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노·하인두 근대작가 2인전
아열대 기후인 홍콩의 11월은 여행 오기 참 좋은 때라, 이 맘 때쯤엔 늘 해외에서 홍콩으로 놀러 온 친구들과 함께, 했던 얘기를 하고 또 하며 즐거워했었습니다. 참 신기하죠? 왜 오래된 친구들과는 같은 얘기를 반복해도 처음 하는 얘기처럼 즐거울까요.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이제는 누구도 오지 않는 섬이 되어 버렸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외로움과 홀로 있음을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시간은 풍성하게 영글어갑니다.
더구나 예술과 함께하는 자발적 고독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지인이 기획한 멋진 전시, 한국 근현대미술 1세대 추상화를 대표하는 작가전에 다녀왔습니다.
동서양 예술 장벽을 초월해 자연과 인간의 모습을 현대적 추상화로 표현한 고암 이응노, 한국 전통문화와 불교사상에 기반을 두고 기하학적 색면 추상을 표현한 청화 하인두의 수작 11점이 선보였습니다. 전시 제목은 이응노와 하인두의 예술적 정신이 그들의 화면에 담겨 있을 뿐 아니라, 작품을 마주하는 관람객의 마음에도 스며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응노는 1904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나 동서양 예술 장벽을 초월해 자연과 인간의 모습을 현대적 추상화로 표현해낸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거장입니다. 1924년 제3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청죽(靑竹)>으로 처음 입선하며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전통 사군자 작가로 미술에 입문해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전반에 걸쳐 일본에서 유학하며 새로운 산수화풍을 습득했습니다.
이후 1958년 프랑스로 건너가 <문자추상>, <군상> 시리즈 등 동서양 예술을 넘나드는 독창적인 화풍을 선보이며 유럽 화단의 주목을 받았고 다양한 국가에서 수많은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1964년에는 파리에 위치한 세르누시 미술관 내 파리동양미술학교를 설립해 프랑스인에게 서예와 동양화를 가르치며 동양문화 전파에 힘쓴 교육자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하인두는 1930년 경상남도 창녕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대학을 졸업한 첫 세대로 1957년 20대 청년 작가들의 전향적 단체였던 현대미술가협회에 창립회원으로 참가했습니다. 김창렬, 박서보 등과 함께한 ACTUEL 창립 멤버로서, 1962년까지 앵포르멜 운동에 열정을 쏟았으며, 옵티칼 아트를 수용한 기하학적인 색면추상 작업을 선보였습니다. 그의 화면에 색채와 함께 짙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불교적인 관념의 세계였습니다. 이는 선(禪) 사상의 심취를 반영한 <회(廻)> <윤(輪)> 등의 작품에서 확인됩니다.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그간의 기하학적 구조를 벗어나 유동적인 파상선과 확산적인 기호 형상을 통해 불교 사상의 뜻을 한층 선명히 한 화면을 추구하며 <밀문(密門)> <만다라(曼茶羅)> 등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특히 <만다라> 연작은 옵티칼 아트를 수용하면서도 불교적 상징세계를 도입해 독자적 세계를 구축한 것으로, 서구적 추상주의 회화에 대한 동양적 또는 한국적 표현 정신의 발로이자 그에 따른 창작적 조형 추구의 실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불화, 단청, 민화, 무속화 등 전통적 한국미의 본질과 그 조형적 정신성을 자유롭게 사용했으며 장식적인 색상과 화면의 구성적 신비감, 그리고 생성과 확산의 철학적 뜻을 작품 속에 구현해냈습니다.
작품을 보러가야 할 때 잊지 말아야 하는 것 중 하나는 편한 신발과 가벼운 가방입니다.
좋은 작품과 함께 했던 내 영혼은 가을의 저편으로 훨훨 날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