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구룡성채: 무법지대> (2024)
2024년에 살고 있는 우리는 구룡성채를 직접 마주할 수 없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이미 1993년에 구룡성채(철거 이후 발견된 현판에 따르면 이곳의 본래 명칭은 '구룡채성'이었음이 밝혀졌지만, '구룡성채'라는 명칭이 가지는 상징성과 한국어로 번역된 제목에 따라 앞으로 구룡성채라고 부르고자 한다.)는 철거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중국에서 홍콩으로 불법 밀항한 주인공 찬 록쿤(임봉 역)이 삼합회의 추격을 피해 구룡성채로 진입하게 되었을 때, 이 영화는 난관에 부딪힌다. 30여 년 전에 사라져 버린 구룡성채를 어떻게 스크린 앞으로 불러낼 것인가. '1980년대 후반 구룡성채'라는 시공간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사실상 무정부 상태였던 구룡성채의 재현 (불)가능성
물론 구룡성채의 구조에 대한 자료들은 시각적으로도 활자로도 많이 남아 있다. 철거 직전 '사실상' 관리 주체였던 중국 정부가 여러 국가의 탐험가들을 불러 모아 이곳의 구조를 지도로 남겨 두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꽤나 지난했다고 전해지는데,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 구룡성채는 이미 미로와 다름없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수수께끼 같은 구조는 철거가 진행될 때까지 이곳을 관리하는 국가적 주체가 비어 있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주인 없는 구룡성채는 치외법권이 적용되는 무정부적 공간이었고, 덕분에 정치적 탄압, 전쟁 등으로 인해 오갈 곳 없는 이들은 구룡성채로 숨어들어 난민이 되었다. 즉, 구룡성채는 청나라 팔기군이 주둔한 1898년부터 철거된 1993년까지, 거의 100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누구든 들어와 살 수 있었고 어느 정부도 그들에게 손을 미치지 못했다. 즉, 구룡성채는 오로지 사람들로 인해 켜켜이 건설된 요새였다. 이러한 지점에서 아무리 세세하게 기록한 구조도가 있을지라도 구룡성채가 완전히 복원되고, 재현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사후적인 기록에는 누수가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세트장이 구현된 방식으로 보아, 영화 또한 재현 불가능성을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영화는 재현 가능성으로 향하지 않고 불가능성으로 향한다. 이를 위해 우선 '구룡성채'의 스트레오타입 이미지를 꺼내든다. 건물 외벽에 빽빽이 붙어 있는 네온사인이 바로 그것이다.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둘러싸인 구룡성채의 한 골목길은 마치 이미 사라진 옛 추억을 기억하기 위해 전시해 둔 어느 박물관을 떠올리게 한다. 나아가 인물들의 싸움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층계로 이루어져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져 있는 동시에 천장 중간이 둥그렇게 부서져 있어 카메라가 1층과 2층 공간 모두를 보여줄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된 세트장처럼 느껴지게 한다. 영화의 또 다른 스펙터클 축을 이루는 액션 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홍콩 영화 전성기 시절 홍콩 무술 영화를 즐겨 보았던 관객이라면 무엇보다 홍금보의 등장이 반가울 것이다. 홍금보를 비롯한 고천락, 곽부성의 등장은 70년대부터 90년대(어쩌면 00년대)에 이르기까지 홍콩 영화의 황금기를 떠올리게 한다. 이들의 등장은 당시 홍콩 영화의 아릿한 추억을 불러일으키지만 당시 가화삼보의 액션이 그대로 재현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의 액션은 2000년대 견자단 영화에 더욱 가깝다. 견자단과 함께 홍콩에서 많은 영화를 찍어 온 타니가키 켄이 무술감독으로 기용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제 '구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노쇠했다는 사실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러한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그들의 존재 자체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를 통해 건재함을 보여주긴 하지만 이들의 액션 신은 더 이상 롱테이크로 잡히지 않고, 적은 수의 동작으로 큰 타격감을 불러내는 무술 시퀀스를 선보인다. 즉, 영화는 이미 지나간 시절과 이미 사라진 공간을 완벽에 가깝게 증언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대신 전성기 시절 홍콩 영화의 잔상을 불러내는 동시에 풍화된 부분까지 숨기지 않고 드러내면서 그 시공간을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태도를 견지한다. 이러한 태도는 영화 중반 이후 밝혀지는 주요 사건의 알레고리로 또다시 등장한다.
