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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J Apr 04. 2021

젊은 꼰대

꼰대가 되는 과정

30대에 접어들면서 주변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경험과 성취를 이뤘고, 가족을 이루기도 하고, 직위를 가지기도 하면서, 우리는 꼰대가 되었다. 물론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적어도 어떻게 꼰대가 되어가는지  첫 번째 과정을 봐버렸다.


여느 때와 같이 친구를 만났다. 사람 욕도 하고 회사 욕도 하는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문득 이상했다. 친구네 회사는 그야말로 부당한 회사였다. 다들 윗사람의 말에 순응하고, 잘못된 것을 눈감고, 비효율적인 노동을 감네 했다. 그래서 악에 받혀있는 친구가, 그런 회사를 욕하는 친구가 이해됐다. 근데 친구가 후배한테는 아무것도 해주진 않았다. 뭐지?


회사에 처음 입사해서 몇 년 동안은 (특히 직급을 달기 전까지) 내게 놓인 모든 부당함에 반응한다. 선배들이 일을 열심히 하면 하는 데로 나도 열심히 해야 돼서 부당하고, 일을 안 하면 안 하는 데로 내가 일을 다 해야 돼서 부당하다. 세상의 모든 팀장님들은 일을 못 막아오는 무능력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리고, 내가 신입으로 겪을 모든 부당함을 바로 몇 년 전에 겪어놓고도 입을 닫는 나의 선배들이 이해가 안 된다. 치사한 방관자.


그렇게 몇 년을 견디며 조직에서 살아남으면, 나만의 방식이 생긴다. 선배나 팀장님들, 권력자들과 친하게 지내며 친분으로 헤쳐나가는 사람도 있고, 일을 엄청 열심히 해서 실력으로 헤쳐나가는 사람도 있다. 아니면 투명인간처럼 그림자처럼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슈퍼 오지랖 퍼가 돼서 사내 모든 정보에 빠삭하고, 모든 사람들과 친한 사람도 있다. 잔다르크처럼 영웅이 돼서 내 대에 모든 부당함을 끊어내겠다는 사람도 있다. 어떤 방식이 되었던 내가 선택했던 그 방식은 정답이 된다. 적어도 나에게. 그리고 내 행동을 좋게 보았던 나의 상사와 동료들의 반응은 내 정답의 근거가 된다. 그렇게 완성된 나만의 박힌 돌 되는 정답은 공식이 되어 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눈에 내 정답으로 행동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 특히 후배들을 보고 한심해한다. ‘모르니까 저런다.’라고. 동시에 눈과 귀를 막는다. 나는 정답이기 때문에. 실제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래서 꼰대가 된다. 지금은 20대와, 신입들과 얼마 차이가 없는 몇 년의 선배일 뿐이지만, 이 갭이 커져서, 40대 50대가 되면 우리는 누군가를 이끄는 위치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젊을 때 세운 나의 공식대로 할 것이다. 나를 방해할 윗사람들은 이제 뒷방 늙은이가 되어 있을 테니까. 무섭다. 내가 겪은 경험은 수천수억 개 중 하나의 길이였을 뿐인데, 나의 다음 세대에게 전하게 될 정답이 되어가는 길이 무섭다.


그리고 내가 겪은 부당한 상황이 강하면 강할수록 나는 더 단단한 사고를 가지게 된다. 물렁물렁한 생각으로는 저 부당함을 감당해 낼 수 없다. 내가 무너지던지, 이기고 버텨내던지 둘 중에 하나인 것이다. 그래서 전쟁을 겪은, 독재를 겪은,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더 답답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결론에 이르자 나는 갑자기 슬퍼졌다. 얼마나 억울하고 부당하고 답답했으면, 저렇게 단단한 껍데기로 자신을 보호하고 있을까 싶어서. 아니길 바란다.


그럼 꼰대가 아닌 것은 무엇일까. 10대 20대는 왜 꼰대가 아닐 수 있을까.

그들은 모르기 때문이다. 모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수용할 수 있다. 그것이 꼰대와 아닌 사람의 차이다. 나는 아직 모른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 선배들의 도움을 구하고, 동기들의 경험을 경청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를 모르고, 나한테는 힘이 없고, 나는 답을 찾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경우를 궁금해한다. 본인 스스로 앎을 구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어린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아직 어린 나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배워야 한다는 틀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꼰대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조금 알았다. 그렇다고 해서 꼰대가 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이해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많은 갈등을 빚어낸다. 좀 더 스무스하게 지나길 수 있는 모든 일이 서로 날이 돼서 상대를 벤다. 사회적 꼰대뿐만 아니다. 이 세계에 있는 모든 이데올로기의 싸움에는 나는 정답 너는 오답이라는 확신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긴 이념 싸움을 겪었음에도 확신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 아직 배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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