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우리 아이 영재인가 봐요!

체육영재를 꿈꾸며 아름다운 도전을 했던 딸과 아빠 이야기

by 윤진

아이를 낳고 기르는 부모들은 바보가 된다. 아들 바보, 딸 바보 부모의 전형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 아이만 눈에 들어오고, 아이의 대수롭지 않은 일거수일투족에 기절할 정도로 감탄한다. 둘째, 다른 아이와의 비교과정에서 단지 시간문제일 뿐인 격차를 심각한 우열의 차이로 혼동하고 환호하거나 절망한다. 마지막으로 셋째, 이러한 착각이 반복되면서 급기야 지극히 평범한 우리 아이가 영재라는 확신을 갖는다.


아이를 키우면서 한 번이라도 "우리 아이가 영재가 아닐까?"라는 행복한 상상을 안 해본 부모는 없을 것이다. 나는 우리 아들이 태어난 지 6개월 무렵에 번개처럼 뒤집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격했다. 이 정도 몸놀림이라면 세계적인 레슬링 선수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잔치 날, 예쁘게 차려입은 아들은 두세 발자국만 걸으면 넘어져서 다시 일으켜 줘야 했다. 다른 집 돌잔치에 가니 주인공 아이가 뛰어다니고 있었다.

1970년대에는 우량아 선발대회가 있었다. 토실토실한 건강함과 신속한 기어가기 능력이 영재의 기준이다.


아이는 24개월이 지나면 간단한 문장으로 말을 하기 시작한다. 엄마, 아빠, 맘마 같은 단어만 내뱉던 아이가 주어와 동사를 갖춘 서술체로 뭔가를 표현하고 요구하는 순간의 감격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비슷한 개월 수의 또래 친구네 가족과 여행했는데, 그 집 아이의 문장 구사력이 우리 아이를 압도했다. 뭐가 문제일까, 혹시 우리 아이의 뇌 발달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지금 20살이 된 우리 아이는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와 불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자신의 아이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뛰어난 점이 있다면 당연히 기뻐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착각은 자유라 하더라도, 그저 조금 잘하는 것과 영재급으로 탁월한 능력을 갖춘 것을 혼동하면 안 된다. 특히 요즘에는 학원에서 비즈니스 차원의 영재 양성 프로그램을 남발하고 있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수학영재나 과학영재를 위한 동아리 활동을 장려하는데, 딱히 영재라 부르기에 민망한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우리 주위에는 진정한 영재가 존재한다. 언어, 수학, 과학 등 교과과목에서 압도적인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예체능 분야의 영재들은 조기 발굴을 통한 집중교육이 중요하다.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1%의 영재가 99%의 평범한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 현실이다. 자식바보 부모의 관점이 아니라 정말 냉정하게 보았을 때, 내 아이가 영재라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내가 두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 아이가 진정 영재가 아닐까?"라고 행복한 추측을 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딸이 다니는 유치원에서 가을 체육대회를 개최한다고 하여 나들이 겸 가족 모두 참석했다. 우리 딸이 꼭 와야 한다는 담임교사의 신신당부가 있어서, 뭔 일인가 궁금하기도 했다. 다채로운 행사가 마무리될 즈음, 체육대회의 꽃인 이어달리기가 시작되었고, 나는 내 눈 앞에서 벌어진 엄청난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딸아이는 4명의 계주선수 중 마지막 순서였다. 보통 첫 주자와 마지막 주자가 에이스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내심 기대를 하고 지켜보았다. 하지만 딸이 마지막으로 바통을 건네받았을 때에는 이미 앞서 나가는 팀의 주자와 반 바퀴 이상 차이가 벌어져 있었다. "아쉽네, 실력 발휘도 못하고" 내가 중얼거리고 있는 사이, 딸은 순식간에 선두로 달리던 아이를 따라잡고 1등으로 테이프를 끊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기적이었다. 아내는 학창 시절에 전형적인 운동치였다. 피구를 하면 공이 자기 얼굴에 맞은 후에야 손을 내밀 정도였다고 한다. 나는 아내보다는 운동감각이 있는 편이지만, 워낙 기초체력이 약해서 지구력이 필요한 종목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우리 모두 체육대회 계주대표 근처에도 가지 못했고, 그저 지켜보며 박수만 치는 관객이었다.


