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행복이었던 하늘과 마당과 냥돌이
내내 탈린의 화장 속 다른 모습을 태풍처럼 온몸으로 만나다가
이젠 됐겠지. 싶은 어제는 정말 마주하기 힘든 하루였다. 싶다.
서울보다 인구도 적고, 공기도 좋고, 나무도 많은 탈린.
그러나 인간이라는 동물이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구나...
이 마음에서 조금은 벗어나고, 조금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여전히 그 자리이다.
나 역시 그런 인간이고 완벽한 모순적 인간이므로
그런 인간을 마주하는 것이 너무 버거우니 빨리 숲을 만들어 들어가 은둔하다가
조용히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만 강렬하게 모든 세포를 사로잡는다.
얼마나 더 내려놓아야,
얼마나 더 포기해야 모든 그대로의 모습에 그렇구나. 할 수 있을까.
또 뜬 눈으로 뒤척이다 만난 반가운 아침.
108배를 하며 내려놓는 마음마저 내려놓으려 하고
사과 2알과 오렌지 8알을 배부르게 먹는다.
청소와 정리로 어수선해야 하지만 이 이사는 희한하게 평화롭다.
적게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살면서도 이사 때만 되면
내가 이 많은 것들이 꼭 필요한가. 생각이 복잡하고 마음도 무거웠지만
지금은, 물론 지금 갖고 있는 것들도 계속 반드시 필요의 여부를 매번 고민하기는 하지만
화학제품, 동물실험 제품, 플라스틱, 일회용 제품, 비닐 등을 쓰지 않기 위해
쓰던 것들을 준비해 챙겨온 생필품들이 짐의 절반이 넘기에
이 짐은 내가 선택한 여정에서 최대한 세상에 민폐를 덜 끼치고자 하는, 그래서
감당해야 하는 대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요즘의 냥돌이는 연애 중인 듯하다.
그래서 매일 밥 먹고, 자고 마당에서 온종일 붙박이로 지내더니
자주 자리를 비우고, 자주 움직이고, 처음으로 다른 고양이들이 오고 간다.
냥돌인 줄 알았는데 얘가 저렇게 컸나 싶었더니 다른 고양이인 녀석도 요즘 매일 온다.
갈매기, 까마귀가 매일 와서 냥돌이가 남긴 밥을 먹는 것은 그렇구나 싶은데
이 녀석을 냥돌이 자리를 차리 하려는 것 같다.
매일매일 대치 상황.
매일매일 냥돌이는 도망 다니고, 왕좌를 되찾으려 애쓰지만
다시 뒷걸음질로 도망치다가 자기 자리를 내주고 만다.
그때
까마귀나 갈매기가 옆에 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밥도 빼앗아 먹는다.
세상 편한 팔자고만! 저 냥돌이 녀석. 했었는데
요즘 마당 라이프에서 냥돌이가 가장 고달파 보인다.
내일이면 안녕! 하게 되는
팍팍하고, 짜증 나고, 희비가 지나치게 반복되고, 의문투성이던 탈린 생활에서
매번 행복 안에 다시 들어올 수 있게 해 준
하늘과 구름, 흙, 나무, 풀, 꽃, 까마귀, 참새, 갈매기, 이름 모를 목소리가 아름다운 아침의 새,
냥돌이.
그리고 매일 만나던 길목의 움직이지 않는 벗들.
다시 만나지 못하겠지만
다른 곳의 구름으로부터, 날아다니는 친구들로부터 안부를 전해 듣고, 떠올리게 되겠지.
반드시.
내일은 새벽 1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6시에 헬싱키로 가는 페리를 타고,
헬싱키에서 탐페레 월세집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 일정이다.
탈린 집에서의 마지막 식사로
현미밥을 지어놓고, 토미가 샐러드 채소와 채소 된장국 재료를 손질하고 있는 틈에
탈린 마지막 일기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