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란트가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기도의 응답을 받고 싶습니다.
기도하는 대로 이루어지고 싶습니다.
그런 기도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는 사역자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신학을 공부한 적도 없습니다. 그냥 요즘, 기도를 하며 갖게 된 작은 생각들을 글로 남기고 싶어 적어봅니다. 혹시 기도를 하고 싶은 지인에게, 선후배에게 내 이야기를 조곤조곤해준다는 마음으로 적어봅니다. 마음을 담아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글자씩 써봅니다.
40년을 살면서 요즘처럼 이렇게 꾸준히 기도를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매일 아침 기도를 한 것이 얼추 일 년은 넘은 것 같네요.(여기서 매일은 365일 연속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략 그렇다는 것이죠)
매일 기도를 한다고 하니까 대단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무슨 거창한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요즘 하는 기도는요. 일을 하며 드는 불안한 마음에 대한 기도를 합니다. 너무 힘이 들어서 도와달라고 기도를 하고요. 그만둬야 하는 건지, 버티고 계속 다녀야 하는지 응답해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다가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때론 가족과 친척들을 위해 기도를 하기도 하고요. 가끔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를 할 때도 있습니다. 또 요즘 내가 하는 생각들이, 하고자 하는 행동들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 묻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매일매일 일정 시간을 들여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2018년 가을, 자기계발이라는 것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책 한 권 읽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땐 그게 자기계발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 작은 움직임이 이렇게 저를 변화시킬 줄은 더더욱 몰랐습니다.
책 한 권이 백 권이 될 줄 몰랐습니다.
글 한번 써본 것이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될 줄 몰랐습니다.
꿈 한 번 꾸어본 것이 삶의 목표가 될 줄 몰랐습니다.
자기계발을 하다 보니 사명,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입으로만 떠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꾸준히, 매일, 열심히, 미친 듯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열정이라는 것은 한순간에 '확'하고 불타오르는 것보다 꺼지지 않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매일'이라는 나만의 무기를 만들어 연마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매일매일의 힘'이라는 무기를 갈기 시작했습니다.
매일매일 책을 읽다 보니 보이는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들리는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말하는 것이 변화되고 행동하는 것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것들도 매일매일의 힘을 믿으면 이룰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써보기 시작했고, 운동을 해보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회사일에 집중을 하느라 매일 글을 쓰지 못하고, 매일 운동을 하지는 못하지만 한번 몸에 각인이 된 '매일매일의 힘'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근성이 생겼습니다. 이제는 어떤 목표가 생겨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다 2019년 1월이 되었습니다. 자기계발을 하며 나에 대한 고민을 하고 미래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는데요. 어느 순간부터 신앙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결혼 후 출퇴근만 하던 교회에서 자발로 성가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마다 묵상을 하기 시작했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매일매일 성장을 해가고 있습니다.
자기계발을 하며 키워진 '매일매일의 힘'이 신앙생활을 하며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매일 묵상과 기도를 하던 제가 올해는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3~4장씩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읽으면 일 년 동안 성경을 통독할 수가 있거든요.
그렇게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하다 보니 믿음은 더욱 단단해지고 구원에 대한 확신은 깊어졌습니다. 그리고 삶의 목표와 비전이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그래서 그 목표와 비전을 위해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말과 글, 그리고 행동으로서 사람을 살리는 자가 되기 위해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확신이 들었습니다. 정말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예전엔 기도를 하면 막연하게 기도만 했습니다.
내가 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기도 할 거리가 있으면 단지 기도만 했습니다.
기도만 하면 이뤄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물론 실제 그렇게 기도해서 응답이 된 것도 있었겠죠. 하지만 그것이 정답이 아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도의 응답은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함께 행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실제로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적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을 보면 말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한 뒤에야 기적은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나안의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것이 그랬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일 때가 그랬습니다. 홍해가 갈라졌던 것, 기드온의 삼백 용사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으로 만으로도 충분히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 실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사람의 행동으로 순종을 하게끔 하신 후에 나타나셨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행동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기도만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행동이 함께 행해져야 합니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서는 준비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단지 기도만 열심히 해서는 기도의 응답을 받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제 아이는 지금 아홉 살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이 아이를 위해 아빠로서 해주고 싶은 것이 참 많습니다. 그런 그 녀석이 갖고 싶어 하는 것, 먹고 싶어 하는 것이 있으면 모두 해주고 사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직 때가 아닌 것을 해줄 수는 없습니다. 해주어서 그 녀석에 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해주지 않습니다. 술과 담배를 줄 수가 없고요. 운전을 알려줄 수가 없습니다. 그 녀석이 아무리 사달라고 졸라도 차를 사줄 수는 없습니다.
