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럴라인 냅 지음
‘흐린 데 없이 밝고 환한’ 사람과 ‘세상일을 피하여 숨어 사는’ 사람, 서로 다른 둘이 만나면 어떨까, 둘의 교집합이 가능할까, 물론 인간이라는 것만으로도 할 수 있거나 되는 것이긴 하다.
‘소수의, 말보다는 글, 혼자의, 독립적인’ 따위가 어울리는 나는 나름 명랑하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그 쾌활함을 ‘잘’ 또는 ‘자주’ 드러내지 않는다. 철저하게 편안한 관계가 형성되었을 때 그라데이션처럼 자연스럽게 ‘끼’를 내보일 수 있다.
<명랑한 은둔자>는 상반되는 두 단어의 조합이 어쩜 그리 엄마 같은지 모른다며 딸이 소개를 했다.
혼자 있는 것이 괴롭거나 무섭거나 슬픔에 지쳐 울어야 한다면 고립된 상태지 않을까, 캐럴라인도 고립은 무섭다고 말했다. 홀로 있음을 즐기는, 외롭거나 쓸쓸함을 느끼며 행복할 수 있다면 고독이다.
‘고독에 빠지다’ 이건 중독이다.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고독의 멋짐을 알고 마음 빼앗겨 말려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독을 즐기다' 이것은 스스로의 은둔을 즐기는 멋이다. 드디어 ‘명랑한 은둔자’다.
‘명랑한 은둔자’는 천천히, 아직도 읽고 있다. 그녀의 은둔생활은 방치되어있지 않았다.
“혼자 있다는 것, 그 모든 다양한 형태는 연습이 필요한 기술이다. 고독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돌볼 의욕이 있어야 하고, 자신을 달래고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사교적인 생활을 가꾸는 것도 역시 어려운 일이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기꺼이 취약해질 줄 알아야 한다.”
그녀의 의도와 방식대로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
느리게 읽을 것이다. 세상을 피하여 숨은 그녀를 남몰래 훔쳐볼 때면 소리가 없어야 한다. 살금살금 다가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