 가끔은 딴죽을 걸지만) 보내려면 환경을 개선하거나 나를 통제 또는 조절하는 능력을 극대화해야 한다. 하지만 몇 달 동안 번아웃과 몸이 통증을 겪고 난 후 내가 놓친 것이 있음을 알았다. 환경 개선이나 나의 조절보다는 내가 언제 심리적으로 안정되며, 어떤 상태로서 글을 쓰고 일을 하며 집중하는지 나의 몸과 마음의 조건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임을 알았다.


저기 작게 보이는 길 끝에서 지난날 글을 쓰며 잠이 드는 내 모습이 스친다. 걷고 생각하기를 밥 먹듯하며, 있던 일을 되새김질하던 날은 키보드 속도가 더 빨라지곤 했다. 


내 몸 상태가 어떠했을까, 기분은 어떠했을까, 그 일과 그 사람에 대한 내 감정은 어떠했을까, 무엇이 내 마음을 건드려서 아직도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것을 머릿속으로만 떠올리지 않고 기록했을 때 수많은 생각과 잡념은 잠시 나를 떠났다. 그게 나의 유일한 집중력이었고, 집중 존이었다. 십여 년간 그렇게 나를 파악하면서 불안하거나 심란하거나 우울할 때도 글을 씀으로써 쉽게 궤도 수정을 할 수 있었다.

왜 지금의 나는 마음으로만 단어를 던지고 있을까.








어느 날 밤, 나는 걷다가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몇 분정도를 달리니 숨이 차고, 호흡이 빨라지는데도 나도 모를 알 수 없는 단어들을 내뱉으며 중얼거린다. 한참을 달리다 멈췄다. 이게 지금의 일일까? 아니었다. 

모든 것을 상실한 것 마냥 삶이 무미건조하다고 여기며 걷던 날이 부지기수였는데, 길 위에서 나는 끊임없이 단어가 뭉게뭉게 떠오르기도, 어떤 날은 투포환 선수가 포물선으로 공을 쏘아 올리듯 나도 저 멀리 보이는 길 끝까지 마음으로 문장을 더듬고 던지고 있었다. 



머릿속과 마음속을 기분 좋은 상태로 만들기 위해 나를 위한 시간을 충실하게 만들었다. 일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의식적인 걷기 행위로 기분을 전환하며. 보다 안정되고 이상적인 평정심을 되찾고 있다.

무작정 걷던 길이 내게 답을 준다. 


여전히 내게 추운 봄을 지나 싱그럽던 여름마저도 흘려보냈으니 이 가을을 잘 타서 이야깃거리가 많은 내가 되길 다시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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