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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Kids Dec 15. 2021

동화 같은 ‘비정상’들의 이야기

영화 <홍콩 레옹> (回魂夜: Out Of The Dark, 1995)

1.    B급 코미디 영화인가, 공포 영화인가? – 아이러니의 매력

 <홍콩 레옹>은 홍콩의 배우 주성치가 <007 북경특급>, <홍콩 마스크>와 함께 선보인 또 다른 패러디 영화이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뤽 베송 감독의 <레옹>을 패러디하고 있으나 ‘레옹’(주성치 분)과 ‘아군’(막문위 분)의 외양만 비슷할 뿐 내용이나 장르 면에서는 완전히 다른 영화이다. 원제는 ‘혼이 되돌아오는 밤’을 뜻하는 회혼야(回魂夜)로, 억울하게 한을 품고 죽은 귀신들을 퇴치하는 레옹과 아군, 그리고 경비원들의 퇴마기를 그리고 있다.

일명 ‘주성치 영화’는 인물의 문답이 이치에 맞지 않고 대화의 목적이 없는 난센스(None-sense)의 상황에 등장하는 ‘모레이타우(無厘頭)’로 유명하다. 분위기가 진지해지거나 심각해지면, 인물은 질문의 요지와는 동떨어진 기상천외한 대답을 하거나 혹은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상대방이 수긍하게 만든다. 주성치가 출연한 작품 대부분이 그렇듯 <홍콩 레옹> 또한 그러하다. 황당하고 엽기적인, 소위 ‘병맛’이라 일컫는 은어인 아스트랄(Astral)함이 가득 담긴 <홍콩 레옹>은 모레이타우와 섞여 관객으로 하여금 실소를 자아내게 만들며 B급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다.



아이러니한 것은, 대놓고 B급 코미디 영화인 듯하면서도 공포 영화의 몰입감 또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에드거 라이트 감독의 코르테즈 3부작 중 2편인 <뜨거운 녀석들>에서도 비슷한 아이러니가 있다. 별 볼 일 없는 노인들이라고 생각했던 마을 주민들이 사실은 마을의 이미지에 해가 될 인물들을 모조리 살해한다. 돈이나 권력을 바라고 죽인 것이 아니다. 단지 웃음소리가 형편없어서, 기자가 쓴 글의 맞춤법이 틀려서, 곧 이사 갈 예정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을 죽였다. 하찮고 어이없기 짝이 없어 우스꽝스럽지만, 어딘가 미쳐버린 듯한 그들의 맹목적인 신념이 기분 나쁜 오싹함을 안긴다. 모레이타우의 개그 코드나 과장된 인물들의 슬랩스틱은 저렴하고 어이없기 짝이 없으면서도, 연출로 조성되는 순간적인 공포감이 있다. 특히 조명의 사용이 훌륭한데, 오묘한 색채의 조명을 전반에 사용하여 으스스하고 기묘한 분위기가 한층 깊어진다.



부부가 노모를 죽인 범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시점 전후의 시퀀스는 일반 공포영화와 다를 바가 없이 몰입감 넘치고 두렵다. 하지만 무거운 공포는 오래가지 않는다. 부부는 진실을 알게 된 경비원들을 쫓고, 레옹은 이를 막기 위해 부부의 뒤를 쫓는다. 레옹과 부부, 그리고 부부와 경비원들로 이어지는 추격 삼파전과 아내의 자살 소동, 그리고 레옹이 아내를 살리는 장면까지의 시퀀스가 전반의 섬뜩한 분위기를 단숨에 반전시켜 버린다. 얽히고설키는 추격과 몰아치는 모레이타우 개그, 그리고 슬랩스틱 개그가 켜켜이 겹치며 관객을 휘젓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극 중 레옹은 귀신을 퇴치한답시고 위생 랩을 곳곳에 두르고 빙의한 사람을 향해 심벌즈를 쳐 혼이 빠지게 유도한다. 엽기의 극치를 달리는 퇴마 방법이지만 레옹은 당연하다는 듯이 퇴마에 성공한다. 누가 봐도 황당하고 웃긴 상황이지만 진지하다. 가볍게 웃고 넘길 개그로 무장한 코미디이면서도 공포 영화적인 면이 있다. 아이러니한 반전 매력이 있기에 작품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2.    동화 같은 ‘비정상’들의 이야기

사실 <홍콩 레옹>은 혹평도 많고, 굉장히 낮은 평점을 받은 작품이다. 기존 주성치 영화보다 순수 재미 면에서도 뒤떨어지고, 억지스러운 유머 코드를 이해할 수 없다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오히려 황당하고 어이없는 소재의 등장은 작품이 하나의 동화처럼 느껴지도록 환상성을 부여한다. 애초에 헛소리하는 영화가 아니라, 상상의 나래를 펼쳐 만든 꿈 같은 동화이기에 되려 말이 되는 것이다. 레옹은 논리에 맞지 않는 방법으로 귀신을 물리치고 다른 인물들을 위기에서 구해준다. 관객은 척척박사처럼 적재적소에 해결책을 내놓는 레옹을 신뢰하게 되며 소 눈물을 눈 밑에 바르면 실제로 귀신이 보이고, 경마 신문으로 접어 만든 비행모자를 쓰면 진짜 날 수 있다 믿게 된다. 기상천외하고 황당무계한 레옹의 퇴마법은 몽환적이고 오묘한 색감의 조명과 더불어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물어버린다.



결말에서, 원귀가 된 부부의 습격으로 결국 남편의 혼이 씌어버린 레옹은 아군에게 전기톱을 건네며 자신을 반으로 가르는 것이 혼귀를 없앨 방법이라 말한다. 그렇게 레옹은 자신을 희생해 죽고, 이후 생존한 경비대원들과 아군은 정신병동에 수감되고 만다. 경비대원들은 소 눈물을 바르면 귀신이 보인다 어필해보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러닝타임 동안 함께하면서 레옹은 미치지 않았고, 귀신은 실제로 존재하며 이를 퇴마할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 정신병원의 의원과 간호사는 더 이상 정상인이 아니었다. 되려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경비대원과 아군, 그리고 레옹. 정상인 사람들이 정신병동에 갇혀 사실만을 이야기해도 아무도 동화 같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주성치의 작품엔 희로애락이 전부 담겨있다. 눈물 쏙 빼며 웃기다가도 곧장 애달파진다. 한마디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웃픈’ 것이다. 황당한 말인 것처럼 보여도 속에는 묵직한 삶의 메시지가 있다. 광대의 눈물이 비극적으로 느껴지듯 레옹의 이야기도 그렇다. 레옹은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이다. 하지만 레옹은 본인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이 우스꽝스럽다고 생각지도 않고, 틀렸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레옹에겐 자신의 신념과 곧은 믿음이 있다. 사회에서 괴짜 환자 취급받는 레옹은 아군, 경비대원들과 있을 때 그들의 리더가 되고 믿음직한 선봉장이 되어준다.



“내가 무서워하는 게 없으니 미쳤다고 생각하는 거지. 진짜라고 생각 못 해서 무서운 거야. 세상에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상상력이 부족해. 상상력은 어떤 지식보다 중요하댔어. 상상력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지.”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이고, 그 기준은 누가 세운 것일까? 비주류를 대표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레옹을 향한 아군의 절대적인 신뢰와 의지는 다르다는 이유로 현실 사회에서 배척받는 이들에게 한마디 응원이 되어준다. 비범과 특별함은 그름도, 통제해야 할 대상도 아니다. <홍콩 레옹>은 비주류를 위한 이야기로, 그들의 편에서 담담한 위로를 건넨다.




Written by 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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