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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두근 Oct 24. 2020

당신에게 진짜 친구는 몇 명이 있나

지란지교를 꿈꾸며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 날은 어린이날 공휴일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무척 바쁜 날이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예전에는 우리에게 아이들이 놀아 달라고 떼를 썼지만, 이제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함께 놀자고 떼를 써도 어림이 없다. 그러면 어쩔 텐가 부부끼리 놀아야지. 그런데 그 날은 아내가 바쁜 일이 있어 아침 일찍 사무실로 나갔다.                    


아내가 출근하고 나니 갑자기 생긴 하루의 자유시간이 당황스럽다. 뭐하고 놀지? 안양에 사는 어릴 적 친구가 생각나서 전화를 했다. 오전에는 시간을 낼 수 있는데 오후 시간은 장담을 할 수 없단다. 직장에서 연락이 오면 직장이 있는 당진 사무실에 나가야 한단다. 일단 그에게로 차를 몰았다. 


그의 집 근처에서 도착하니 10시다. 식당이나 커피숍을 가기 애매한 시간이라 일단 그의 집으로 갔다. 마침 그의 아내도 외출 중이고 애들도 외출했단다. 그가 끓여주는 커피를 마시고 집 근처 안양천을 거닐며 두서없는 근황을 나누었다.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라 허물없고 집안 대소사도 서로 아는 사이였다.                     


퇴직이 가까운 친구는 노후 대책이 걱정이라는 얘기를 했다. 아마추어 당구 고수인 그는 당구장을 하면 어떻겠냐고 내게 묻는다. 당구 초보인 나는 당구장을 몇 번 가보지 않았기에 별로 해줄 말이 없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이야기했다. 근데 친구 직장에서 연락이 왔다. 점심을 함께 먹고 친구는 당진으로 부리나케 가 버렸다.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에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병원을 가기로 했다. 얼마 전부터 이유는 모르겠지만 걸음을 걸을 때 오른 다리가 불편하다. 걸을 때마다 오른쪽 고관절인지 허벅지 인지 약간의 통증이 있다. 집 근처 정형외과를 방문했다. 아뿔싸 오늘 어린이날 휴일이라서 병원 문도 닫혀 있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머지 시간은 무엇을 할까 고민한다. 평소에는 직장일로 시간 여유가 거의 없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출근한다. 직장에 가서 자리에 앉자마자 이런저런 이유로 바빠서 여유란 없다. 주말에는 밀린 집안일에 여러 대소사를 챙기다 보면 주말은 항상 너무 짧다. 하루라도 푹 쉬고 싶은 생각밖엔 없다. 오랜만에 하루의 자유시간이 생겼다. 막상 소중한 자유시간이 생겼는데, 나는 자유시간을 어떻게 요리할지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고민 끝에 산본에 있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뭐해요? 바빠요? 놀러 가도 돼요?”     

“네. 사무실 있어요. 놀러 오세요”     


그가 말하는 사무실은 개인 사무실이다. 그는 한 일 년 전쯤에 회사를 그만두고, 자유인이 되었다. 집 근처에 1인용 사무실을 얻어 사용하고 있다. 이전에도 그의 사무실을 놀러 간 적이 있는데, 얼마 전에 조금 더 좋은 곳으로 옮겼다고 놀러 오라고 했었다.                     


산본역 맞은편에 있는 그의 새 사무실로 방문했다. 책상 2개 놓여 있는 조그만 사무실이다. 그는 10년 전에 일했던 회사에서 만난 직장 동료였다. 회사 일 이외에도 그와 말이 통하는 게 많아서 그 회사를 떠난 이후에도 종종 만난 적이 있다. 회사 일 밖에 모르는 다른 사람들보다 관심도 다양했고, 나와 관심사가 겹치는 것도 많다.  그는 주식투자는 접고 그가 가진 IT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의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그의 사업 구상을 들었다. 그리고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길지 않은 인생인데 남의 일만 하다가 인생을 끝낼 수는 없다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 자기가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이며,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다고. 자녀에게는 무엇을 유산으로 물려주고 싶은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앞뒤도 없고 어디로 튈지도 모르는 얘기를 흥분해가며 오랫동안 얘기를 했다. 그와 나는 서로 느꼈다. 우리는 허물없이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내 말을 상대방이 오해하거나 고깝게 듣지 않고 경청해 준다는 것을.                    


어느 듯 늦은 밤이 되어 집으로 차를 몰면서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나의 친구이다. 생각이 서로 통하는 친구이다. 나는 진짜 친구가 몇 명이나 될까. 다산 정약용이 지은 <죽란시사첩>이란 책에 친구와 만남에 대한 내용이 있다. 


“살구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이고, 복숭아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이고, 한여름에 참외가 익으면 한 번 모이고, 초가을 서늘할 때 서지에서 연꽃 구경을 위해 한번 모이고, 국화가 피면 한번 모이고, 겨울철 큰 눈이 내리면 한번 모이고, 세모에 화분에 심은 매화가 피면 한번 모인다.” 

다산의 얘기처럼 계절마다 보고 싶은 친구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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