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목승, <천장지구(天若有情)>
영화가 이미지로 기억된다는 것. 영화 속 장면들이 계속해서 아이콘화되어 회자되는 것. 이 두 가지만으로도 <천장지구>는 오래도록 회자되는 홍콩영화일만 하다. 1990년에 개봉한 천장지구는 개봉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진목승 감독의 초기작이었고, 이 영화 이후 홍콩 액션 영화의 거장으로 자리잡기도 했으며 천장지구가 큰 인기를 끌자 천장지구2, 천장지구3도 제작되었으나 첫 번째 작품의 성공을 넘지는 못했다고. 34년이 지난 지금 봐도 촌스럽다기 보다는 그 영화가 가진 고유한 이미지가 너무나도 현재 콘텐츠들에서도 잘 보여지는 부분이라 놀라웠다.
그러나 <천장지구>를 정말 재미있는 스토리를 가진 영화라고 생각하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내용은 다분히 평범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홍콩에서 은행을 털던 패거리 중 하나인 유덕화가 경찰 포위망을 뚫기 위해 아가씨를 인질로 잡는데, 그녀가 오천련. 패거리 친구들이 여자가 얼굴을 봤기 때문에 죽이자고 하지만 건들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낸다. 오천련은 부잣집 딸로, 유학에 가려고 하던 찰나 유덕화에게 사랑에 빠져 경찰한테 인질에 대한 설명도 거짓으로 말하고, 유덕화를 자꾸만 찾아온다.
사랑에 빠진 둘은 유덕화 할아버지네 집에 가서 재미있는 시간들을 보내다가 유덕화 패거리에서 우두머리를 잡고 싶어하는 사람한테 뒷통수를 맞고, 멈추지 않는 코피와 함께한 채 오천련을 태워 웨딩드레스 샵 유리를 깨부수고 입힌다. 그리고 도망치다 성당에 가서 결혼서약을 한다. 그리고 유덕화는 오천련을 두고 떠난다. 오천련은 유덕화를 찾아 맨발로 도로를 뛰어가고, 유덕화는 죽음을 맞이한다. 천장지구는 하늘과 땅이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랑은 영원히 계속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첫 문장에서 말했듯이 엄청난 의미를 가진 제목이지만, 사실 내용보다는 이미지로 더 강렬하게 기억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된 이유에는 천장지구를 본따 만든 비슷한 스토리의 영화나 드라마에 이미 노출되었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천장지구하면 떠오르는 그 시절 청춘의 모양이 떠오르는 OST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유덕화의 리즈 시절, 그리고 하나의 아이콘이 된 어떤 이미지들을 보고 있노라면 천장지구가 영화계에 남긴 메시지는 크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해본 적이 있다면, 그 사람과 함께 지낼 삶이 위험하든 위험하지 않든,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계속해서 달려가는 오천련의 모습이 정말 강렬하다. 그때 당시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분들에게는 이들의 사랑이야기가 정말 강렬하지 않았을까? 유학 길을 포기하고서라도 위험한 패거리의 남자를 계속해서 사랑하겠다는 바람, 그리고 기약 없이 헤어지는. 공허한 오토바이 소리와 웨딩드레스를 입고 텅빈 도로를 무작정 달리는 오천련의 모습은 갑작스레 경험하게 되는 이별의 느낌처럼 쓸쓸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상징적인 장면들과 정서적 여운 때문에 천장지구를 떠올리면 범죄 장면 보다도 둘의 사랑이야기가 먼저 떠오른다. 특히, 유덕화와 오천련의 이야기는 단순히 사랑의 비극, 사랑하면 안될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보다는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더라도 멈출 수 없는 사랑의 열정이라는 주제로 읽힌다.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오토바이를 타고, 웨딩드레스 샵을 부수고, 웨딩드레스를 입고, 성당 앞에서 사랑을 서약하는 모습이. 영화 <천장지구>는 천장지구라는 단어의 뜻처럼, 변치 않는 사랑과 그에 담긴 순간들을 이미지로 새기며 영원히 사랑 영화로 회자될 자격을 갖춘 셈이다. 홍콩영화 중에서도 킬링타임용 영화로, 그리고 젊은이들의 열정적인 사랑이야기가 보고 싶다면 언제든 이 영화가 먼저 떠오를 것 같다. 귀여운 장면도, 무서운 장면도, 재미있는 장면도, 슬픈 장면도, 모든 장면과 이미지가 하나의 뮤직비디오처럼 기억되는 영화, 천장지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