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근화 / 차가운 잠
나의 하루는 혼자가 아니고
나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니고
나의 하루는 기억되지 않는다
물고기에게 물은 어떤 맛일까
사랑과 죽음이 겹쳐서 꿈만 같은 일이 된다면
물고기의 물 없는 자유는 어디로 흘러갈까
기분이 상했지만 상한 것들은 금세 버려진다 33년째 나의 하루는 버려졌다 새로운 것 읽을 것 정치적인 것 없이 나의 하루는
고등학생들이 계단에 걸터앉아
어둠에 부딪힌 얼굴로 껌을 씹는다
오늘의 꿈과 내일의 꿈이 달콤하게 흐르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고양이들은 집으로 가지 않는다 내가 건네준 치킨은 어제의 것이었는데 오늘은 굶어 죽는가 그렇지 않다 고양이에게는 하루가 없다
담장의 하루는 골목길의 하루는 두통 속에 산책 속에 망치 같은 발걸음 속에 만나서 할 얘기도 없으면서 고집스럽게 좋아한다 집이 가까운 사람들은 만나지 않아도 좋다
놀란 거미들이 숨을 데도 없는 집으로 오르고 계단을 만들고 산책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제 집을 내준다 집을 먹어본 적 있니 신기한 맛이야 하루의 비밀이야 대신 나의 두 발만 너에게 보낸다
하루를 대신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루를 대신해 내가 가질 수 있는 의문들
하루를 대신해 내가 좋아하는 망가진 것들
은밀한 데만 조금 커졌어
아는 사람과 함께 아는 만큼만 나의 하루가 흘러갔지만
나의 하루는 미지의 소설처럼
내 손으로 씌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