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눔
삶은 소통(疏通)입니다.
타인과의 소통 그리고 나와의 소통.
자신과 소통이 되지 않는 사람이 타인과의 소통이 잘 되기 어렵습니다.
마치 항공기를 탔을 때 안내 방송에서, 위급한 상황에서는 산소마스크가 저절로 떨어지니, 우선 보호자가 먼저 착용한 후에 자녀를 돌보라고 하는 것처럼, 자신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않으면, 타인을 배려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그랬지만, 요즘에도 생각이 참 많아서, 단어 하나를 생각하면, 생각의 고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연결됩니다.
'통(通)하였느냐?'
과거에 우스꽝스럽게 사용되기도 했던 유행어지만, 생각의 징검다리를 하나씩 건너기도 하고, 여러 개를 한 번에 건너며 뛰어다니기도 하지만, 그 안을 관통하며 흐르는 것이 있습니다.
소통은 ‘물질이나 기호의 막힘없는 흐름’을 의미합니다.
영어로 '개인'을 의미하는 'individual'이라는 단어처럼,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존재 (in-dividual)들이 물질적, 정신적, 직간접적인 만남과 소통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이해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평생이 걸릴 수도 있고요.
우리가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이 ‘개인(나뉜 존재)’들이 함께 만나, 함께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통의 기초는 타인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고, 대화의 기초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여 그의 입장으로서 이해하는 것이고,
당신이 틀린 것이 아니라, 우리는 서로 다를 뿐이라는 생각으로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소통의 시작입니다.
말에는 도움을 줄 수도, 상처를 치유해 줄 수도, 걸림돌이 될 수도, 상처를 줄 수도, 해를 끼칠 수도, 창피를 줄 수도, 초라하게 만들 수도 있는 에너지와 힘을 가지고 있다. / 예후다 베르크
그러나 꼭 대화를 통해서만 소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 스스로 자신의 영혼과 만나지 못했으면서, 자신을 알지 못하면서, 타인을 쉽게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자신이 우위에 서기 위해, 남의 말을 자신의 잣대로 평가하고 폄훼합니다.
자신의 생각의 옳음을 증명받고 싶어서, "너도 동의하지" 않냐며 타인을 끌어들이기도 합니다.
타인의 '침묵'을 '동의'라고 우기기까지 합니다.
말을 하기 전에 그것이 말할 가치가 있는지, 말할 필요가 있는지를 스스로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각이 많을 때는 더욱 안으로 들어가 침묵과 교우하며, 자신의 내면과의 대면을 통해, 영혼과 만남을 이루는 것이 좋습니다.
진정한 대화와 소통은 진실된 맘으로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것에서 출발해, 자발적인 고독을 동반한 침묵 속에서 타인을 존중하는데 존재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