그런 부모 밑에서 돌연변이처럼 운동영재가 태어난 것이다. 딸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체육대회 때마다 계주대표로 뽑혀서 반 우승을 이끄는 불꽃 질주를 했다. 피구 시간에 딸의 공에 맞은 남자아이들이 하도 울음을 터트려서 아내가 항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어떤 학부모는 혹시 선행으로 피구 과외를 받았는지 궁금해했다. <피구왕 통키>처럼, 우리 아이는 상대방이 던진 공은 피하지 않고 잡았으며, 한번 공격하면 대여섯 명을 연속으로 아웃시키곤 했다.


불꽃슛의 전설 <피구왕 통키>처럼, 우리 아이의 피구 실력은 또래 중에서 압도적이었다


이 정도면 아빠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딸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전국 단위로 유소년 체육영재를 선발하는 대회가 개최되었다. 당시 문화체육부장관 명의의 큼지막한 신문 광고를 본 나는 즉시 학교 추천서를 받아 참가신청서를 제출했다. 서류전형을 통과한 100여 명의 초등학생들이 서울대학교 실내체육관에 모여 실기 테스트를 실시했다. 나는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관중석에서 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유연성, 순발력, 지구력 등을 점검하기 위한 다양한 세부종목들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 딸은 마지막 인터벌 달리기에서 결국 힘에 부치고 말았다. 전국에서 선발된 내로라하는 체육영재들과 경쟁한 결과, 결국 최종 합격자가 되기에는 2% 부족함을 실감해야 했다. 최선을 다해 도전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깨끗이 포기하는 게 맞다. 비록 국가공인 체육영재는 되지 못했지만, 나와 아내에게 우리 딸은 가문을 빛나게 한 체육영재로 우뚝 서 있다.


딸아이의 폭풍 질주는 중고등학교까지 이어졌다. 중학교 3학년 시절 계주대회에서 질주하고 있는 우리 딸(오렌지색)




아무리 생각해봐도 당신의 아이가 영재인 것 같다면 일단 좀 더 큰 무대에서 실력을 검증받기를 권한다. 지레 위축되어 무한한 가능성을 꽃피우지 못하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은 없다. 그리고 설혹 그 과정에서 현실의 벽에 부딪혀 주저앉더라도 전혀 아쉬울 게 없다. 용기 있는 도전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으며,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미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영재로 태어나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영재는 본인의 노력보다 부모 유전자의 힘이 더 크다. 길고 긴 마라톤과 같은 인생길에서 확실한 무기를 장착했다는 장점은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무기가 녹슬지 않게 꾸준히 관리하고 가치 있는 일에 시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꾸준한 자기 관리와 마인드 컨트롤 속에서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퍼트리는 사람이 진정한 인생 영재다.


영재가 아닌 대다수 사람들 역시 특출 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남들보다 잘할 자신이 있는 종목을 최소한 하나 이상 갖고 있기 마련이다. 본업 속에서 계속 갈고닦는 사람도 있고, 취미활동으로 평생 즐기는 사람도 있다. 만약 이들이 운명처럼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동료와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스승을 만난다면, 게으른 영재를 뛰어넘는 빛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나는 이제 내 아이가 영재가 아닐까 하는 행복한 기대는 접기로 했다. 지금 나와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발상의 전환이다. <이솝우화>의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 같은 궁색함이 없진 않지만, 자기애 강하고 독불장군 같은 영재보다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은 자기 표현력 뛰어난 융합형 배려형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눈부신 영재의 길은 포기했지만, 경청과 발표 능력을 갖춘 21세기형 인재로 우리 아이가 성장해 준다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