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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Kids Jan 05. 2022

<무간도2>에서 감각되는 홍콩 느와르와의 작별의 징후

영화 <무간도2 – 혼돈의 시대> (無間道 II, 2003)

첫 편의 헐거움을 충실하게 매워 나가는 프리퀄의 탄생

홍콩 영화에서는 종종 3부작(혹은 2부작) 시리즈로 구성된 영화들이 있다. <천녀유혼>, <영웅본색>, <백발마녀전>, <동방불패>, <황비홍>이 그러하다. 이들은 최초에 3부작의 구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영화의 상업적 인기에 힘입어 후속 작을 내놓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1편과 2편, 그리고 3편 사이에 소재적인 유사성, 캐릭터의 연속성이 나타나긴 하나 서사적 개연성은 다소 떨어진다. 하지만 <무간도> 시리즈는 이들과 분명히 선을 긋는다. <무간도2>를 보고 다시 <무간도>로 돌아왔을 때, 영화적 감흥이 더 커진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간도2>는 3부작 시리즈의 중간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 내는 동시에 독립적인 하나의 작품으로서도 의미가 있는 영화이다. 그렇다면 <무간도2>는 어떻게 전편을 보완하는 동시에 하나의 독자적인 프리퀄 영화로 등장할 수 있었을까? (*앞으로 <무간도> 첫 편은 ‘<무간도>’로, 그 외 다른 시리즈는 뒤에 2혹은 3을 붙여 서술하고자 한다)


우선 <무간도>가 그다지 ‘촘촘한’ 영화는 아니라는 점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홍콩 경찰이 삼합회 소속이 되고 삼합회의 일원이 경찰이 된 이 혼란 속에서 두 첩자의 운명을 차갑고 날카롭게 보여주는 데에 집중하는 이 영화는 두 첩자 간의 대결이라는 대전제 아래 긴장감으로 추동되는 영화는 서사적인 설정에서는 다소 헐거운 면모를 보인다. 대신 이러한 설정에 의해 탄생한 카메라 구도, 화면 톤, 경찰과 삼합회 집단 간의 대립을 추진력 삼아 나아가는 것을 택한다. 그럼에도 인물이 입체적으로 느껴진다면, 그것은 영화적 설정 때문이 아니라 배우의 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특히 양조위가 그러하다. 자신 눈 앞에서 황 국장(황추생 역)이 죽은 것을 확인한 직후의 신이 대표적인 동시에, 압도적이다.


그에 반해 <무간도2>는 하나하나 뜯어볼수록 인물 설정의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쓴 영화임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무간도2>에서는 <무간도>의 빈틈을 어떻게 채워주고 있는가? 영화는 1991년으로 돌아가 진영인과 유건명의 운명이 흔들리기 시작한 바로 그 시점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도니다. 왜 하필 ‘진영인(양조위 역)’이었을까? 왜 그가 경찰 측의 첩자로 발탁된 것일까? 진영인은 삼합회 보스인 예영효(오진우 역)의 이복동생이다. 즉, 진영인은 우수한 성적으로 경찰학교에 입학했지만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경찰 내부에서는 진영인의 이러한 면모를 역이용해서 그를 경찰의 첩자로 만든다. 이러한 설정이 단순히 인물의 전사를 설명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간도2>의 영리함이 돋보인다. 진영인을 통해 ‘예영효’라는 새로운 인물을 자연스럽게 등장시키면서 삼합회와 경찰의 대립을 더욱 복잡다단하게 만들어내는 동시에 권력과 부를 쥐고 있지만 홍콩 반환이라는 어수선한 사회적 분위기 앞에 불안감을 느끼는 한 삼합회 보스의 이미지를 불러온다.


그리고 한침(증지위 역)과 황 국장의 관계 또한 평면적으로 조폭과 경찰의 대립으로 표상되도록 만들지 않는다. 한참 세력을 키우던 한침과 황 경찰이 ‘예영효 제거’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가, 그 목표를 완수하자 사실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협력의 관계였지만 ‘동상이몽’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무간도>에서 서로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더욱 입체적으로 드러나게 만들어 낸다. 아강 (두문택 역)과 진영인의 관계 또한 그러하다. <무간도>에서 황 국장이 죽고 한바탕 경찰과 조폭들이 총 싸움을 벌일 때 진영인은 황 국장의 죽음을 뒤로 하고 아강의 차에 타서 그 현장을 빠져나온다. (아마도) 아강은 진영인이 첩자임을 인지하고 있었겠지만, 죽음 직전까지 그와의 의리를 지킨다. <무간도2>에서는 아강이 그렇게 의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를 감옥에서 쌓은 아강과 진영인의 우정으로 설명한다. <무간도2>는 이렇게 짧은 장면 하나도 놓치지 않는 듯하다. 또 다른 예시는 <무간도>에서 진영인이 길에서 전 여자친구를 마주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아이를 5살로 소개하는 그녀를 뒤로 하고 아이가 자신은 6살인데 왜 5살로 소개하냐는 말 때문일 것이다. 예영효 밑으로 들어간 어린 진영인(여문락 역)은 자신의 여자친구가 낙태를 했다는 말을 듣고 매우 분노한다. 이후 그들은 헤어진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러한 장면에 따르면 사실 그의 여자친구는 아이를 지우지 않았고 혼자 낳아 키운 것으로 암시된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부분은 과도한 설명으로 느껴지고 오히려 디테일한 설명 없이 배우의 연기력으로 그들의 현재 감정을 보여주는 <무간도>가 더욱 영화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무간도2>에서는 <무간도>에 등장한 캐릭터 하나하나 각주를 달아가며 설명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세심하게 캐릭터의 과거를 설명하고 인물 간의 관계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지점에서 단단한 ‘무간도’의 세계관을 만들어 내려는 감독의 결심이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네이버 영화 출처