※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룡성채가 고향이었던 이들을 상상하며
보스(임현제 역)는 과거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을 죽인 자(곽부성 역)의 아들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그 아들을 찾아내 못다 한 복수를 실행하고자 한다. 마침내 그 아들이 곧 찬 록쿤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는데, 보스 아래 있었지만 그와 다른 편인 곽부성 역과 끈끈한 친분이 있었던 사이클론(고천락 역)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찬 록쿤을 죽이려고 드는 보스에게 사이클론은 '우리 세대의 분노는 우리 세대에서 끝내자'라고 말하며 그의 복수를 저지하지만 보스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미스터 킹(홍금보 역)의 힘을 빌리기로 한다. 이를 빌미로 그동안 사이클론의 영역이기에 구룡성채에 접근할 수 없었던 미스터 킹 일파는 당당히 그곳을 장악하려고 한다. 본격적으로 미스터 킹과 사이클론 일파의 싸움이 펼쳐지고 결국 미스터 킹 일파가 그 주도권을 가지고 오게 되면서 구룡성채는 마약의 소굴로 변모한다. 사이클론의 우려대로 그 분노는 그대로 다음 세대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여기서 현시점에 구룡성채의 재현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재질문하게 되는데, 특정 공간을 완벽히 재현하고 싶다는 소망에는 그 시절과 공간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즉, 철거 전 구룡성채의 완전한 재현 욕구는 곧 '지금'에서 탈출하여 '그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태도를 경계한다. 영국령 홍콩에 대한 보정된 기억이 넘쳐흘렀을 때, 현재 홍콩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게 되려 해를 끼칠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구룡성채의 완벽한 재현을 시도하지 않고, 그 시공간에 살았을 사람들의 일상을 상상하게 한다.
찬 록쿤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는 목적 아래 가까스로 정부의 보호가 닿는 구룡성채 바깥으로 찬 록쿤을 내보낸 그의 동료들은 미스터 킹 일파와의 패싸움 이후 구룡성채를 관리할 권리를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게 된다. 정부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으로 대피한 그의 동료들과 자신이 홍콩에서 태어났고 자신의 부모가 홍콩인이라는 것을 확인받은 이후에 그토록 갖고자 했던 신분증을 얻게 된 찬 록쿤은 강 위에 떠 있는 뗏목집에서 재회하고, 형제애를 재확인한다. 어릴 적 중국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던 찬 록쿤은 구룡성채에서 생활하며 비로소 안정감을 얻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찬 록쿤과 그의 동료들은 사실상 자신들의 고향과 다름없는 구룡성채를 되찾기 위해 다시 싸움을 시작한다. 이들은 거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찍 집으로 들어가라고 당부하고, 미스터 킹 일파가 장악한 이후 마약 제작 등으로 착취당하던 구룡성채 거주민들은 이들의 귀환을 반기는 동시에 그 당부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며 함께 실천한다. 그렇게 벌어진 싸움은 과거 세대와는 다르게 단순히 구룡성채 영역에 대한 주도권을 두고 다투는 패싸움이 아니다. 찬 록쿤과 그의 동료들은 자신의 터전을 되찾기 위해,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일상을 되돌려 놓기 위해 애쓴다. 즉, 공기투를 사용하며 마치 사이보그와 같은 무술을 선보이는 미스터 킹의 부하와 대결하는 이들의 고군분투를 통해 영화는 구룡성채에서 일상을 살아내는 이들, 즉 그 대결을 몰래 지켜보고 있을 비가시적인 존재들을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그 부하가 공기투를 쓰는 것을 막고 그를 죽이기 위해 결정적으로 도움이 된 물리적인 차원의 사이클론은 구룡성채라는 빽빽하고 어두운 공간 속에서도 연을 날리며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고자 애쓴 사이클론(고천락 역)을 은유하며 구룡성채에서 살아내고 있었던 사람들의 존재를 환기한다. 구룡성채를 탈환한 찬 록쿤과 그의 동료들이 구룡성채 꼭대기 층에서 이곳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화면은 다시 그곳에서 일상을 재개하는 거주민들의 움직임을 비춘다. 마치 그곳의 점유자가 누구이든 날이 바뀌면 다시 또 하던 일을 계속한다는 듯이. 구룡성채에서 살아간 사람들을 조명한 엔딩 장면에 이르러서야 구룡성채는 재현 가능성에 한 발짝 가까워진다. 약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구룡성채에 어떤 정부가 손을 미치지 않았어도 계속 그 공간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생을 꾸려 나고 있었음을 보여줌으로써 구룡성체를 체험하게 한 것이다. 그렇게 이미 지나간, 사라진 시공간을 붙잡지 않으려는 영화의 태도를 통해 많은 점유자들이 홍콩을 거쳐 갔어도 결국 홍콩을 홍콩답게 만드는 것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홍콩인들이(었) 다는 과거 홍콩을 기억하고 현재의 홍콩에 당도하는 데 성공한다.
Written by 아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