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
지혜야, 안녕.
오늘은 참 이상한 하루였어.
밖에는 봄 햇살이 포근하게 내리쬐고 있었는데, 집에 들어오자 마음이 묘하게 무겁고 답답했거든.
엄마, 아빠가 큰삼촌 아기 돌잔치 때문에 시골에 가셨어.
하루뿐인데도 집안이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단다.
‘내가 집안일을 다 해낼 수 있을까?’
스스로 묻는 순간, 갑자기 두 어깨가 무거워지는 기분이었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는 엄마 대신 집안일을 시작했어.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동생 학교 준비물인 폐품을 챙겨주고, 도시락까지 쌌단다.
손이 닿는 모든 게 낯설고 버겁기만 했어.
솔직히 말하면, 속으로 이런 생각도 했어.
‘나도 다시 갓난아이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것도 모른 채 울고 웃으며 품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싶더라.
그런데 지혜야,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졌어.
동생이 처음엔 내 말을 안 듣더니 조금씩 따라주기 시작했거든.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뿌듯해졌어.
그래서 스스로에게 말했어.
“나도 제법 잘하네~”
엄마 친구분들이 전화를 주셔서 집안일 요령을 알려주신 것도 큰 힘이 되었어. 그때 깨달았지.
아직 나는 어린아이지만, 동시에 한 발짝 어른으로 나아가고 있구나 하고.
저녁에는 전학 오기 전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어.
얼마나 반갑던지, 귀가 아플 정도로 한참을 떠들었어.
괜히 보고 싶은 마음에 목소리가 떨릴 만큼 설레더라. 그리고 친구에게도 ‘오늘 집안일을 했다~’고 자랑했어. 힘들었지만 참 대견했던 하루였으니까.
그럼 안녕, 지혜야.
내일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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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그날 내가 적어 내려간 일기는 단순히 집안일의 기록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보려 애쓰던 어린 나의 진심이 담겨 있었고, 힘겹지만 그 무게를 견디며 조금씩 단단해지던 나의 마음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삶은 언제나 무겁고 벽처럼 앞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그 벽 앞에서 좌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작더라도 한 발짝 내디뎌보면 알게 된다.
‘나는 생각보다 더 강하구나.
나는 분명 성장하고 있구나.’
그 깨달음이야말로 어린 나에게 찾아온 소중한 선물이었을 것이다.
사실 진짜 벽은 처음부터 없었다.
내가 만든 가짜 벽만 있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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