‘홍콩 느와르’와의 작별, 홍콩 ‘느와르’로서의 시작

<무간도>는 홍콩 경찰 영화의 클리셰를 한 번 더 비튼 영화이다. 홍콩 경찰이 삼합회를 체포하기 위해 잠입하는 설정은 이전 8090 홍콩 영화에서도 많이 등장한다. 유럽에서 매니아틱한 인기를 갖고 있는 <첩혈쌍웅>(주윤발, 양조위 주연)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나아가 깡패가 경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혹은 경찰의 감시를 교묘하게 벗어나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찰 집단에 침투하는 설정은 <무간도>가 홍콩 영화계에서 처음 선 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무간도>는 ‘홍콩 느와르’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라 말해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과연 <무간도>는 ‘홍콩느와르’ 라고 할 수 있을까?


<영웅본색>으로 대표되는 ‘홍콩느와르’는 ‘느와르’ 라는 이름에 무색하게 ‘필름 느와르’의 장르적 특색을 보이기 보다는, 홍콩 무협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이어받아 남성들의 우정과 의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에 가깝다. 하지만 <무간도> 시리즈는 ‘홍콩 느와르’의 영광을 보여주는 것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홍콩의 ’느와르’를 구축하는 것을 시도한다. 즉, <무간도>는 ‘홍콩느와르’의 정점에 서는 동시에 ‘홍콩느와르’의 퇴장을 알린다. 그동안 홍콩영화계가 쌓아 왔던 이미지와 작별하는 동시에 홍콩만의 ‘느와르’의 이미지를 <무간도2>를 통해 새롭게 제시한다. <무간도2>는 경찰과 삼합회의 이분법적 구도를 해체시킨다. 그렇기에 예영효의 등장이 더욱 의미 있다. 황 국장 – 한침 – 예영효의 삼각구도로 극을 이끌며 그동안 ‘홍콩느와르’에서 볼 수 있었던 선과 악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 정의 구현을 논하지도 않고 누군가를 영웅화시키지도 않는다. 그리고 화려한 홍콩식 액션을 선보인다고 하기에도 어렵다. 대신 <무간도2>는 범죄 현장의 뒷골목, 갱스터의 이미지가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대표적인 신은 삼합회 조직들의 보스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최종 보스였던 예 회장이 죽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지 혼란해하는 그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대화를 나눈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여러 인물을 하나의 프레임에 거의 담지 않는다. 대화하는 인물들을 한 명씩 줌인하면서 그들의 대화를 속도감 있는 리듬감 안에 포섭되도록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은 마치 러시안룰렛을 돌리는 듯한 긴장감이다. <무간도>에서 ‘모스기호’로 대표되었던 극의 리듬감을 여전히 살리며 <무간도>만의 전반적인 톤을 잃지 않는다.


그동안 홍콩 느와르에서는 여성 캐릭터가 남성 캐릭터의 성격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적 역할로 등장하거나 혹은 아예 등장하지 않았다. <영웅본색2>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 보자. 공중전화 신으로 유명한 그 장면 말이다. 아걸(장국영 역)의 아내가 된 재키(주보의 역)는 아이를 출산한 직후 아걸에게 아이의 이름을 지어 달라고 부탁한다. 아걸은 공중전화 부스에서 자신의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죽음을 맞이한다. 이 장면에서 재키 캐릭터가 아걸의 죽음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즉, 이전까지 ‘홍콩느와르’에서는 여성의 캐릭터가 서사에 본격적으로 드러나지 않았고 그저 남성 캐릭터를 보조해 줄 뿐이었다. 하지만 <무간도2>에서 ‘메리’(유가령 역)는 일종의 팜므파탈로서 등장한다. 그녀는 남편 한침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한다. 유건명이 예 회장을 죽인 이유는 메리가 지시했기 때문이다. 조직 내에서 한침의 세력을 넓혀 주기 위해 그녀는 기꺼이 경찰과 협력했다. 이러한 선택은 오히려 한침에게 정치적인 리스크로 다가오고, 결국 메리는 예영효 조직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만다.


