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빛, 고요한 밤

by 도간


교토의 밤은 부드럽다. 새까맣지도, 화려하지도 않으며, 어딘가 몽환적으로 노란빛이 번진다. 일부러 만든 분위기가 아니다. 도시 설계와 전통 보존 방식, 오래된 미학과 지형이 겹겹이 쌓여 남은 빛이다. 밤이 찾아오면 도시 전체가 빛의 볼륨을 낮춘 듯, 지나가는 발걸음도 잦아들고 느려진다. 좁은 골목과 넓은 거리, 목조 건물과 돌길, 오래된 가게의 작은 창문 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이 서로 겹쳐지는 풍경은 도시가 숨을 고르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그 빛 아래서 사물들은 의식이 흐릿해진 순간처럼 가장자리가 흐려지고 부드럽게 중첩되어 보인다. 몽환적으로 노란빛이 번지는 밤이면, 특별한 이유 없이도 발걸음이 느려지고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김승옥의『무진기행』에서 “무진에는 안개가 자욱했다”는 문장이 떠오른다. 소설 속 안개가 만든 흐릿한 분위기가, 교토 밤거리의 낮은 조도와 겹쳐진다. 실제로 안개였는지 알 수 없지만, 희미하게 번지는 빛과 부드러운 그림자가 어우러져, 시간이 조금 느려진 듯한 공기가 흐른다.



그 배경에는 강력한 경관 보호 규제가 있다. 외벽 색, 간판 크기, 창문으로 새어 나오는 빛의 세기까지 세세하게 관리된다. 흰 LED나 지나치게 밝은 조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목조 마치야의 질감을 살리고, 도시 전체 풍경이 거칠어지지 않게 하려면, 그림자와 결을 품은 따뜻한 조도가 기본값일 수밖에 없다.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오래된 생활 감각의 연장선이다. 옛날에는 밝은 빛이 화재나 위급 상황을 떠올리게 했고, 낮고 부드러운 빛은 일상의 안온함을 의미했다.



지형도 조도에 한몫한다. 분지 특성 덕분에 빛이 멀리 번지지 못하고, 도시 전체가 자연스럽게 그림자를 두른다. 같은 밝기라도 다른 도시보다 더 어둑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여기에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郎)가 문학으로 끌어올린 ‘그림자 미학’이 더해지면서, 은은한 조도는 하나의 문화적 규범이 되었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도 조명을 관리하지만, 교토처럼 도시 전체가 ‘저조도의 감각’으로 다져진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일까. 교토의 밤은 어둠이 아니라, 결이 살아 있는 빛의 농도처럼 느껴진다. 그 빛 아래서는 촌스러운 내 얼굴도 괜히 시크하게 보인다. 모든 것이 흐릿해진 이 밤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계획도 변명도 없이 야반도주하듯 사라져도 누구 하나 눈치채지 못할 것 같은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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