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지혜야, 안녕.
오랜만에 너를 불러본다.
어젯밤 늦게 서울에 간신히 도착했어.
태풍 '로빈'이 북상하던 그 주,
바다는 검푸르게 요동쳤던 그날,
나는 외갓집에 가 있었단다.
강릉 외갓집에 도착한 첫날부터 비가 내리더니
해수욕장에는 출입금지 표지판이 걸렸어.
바닷물에서 너무나 수영하고 싶었지만,
태풍 때문에 절대 허락되지 않았지.
그렇게 다섯 날 동안, 나는 코앞에 있는 바다에서 발 한 번 담가보지 못하고, 할머니집에서 고립되었어.
그동안 난 할머니가 매끼 차려주신 고봉밥과 맛난 반찬을 먹기만 해서 피둥피둥 살만 더 올랐단다.
수영 대신 나는 멍하니 창밖 바다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어.
심심한 여름방학 같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
태풍이 몰아치고 난 뒤,
세상은 놀라울 만큼 맑았지.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환했고,
파도마다 햇빛이 반짝였어.
그날의 윤슬과 바다 바람을 나는 아직도 기억해.
아마도 그건, 무언가를 이겨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빛이었을 거야.
지혜야,
우린 늘 이럴 때 성장하나 봐.
삶이 우리를 잠시 멈춰 세울 때마다
그 안에서 나를 생각하니깐.
올해 여름,
나는 바다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대신 내 안의 마음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어.
그리고 지금도 내 마음은 점점 자라고 있어.
그럼 안녕.
다음에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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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 여름은 단순히 태풍 때문에 물놀이를 못 한 계절이 아니었어.
세상은 언제나 우리가 원하던 대로 흘러가진 않지만 그 안에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태풍이 지나간 자리엔 언제나 맑은 하늘이 남듯,
삶의 쉼표들은 우리를 멈추게 하지만
결국엔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가게 만든다는 걸
그 여름의 나에게,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다시 한번 알려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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