한편 <무간도2>에서 흥미로운 점은 ‘홍콩느와르’의 영광뿐만 아니라 과거 ‘홍콩영화’의 흔적 또한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회장의 살인을 유건명에게 지시한 것이 메리라는 것을 예영효가 알게 되고, 이내 메리는 위기에 빠진다. 그것을 알게 된 유건명은 메리가 지내고 있는 곳을 찾아가고 메리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하지만 메리는 그런 마음을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치부하고 그를 쫓아 낸다. 그렇게 메리의 공간을 떠나는 유건명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비정전>에서 친 엄마를 찾으러 필리핀에 갔다가 결국 엄마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나오는 아비(장국영 역)가 끝끝내 엄마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뒤돌아보지 않고 그 집을 나오는 장면이 떠오른다. 이러한 오마주 장면은 ‘홍콩느와르’ 뿐만 아니라 마지막 불꽃처럼 불타올랐던 90년대 홍콩 영화와도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시리즈를 타고 이어져 내려오는 혼란 그 자체의 ‘무간 지옥’

겉모습과 다른 정체성을 가지게 되면서 혼란스러워하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극을 이끌었던 <무간도>와 달리 <무간도2>는 경찰과 삼합회(조폭) 사이에 존재하는 암투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당도하는 시간대는 1997년 6월 30일 홍콩 반환 이후, 7월 1일이다. 영국 국기가 내려가고 홍콩 국기가 올라가면서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자치구’로 선언되는 홍콩을 조망한다. ‘과연 홍콩은 겉모습이 바뀌더라도 홍콩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라는 불안 섞인 의문이 마지막 시퀀스를 통해 그다지도 날카롭게 묻는다. 이 장면이야 말로 <무간도2>만의 영화적 존재 의의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무간도> 시리즈는 그러한 불안감을 내재한 채 <무간도>에서 <무간도3>에 이르기까지 성실하게 ‘나는 누구인가’ 라는 혼란 섞인 질문을 해 나간다.


잠시 <무간도3>의 이야기를 하자면, <무간도3>에서는 ‘경찰은 총을 살인의 용도로 사용하지 않지만, 삼합회 조직은 머리에 총을 겨누며 적을 바로 사살한다’는 설정을 큰 줄기로 가져가면서 스파이라는 설정 아래 혼란을 겪는 캐릭터들의 본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무간도3> 후반부에서 유건명(유덕화 역)은 분명한 경찰 신분이고, 경찰로 분해서 살아온 세월이 더 길었겠지만 결국 머리에 총을 쏘면서 그는 결국 삼합회의 일원이며 자신의 신분을 숨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잊게 된다면 ‘혼란’에 빠질 뿐만 아니라 자신의 본질을 잊어버리는 순간, ‘무간지옥’에 영영 갇히게 될 것임을 지시하며 <무간도> 시리즈를 그렇게 하나의 완결된 시리즈로 마무리해 낸다.


이러한 설정은 이미 <무간도2>에서 모두 준비하고 있었는데, <무간도2>의 오프닝 신에서부터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황 국장과 한침이 서로 마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 황 국장의 총에 맞았지만 결국 죽지 않았던 인물이 언급된다. 그 사람을 죽였어야 했다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어쨌든 황 국장은 총을 사용하긴 했지만 경찰이기에 결국 죽음에 이르게 만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황 국장은 메리에게 예 회장을 죽이라고 살인교사를 지시하면서 이러한 원칙을 깨 버린다. <무간도2>에서는 인물의 입체성을 통해 경찰과 조폭의 경계를 흐리면서 인물들에게 내재된 혼란스러움을 표현하고 있다.


이렇듯 <무간도> 시리즈는 여태껏 홍콩영화가 쌓아 왔던 ‘이분법의 구도’를 해체하는 동시에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홍콩 반환 이후 2000년대에 선 보일 수 있는 홍콩만의 이야기를 제시한다. 새로운 것의 ‘탄생’과 ‘시작’에는 옛 것의 ‘종말’과 ‘끝’, ‘퇴장’이 있다는 점에서 <무간도2>는 ‘이별’의 징후가 내재되어 있다. 80년대 이후 영국이 홍콩 반환을 추진하려 중국과 대화의 물꼬를 트면서 느꼈던 홍콩인들의 불안감은 ‘홍콩 뉴웨이브’라는 이름 아래 홍콩색이 가득한 영화들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홍콩이 반환된 지 5년도 채 되지 않아 등장한 <무간도>에서는 97년 이전의 홍콩과 영영 헤어지게 될 까봐 긴장하고 있는 동시에 ‘홍콩은 어떤 나라인가’를 계속 되내이려는 홍콩의 당시 분위기가 읽힌다. <무간도> 시리즈는 그렇게 ‘홍콩 느와르’을 완성시킨 동시에 화려했던 홍콩영화의 전성기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더 이상 홍콩 영화가 세계 영화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지금-여기’의 홍콩을 지시하는 극영화가 매우 드물다는 작금의 현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Written by 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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