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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근기 May 12. 2020

허공에 붕 떠버린 시간

-나의 청춘 여행기 10-네팔 카트만두

7박 8일 동안의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마치고 포카라로 내려왔다. 귀국 날짜는 아직 4일 남아 있었지만, 리컨펌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하산을 서둘렀다.  


사실 리컨펌을 하지 않아도 예약한 좌석이 사라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네팔 로얄 항공의 경우는 좀 다르다. 네팔 로얄 항공처럼 취소율과 변경률이 높은 노선의 경우 정원보다 훨씬 더 많은 예약을 받는다. 이 때문에 오버부킹이 생기는 경우가 왕왕 일어난다. 이렇게 되면 누군가는 비행기를 탈 수 없게 되는데, 이때 1순위로 꼽히는 것이 바로 리컨펌을 하지 않은 승객인 것이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전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게를 찾았다. 당시 네팔에서는 리컨펌을 하려면 공중전화를 이용해야만 했다. 레이크 사이드에는 전화나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게가 성황을 이루고 있었는데, 여행자들은 대부분 이런 가게를 이용했다.   


가게 주인이 무슨 용건이냐고 묻기에, 리컨펌을 하려고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주인이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얘기인즉슨, 요즘은 네팔 정세가 불안해서 전화도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리컨펌을 하려면 직접 로얄 네팔 항공사를 찾아가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란다. 얼마 전에도 한 여행자가 포카라에서 전화로 리컨펌했다가, 등록이 안 됐다며 오리발을 내미는 바람에 탑승을 거부당한 일이 있었다나 뭐라나. 하긴, 네팔이라면 능히 그러고도 남지.


당시 네팔 공산당 세력은 공화제를 도입하기 위해 정부와 싸우고 있었다. 갸넨드라 국왕은 왕정 폐지를 주장하는 마오이스트들과 국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고, 이 때문에 카트만두 일대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시위가 벌어지곤 했다. 외국인들의 공간인 타멜은 예외였지만, 타멜 밖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시민들이 내뿜는 뜨거운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로얄 네팔 항공사를 직접 찾아가 리컨펌을 하기로 하고, 카트만두행 그린 라인 버스를 예약했다.

다음 날 아침 7시, 그린 라인 버스를 타고 카트만두로 향했다. 버스는 트리슐리 강을 끼고 이어진 도로를 따라 먼지를 풀풀 풍기며 느릿느릿 산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스쳐 지나가는 마을의 아침 풍경이 정겹다. 굴뚝에서는 아침밥을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닭들은 제멋대로 마당을 뛰어다니고 있다. 학교를 가다 우연히 나와 눈이 마주친 아이는 마치 아는 사람이라도 만난 듯 열심히 손을 흔들어 준다. 문득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나도 어렸을 때는 기적을 울리며 달려가는 경춘선 기차를 보면 신나게 손을 흔들어 주곤 했다. 기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나면 왠지 기분이 좋아지곤 했는데,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포카라에서 카트만두까지의 거리는 200km에 불과하지만, 도로 사정이 안 좋아 무려 8시간이나 걸려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버스가 타멜 입구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경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얼른 짱 게스트하우스에 숙소를 잡고, 부랴부랴 거리로 나와 릭샤를 찾았다. 항공사가 문을 닫을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핫 브레이크 빵집 앞으로 사이클 릭샤가 지나가기에 얼른 그 릭샤를 잡아타고 로얄 네팔 항공사로 향했다.


타멜 삼거리부터 인드라 초크를 지날 때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복잡한 골목길은 평소처럼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고, 긴장감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 더르바르 광장으로 이어지는 큰길로 나오자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길에 차가 한 대도 없었고, 군인들은 바리케이드를 친 채 시위대와 맞서고 있었다. 시위대는 화염병과 횃불을 들고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일촉즉발의 상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샤이클릭샤를 몰던 노인은 짧게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위대 때문에 더는 가기 힘들다는 제스처였다. 내가 봐도 사이클릭샤를 타고 저 군인들과 시위대 사이를 가로질러가는 건 무리인 것 같았다. 노인은 손짓으로 로얄 네팔 항공사가 있는 위치를 알려주었다. 로얄 네팔 항공사는 여기서 멀지 않으니 5분만 걸어가면 된다는 얘기였다.  


사이클릭샤에서 내린 나는 쭈뼛거리며 큰길로 걸어 나갔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내 앞으로 불타는 타이거가 데굴데굴 굴러왔다. 타이어가 도중에 중심을 잃고 넘어졌기에 망정이지....


