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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말 Oct 19. 2020

매일 전투화를 닦아야 하는 이유

'까라면 까'가 아니다.


<저와 함께 군 생활을 하셨던 분들은 보지 않기를 바라며 이 글을 작성해봅니다.>



군대 시절 저는 나름 FM이었습니다.(나름입니다. 나름)

(FM이란? 원리원칙을 지키며 융통성이 없는 사람을 지칭함)


그렇다고 완전 꽉 막힌 사람은 아니었고요. 내가 솔선수범을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저처럼 행동을 하게끔 이끌었습니다. (그게 그거라고요? 하핫~~)


'라떼는~' 이야기라 뭐라 하실지 모르겠지만

다른 부대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들이 우리 부대에서는 벌어졌습니다.


자기 이부자리는 자기가 갠다.

자기 신발정리는 자기가 한다.

자기 빨래는 자기가 한다.

자기 빨래는 자기가 널고 걷는다.

자기 전투화는 본인이 닦는다.

점호 준비(청소)는 모두 함께 한다.


등등 제 친구들이 들으면 기절할 일들이 제가 있는 곳에서는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당연한 것이겠지만요.


군대에서는 매일 저녁, 점호라는 것을 합니다.

쉽게 말해 인원 점검을 하는 것입니다. 있을 사람이 있는지? 없어야 할 사람은 없는지. 인원체크를 하는 것입니다.


점호를 하기 전에는 모두 함께 청소를 합니다. 내무실 청소를 하고 공동구역 청소를 합니다. 모두 함께 지내는 곳이니 위생상태가 조금만 불량해도 점염병 등이 일어날 수 있기에 매일 청소를 합니다.


그런 뒤 점호시간이 되면 당직사관(부사관)이 검사를 합니다. 정수기, 화장실, 복도, 휴게실 등 공동구역은 물론이고 개인위생상태, 관물함 정돈까지 확인을 하지요. 그리고 전투화 상태를 점검합니다.


대부분은 점호에서 무사히 넘어가지만 간혹 미비된 부분이 있으면 지적을 받고 그 부분을 다시 마무리를 한 뒤에야 잠자리에 들 수가 있습니다.


제 군 생활의 점호는 그랬습니다.


아직 못 버린 예전 전투화



매일 점호 준비를 하며 청소를 마치면 각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전투화를 깨끗하게 닦는 것인데요. 매일 하는 일과이긴 하지만 참 귀찮고 하기 싫은 일중에 하나입니다. 아시잖아요. 군대는 까라면 까야 하는거.


구두약을 바르고 쓱싹쓱싹 문지르고 비벼줍니다. 입김 한번 불어주고 문지르고 밝은 곳에 한번 비춰보고 비벼줍니다. 바느질 자국이 있는 곳에 구두약을 흠뻑 묻혀주고, 갈라진 틈이 있는 곳에도 충분히 발라줍니다. 그러고선 다시 문지릅니다. 당직사관의 난이도에 따라 어떨 땐 팔이 빠지도록 문지릅니다.


그렇게 매일 모든 중대원들이 전투화를 빡빡 광이 삐까번쩍하도록 닦아야 점호 준비가 끝이 납니다.




까라면 까


전투화를 닦으며 많은 사람들이 불평이 한가득입니다. 왜 이 짓을 매일 해야 하는지? 광을 내고 닦는 것이 괜히 트집을 잡으려고 하거 아닌지? 우리를 괴롭히려 그러는 건 아닌지? 말입니다. 그냥 말 그대로 '까라라니까 까'는 거죠.


그러면서 제대로 전투화를 닦지 않고 닦은 흔적만 내는 동료들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 경우 점호에 이상 없이 잘 넘어가기도 했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어 취침시간이 늦어지기도 했지요.


그렇기에 제가 후임 일 때 그런 광경(닦는 척)을 목격하면 아무 말 하지 못했지만 상병 이상 선임이 되고 나선 지적을 해주었습니다.



전투화를 매일 닦아야 하는 이유



지적을 하면서도 막무가내로 뭐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왜 '전투화를 매일 닦아야 하는지'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군인은 비상시에 언제든지 출동을 해야 합니다. 지금은 정확히 기억이 잘 나질 않지만 비상 사이렌이 울리면 몇 분 안에 완전군장을 하고 연병장으로 집합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훈련일 경우에는 바로 해제이지만, 만약에 그것이 실제 상황이라면 그 상태로 바로 이동을 해야 합니다. 모자란 것을 다시 챙길 시간 따위는 없습니다. 실제 상황에서는 시간은 생명이거든요.

그 상태로 이동을 하며 작전에 투입을 하게 됩니다. 어떤 때는 차량으로 어떨 때는 걸어서 이동을 하고요. 산, 들, 강가, 계곡 등 가리지 않고 걷고 뛰고 합니다. 어떨 땐 기어 다니기도 하고요.



전투화 이야기를 하다가 뭔 이야기냐고요?


잘 관리된 전투화와 관리하는 척한 전투화의 차이가 여기서 나옵니다. 잘 관리된 전투화는질퍽하고 습한 지역을 지나가도 전투화 안으로 물이 스미질 않습니다. 반면에 '척'한 전투화에는 조그만 물웅덩이, 진흙만 밟아도 물이 스며듭니다.


물에 젖은 신발을 신어보신 분은 아실 겁니다. 축축하고 무겁지요. 게다가 젖은 전투화는 발 여기저기 물집이 생깁니다.


전체 중대원이 이동하는데 한두 사람이 그런 상황에 빠져 이동시간이 지체된다면 어떨까요? 실제 상황, 작전에는 1분, 1초가 중요합니다.


점호를 준비하며 함께 쪼그려 앉아 이제 갖 들어온 신병에게 이런 이야기를 종종 해주었습니다.


전투화를 닦으며 왜 전투화를 잘 닦아야 하는지, 청소는 왜 깨끗하게 하라고 하는지, 개인위생이 왜 중요한지 등등 그냥 까라니까 까는 게 아니야. 이게 군인의 역할이야. 작은 일이지만 작은 일이라 생각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나의 게으름과 나태함이 나중에 큰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고 말이죠. 군인에게 큰일은 잘 아시는 것처럼 생명이잖아요.


직장생활, 사회생활에서도 그러려고 노력합니다. '까라면 까'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만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유를 궁금해하고 나를 먼저 이해시킵니다. 그리고 행동에 옮깁니다.


다른 누군가에게 부탁, 지시를 할 때도 그렇습니다. 결과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과정의 중요성, 히스토리 그리고 해야 하는 이유 등을 오목조목 설명을 해줍니다.


그래야 결과물이 좋게 나타납니다. 또한 같은 일을 다음번에 부탁, 지시를 해도 결과물이 알아서 잘 나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탁을 할 때도 미안하고 결과물도 시원찮아서 결국 내가 다시 해야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군 생활을 할 때 후임들이 그랬습니다. 전투화를 닦아야 한다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고 하는 것보다 왜 닦아야 하는지 설명을 해주니 요령을 피우는 후임이 없었습니다. 실제 행군을 할 때 전투화에 물이 들어가서 고생을 한 분대원도 없었습니다.



직장생활,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어떤 효과를 기대하는지? 강제로 억압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이해하고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스스로 해나가게 하고 싶습니다.



모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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