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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Kids Oct 17. 2022

당연함과 당연하지 않음, 그 사이의 시간

영화 <심플 라이프> (A Simple Life, 2012)



로저(유덕화 역)의 집안에서 오랜 세월 동안 일해 온 아타오(엽덕한 역)는 로저를 제외한 모든 가족들이 샌프란시스코로 이민을 갔음에도 로저가 홍콩에 남아 있는 한 집을 지키고자 한다. 집안을 깔끔하게 유지하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로저를 반기며 밥을 차려주는 아타오의 역할은 그렇게 유지되는 듯 보인다. 마치 엄마처럼 로저를 보살펴 주는 아타오와 아들처럼 그 보살핌을 받고 있는 로저의 관계는 로저가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전환점을 맞이한다. 이후 몸을 회복한 아타오는 로저에게 더 이상 로저의 집에서 일할 수 없겠다는 의사를 전하고 요양 병원에 들어가서 생활한다. 로저는 아타오를 위해 요양 병원을 알아보아 주고 그의 배려로 아타오는 쌀쌀맞은 요양 병원에서 그나마 나은 대접을 받으며 생활을 하게 된다. 영화 제작으로 바쁜 와중에 종종 로저는 아타오를 살갑게 챙기는 데, 이는 초반에 보였던 '돌봄'이라는 관계가 뒤바뀐 순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환은 영화 곳곳에서 확인되는데, 영화 제작 업무로 투자사를 찾아 간 로저는 계약 조건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고 나오는 길에 자신이 입은 옷 때문에 에어컨 기사로 오해를 받는다. 명함을 내밀고 곧 진짜 에어컨 기사가 등장하면서 그 상황은 무마되지만 옷 때문에 해당 회사의 손님에서 에어컨 기사로 입장이 전환되면서 재치 있는 장면이 만들어진다. 또한 아타오가 요양 병원에 들어가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함께 지내게 될 사람들과 차차 만나게 되는 장면에서도 이러한 ‘전환’을 찾아볼 수 있다. 환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나온 아타오는 한 모녀와 이야기하게 된다. 살가운 모녀지간을 보고 아타오는 딸에게 ‘엄마도 보러 오고 참 착하네요’라고 말을 전한다. 당연히 그런 요양 병원에서 지내는 쪽은 딸이 아니라 엄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엄마가 아니라 딸이 신장이 좋지 않아 요양 병원에 지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엄마가 요양 병원에서 지낼 것이라는 생각에 일침을 가하며 아타오를 당황하게 만든다.


영화 <심플 라이프>는 아타오와 로저의 당연했던 관계의 전환을 바탕으로 요양 병원에서 지내는 사람들을 조망하는 데로 더 나아간다. 나이가 들면서, 몸이 아프면서 당연한 행동을 당연하게 해 내지 못하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요양 병원에서 식사를 하는 시간에 한 할아버지가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꾸만 음식을 흘리자 그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왜 자꾸 음식을 흘리냐며 타박을 한다. 그러자 ‘똑바로 먹고 싶은데 나도 잘 안돼’라고 음식을 흘린 할아버지가 대답을 한다. 음식을 흘리지 않고 먹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 당연한 행동이 점점 당연하지 않게 될 때의 순간들을 카메라로 하나하나 담아낸다.




당연했던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었을 때 발생하는 당황스러움을 이내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돌려내는 것은 결국 상대방과 함께 보낸 시간이다. 그 시간 안에는 단순히 ‘시간’이라는 물성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해 온 시간 안에는 함께 쌓아 온 추억이 있으니 말이다. 영화 <심플 라이프>는 이들의 추억을 그저 짐작할 수 있도록 할 뿐, 플래시백으로 과거를 회상하거나 하는 장면들을 삽입하지 않는다. 로저가 어릴 적 함께 놀았던 친구들과 함께 아타오가 해 두었던 음식을 먹으며 아타오에게 전화를 건다. 노래를 부르면서 어릴 적 추억을 불러오고 굳이 얼굴을 마주 보지 않아도 충분히 반가움과 아련함을 전한다. 이러한 장면을 통해 로저가 커 오고 성장하는 시간들 속에 아타오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시간 위에 쌓인 추억들이 결국 로저가 아타오의 마지막을 지키도록 하는 동력이 된다. 또한 아타오의 장례식에 킨 아저씨가 꽃을 들고 침울해하는 모습은 요양 병원에서 아타오와 함께 한 시간이 사실 킨 아저씨에게 큰 위로와 즐거움이 되어 주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함께 보낸 시간들과 그 시간들 속에서 켜켜이 올라간 추억들이 그녀의 마지막을 외롭지 않게 한다.


혈연이 아니라 시간이 만들어 낸 끈끈한 관계의 일상을 통해 영화는 당연한 것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된 시기의 쓸쓸함을 사랑으로 껴안는다.




Written by 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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