 허겁지겁 노인이 알려준 골목을 찾아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5분만 걸어가면 나온다던 로얄 네팔 항공사는 15분이 지났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리컨펌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랬다가는 공항에서 더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어쩔 줄 몰라 멍하니 서 있는데, 마침 오토바이를 타고 그 길을 지나가던 한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내가 사정을 설명하자, 그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로얄네팔 항공? 내가 태워줄게. 지금 카트만두는 아주 위험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나는 덥석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빨간 헬멧을 쓴 아저씨는 주저 없이 큰길로 오토바이를 몰고 나갔다. 역시 현지인은 달랐다. 오토바이는 골목을 요리조리 달리더니, 채 3분도 안 돼서 로얄 네팔 항공사 앞에 멈춰 섰다.  

내가 기념으로 사진을 한 장 찍고 싶다고 하자 그는 멋지게 포즈를 잡아 주었다. 그리고 다음에 네팔에 오면 연락하라며, 네팔어로 된 명함 한 장을 건네주고 쿨하게 떠났다. 그는 젊었을 때 네팔 국가대표 레슬링 선수였는데, 서울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에도 참가한 적이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많은 나라를 여행하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신세를 졌지만, 이때처럼 고마웠던 적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항공사 입구로 들어갔더니, 1층에 있던 직원이 리컨펌을 하려면 2층으로 올라가라며, 턱으로 2층을 가리켰다. 그래서 나는 2층으로 올라가 1층에서 한 말을 전했다. 그러자 2층에 있던 직원은 어제부터 리컨펌을 1층에서 한다며 다시 1층으로 내려가란다. 나는 1층으로 내려가 2층에 있는 직원이 한 말을 전했다. 그제야 1층 직원은 세월아 네월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리컨펌을 이렇게 힘들게 해 본 적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후, 전자 항공권이 등장하면서부터 차츰 리컨펌이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리컨펌을 요구하는 항공사가 거의 없다. 물론 아직도 일부 구간에서는 리컨펌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리컨펌을 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무튼 그렇게 네팔 로얄 항공사에서 리컨펌을 하고 나자 갑자기 이틀이라는 시간이 허공에 붕 뜨게 되었다. 스와얌부나트 사원, 보드나트 사리탑, 파슈파티나트 사원 등 카트만트 관광명소는 이미 다 가 본 곳이다. 더르바르 광장은 그동안 한 열 번쯤은 들락거린 것 같다. 박타푸르 같은 카트만두 외곽을 다녀올까, 생각도 해 봤지만, 귀찮아서 그만두었다.  


결국 이틀 동안 아무런 할 일 없이 타멜 거리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토스트와 커피 한잔을 시켜 놓고 2시간 넘게 카페에 죽치고 앉아 있기도 하고, 괜히 기념품 숍을 기웃 거리기도 하고, 식당 앞에서 메뉴를 훑어보기도 하고, 타멜 거리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지냈다. 저녁에는 맥주를 홀짝이며 핫 브레드 빵집 앞 사거리에 쪼그리고 앉아,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들은 느릿느릿하게, 그러나 너무나 평온하게 흘러갔다.


솔직히 그때는 리컨펌 때문에 시간을 그렇게 무의미하게 보내는 게 아까웠다. 리컨펌만 아니었다면 포카라에서 좀 더 알차게 시간을 보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용하게만 느껴지던 그 시간들이 너무 그립다.


요즘은 왠지 매일 시간에 쫓겨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일까. 리컨펌을 끝내고 아무 할 일 없이 타멜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던 그때가 불쑥불쑥 생각난다. 그 후 그렇게 허공에 붕 떠버린 시간을 만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용해 보이던 그 시간들이야 말로, 어쩌면 온전히 나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유용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여행을 가서도 시간을 아껴 쓰는 습관이 생겼다. 바쁘게 사는 습관이 몸에 배어서일까. 저녁에는 마사지라도 받아야 여행을 알차게 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도 모르게 여행의 메너리즘에 빠진 게 아닐까.  


다음 여행에서는 꼭 2006년 겨울 타멜에서처럼, 일부로라도 허공에 붕 떠버린 시간을 만들어 보고 싶다. 하루라도 좋으니 아무 목적도 없이, 그냥 여행지의 낯선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흘러가는 대로, 시간에 나를 맡겨 놓고, 천천히 나를 되돌아보고 싶다.


"가장 위대한 여행은 지구를 열 바퀴 도는 것이 아니라, 단 한 차례라도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여행이다."라고 한 간디의 말이 생각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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