혹 그 녀석이 중학생이 되어 육체적으로 운전을 할 수 있는 때가 되어도 사줄 수는 없습니다. 법이 강제하고 있고, 아직 정신적으로 여물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사랑하는 아들이 다칠 수도 있습니다.
소원을 들어주기만 하는 게 아빠가 아닙니다. 그 녀석이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키워내는 게 아빠입니다. 나중에 커서 건강한 어른이 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아빠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가 아무리 지금 작가가 되겠다고 강연가가 되겠다고 부자가 되겠다고 기도를 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응답을 해주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합니다. 혹여 그로 인해 내가 상할까 봐 다칠까 봐 그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도를 할 때는 행동을 함께 해야 합니다.
스스로의 능력을 키우며 기도를 함께 해야 합니다.
작가가 되고 싶으면 글을 쓰는 연습을 해야 하고 강연가가 되고 싶으면 강연 연습을 해야 합니다. 정치인이 되고 싶거나 투자가가 되고 싶으면 그에 따른 노력과 준비를 해야 합니다.
연습, 노력, 준비를 대충해서는 안됩니다. 미친 듯이, 치열하게, 열정적으로 해야 합니다. 거기다가 꾸준히 매일매일 해야 합니다. 임계점에 도달할 때까지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꿈이 이뤄진다면 그건 기도의 응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설픈 상태에서 꿈이 이뤄진다면 그건 자칫 잘못하다가 재앙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각각의 상황이 다르고 더 큰 뜻을 바라보시고 기적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달란트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다섯 달란드,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받은 종 중에 노력하지 않은 게으른 종의 한 달란트를 열 달란트를 가진 종에게 주었다는 말씀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달란트를 받은 것만으로 성공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내가 받은 달란트를 기도, 노력, 학습 등 행동으로서 성장을 하고 키워나가야 합니다. 치열한 노력을 하면서 믿음으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즉, 기도만 할 게 아니라 행동을 함께 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를 할 때는 우리에게 주신 사명인 복음 전파와 주님의 영광을 높이는 일에 쓰임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함께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의 부귀영화와 행복은 유한하고 천국에서의 삶은 무한하기에 초점은 이 땅이 아니라 천국으로 잡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는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 나를 성장시키고 쓰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준비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런 사람으로 쓰임 받고 싶다고 말입니다.
어차피 내가 아무리 잘나게 태어나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생사 만복은 주님께서 주관하시고 하나님께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 또한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세가 특히 그랬습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셨습니다.
기도하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시고 더욱 크게 사용하셨고요. 복을 주셨습니다. 자손을 번성하게 하셨고요. 백성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기도, 신앙생활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동차를 사달라고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 운전능력과 조심성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돈을 많이 벌어도 신앙생활이 깨지지 않을 믿음을 달라고 부와 재능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을 위해 쓸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매일 간절히 기도하며, 그 꿈이 이뤄지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을 한다면 그 꿈은 반드시 이뤄질 거라 생각합니다. 그 기도는 반드시 응답받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생활합니다.
매일 아침 성경을 읽고
매일 아침 기도를 하고
매일 독서를 하고
매일 글 쓰는 생각을 합니다.
매일 선한 영향력을 주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매일매일의 힘을 믿거든요.
혹시 저처럼 불안한 미래를 위해 기도를 하고 계시나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사역자도 신학을 공부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렇기에 이 글은 논리가 부족하고 신학적으로 위험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저는 부자도 아니고 성공한 사람도 아닙니다. 단지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싶은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굳이 이렇게 쓰고 발행을 하는 것은 혹시 모를 한사람 때문입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이 글을 보고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응답받는 기도하는 방법, 말도 안 되나요?
아닙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한번 지켜보세요.
제가 증명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