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예의

by 지영

천천히요.

붙잡지는 않겠습니다.

조금만 천천히 가세요.

못다 한 말들이 아직 많습니다.

널어놓은 옷가지들도 좀 더 바싹 말려야 하는데 천천히요.


마음속의 말들을 채 꺼내놓지도 못했습니다.

물 올려놓고 차 한잔 내어 놓으려는데

더디 끓으니 기다려주세요. 재촉하지 마시고 천천히요.


이제 가면 다시 오실 수 없잖아요.

볕 좋은날

호박 한 덩이 따고 가지랑 썰어 널었어요.

잘 말려야 겨우내 먹을 수 있는데 천천히요.


가고 나면 그리울 것입니다.

쌉쌀한 맛 싫다 마시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것이 기침에도 좋다 하니 먼길에 더덕구이랑 밥 한술 드시고

찬찬히 살펴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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