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다빈치 공항에 내린 것은 낮의 뜨거운 열기가 식지 않은 오후였다. 떠나온 한국 역시 무더위가 계속 되었지만, 이탈리아의 여름은 습기가 다소 적은 편이었다. 이국 땅에서 서양인들의 얼굴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느낄 수 있었고, 그들의 말씨와 행동, 옷차림, 자유분방한 태도는 동양인들과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크게 감동받았던 것은 건축 양식이다. 모든 건물들이 오랫동안 공들여 다듬어 만든 예술 작품 같았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눈에 보이는 건물들은 족히 지은지 500년은 되었다고 한다. 시내 거리에서 마주한 우체국 건물도 조각품 같은 외관을 하고 있었다. 그냥 사무실로 쓰는 공간에까지 예술의 혼을 입힌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냥 쉽게 지은 건물은 없는 것 같았다.
공항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었다. 피렌체에서 처음으로 두오모 대성당을 마주했을 때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육박해오는 거대한 예술품’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 압도적 위용은 거대한 신성을 품고 있었다.
요트를 타고 ‘베네치아’로 이동해서는 곤돌라를 타고 수상 가옥을 제대로 구경할 수 있었다. 얕은 바다에 말뚝을 박고 서로 연결해서 건물을 올렸다 하니 그게 과연 가능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건물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유리창문을 많이 냈다는 설명도 들었다. 또,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래 전에 오세영 작가가 쓴「베니스의 개성상인」이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그곳에서 분주히 교역하던 상인들의 모습이 그림처럼 그려졌다. 베네치아의 두칼레 궁전 안에 있는 감옥에 수감되었다 탈출한 카사노바에 대한 이야기도 가이드로부터 들었다. 베네치아 출신인 비발디는 카톨릭 사제였지만 건강 문제로 미사를 집전하기 어려워 음악 교육과 작곡에 힘썼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불리는 산 마르코 광장은 웅장하면서도 아늑했고,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플로리안에는 카사노바, 괴테, 바이런이 즐겨 찾았다고 하며, 내가 갔을 때 그곳에선 아리랑 노래가 연주되고 있었다. 베네치아에서 관람을 마치고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는 버스에서 가이드가 비발디의 ‘4계’를 틀어주어 그의 음악을 다시 한번 음미할 수 있었다.
그날 밤 밀라노의 호텔방에 돌아와 깊은 잠에 빠졌는데, 아주 특별한 꿈을 꾸었다. 꿈이라서 내용이 모호하고 연결성도 부족하지만 꾸는 동안엔 무척 진지했다. 꿈 속에서 나는 어디론가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물도 건너고, 산도 넘고 큰 바위와도 마주했다. 32년 전에 졸업한 학교 앞을 달리고, 소식이 끊겼던 친구와도 만났다. 유명해진 친구와도 만나고, 연극계에 몸담은 친구와도 만났다. 난 그들에게 이소룡 흉내를 내며 어설픈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또 열심히 달렸다. 계속 달리는데 반대편 방향으로 뛰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 지인에게 차를 가져와달라고 부탁하려는데 그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꿈에서 깨고 보니, 이런 스토리라면 단편 소설 하나는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쾌하지 않은 꿈이지만 내 심리의 단면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다음날 국경을 넘어 스위스로 이동했다. 인터라켄에 도착해서 넓은 잔디밭을 보는 순간 자연인의 야성이 살아났다. 어린 아이처럼 잔디밭 위를 마구 달리며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스위스의 자연은 맑고 청명했다. 오염되지 않은 원시 그대로의 모습이랄까. 공기도 더 맑은 듯했고, 풀 내음도 더 신선했다.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이 하늘로부터 형형색색의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다. 자유분방함과 즐거움이 느껴졌다. 작은 마을은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 같았고, 내가 그 동화 속에 들어와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인터라켄을 마음에 오래 담고자 28프랑짜리 티셔츠를 사 입었다. 강렬한 배경색 위에 새겨진 ‘interlaken’ 이라는 글자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윽고, 케이블카와 산악 열차를 타고 융프라우요흐에 올라가 멋진 설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얼음 궁전을 구경했다. 구름이 덮으면 멋진 산을 사진에 담을 수 없지만, 여행 내내 청명한 날씨 덕분에 훌륭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가이드는 이를 두고 날씨 요정이 도와주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호텔에 돌아와서는 더 멋진 경험을 하게 되었다. 호텔 바로 앞에 기차역이 있었고, 예쁜 색감을 가진 열차가 역을 드나들었다.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아기자기한 집들이 앙증맞게 소도시의 골목을 이루고 있어서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대게 했다.
다음날 루체른 호수를 지나 빈사의 사자상을 구경하고, 카펠교 위를 걸어봤다. 점심으로 자유식을 먹게 해줬지만 시간에 쫓겨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에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기로 했다. 이 지역은 공식 언어가 독일어인데, 딸이 독일어 전공자라서 직원과 직접 소통이 가능했다. 그래서 함께 갔던 일행들의 주문까지 도와주었다.
다시 전용 버스를 타고 비츠나우 역으로 이동했다. 이번엔 산악열차를 타고 리기산으로 올라가 감성 사진을 찍었다. 점핑하는 사진을 찍어보자며 잔망스럽게 뛰어다녔다. 산악열차로 하산하여 버스를 타고 로카르노로 이동했다. 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이탈리아 영화「welcome to SUD(South)」를 틀어주었다. 로카르노는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장소(피아짜 그란데)이기도 한데, 그날은 행사장 바로 앞에 있는 호텔에 체크인했다.
그리고는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호텔 객실에서 노트북을 펼쳤다. 한국에서 떠나올 때 일을 마무리하지 못해 그것을 처리해야 했다. 포항에 거주하는 손님으로부터 책 제작을 의뢰받은 일인데, 본문 편집은 모두 끝났지만 국립중앙도서관에 신청한 ISBN의 승인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ISBN이 승인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디자이너에게 바코드를 만들어 표지에 삽입해 디자인을 완성하라고 지시했다. 책 본문의 판권 자리에 비워놓았던 ISBN 번호 자리에 숫자를 입력하고 본문 편집을 완성한 후, 인쇄소의 웹하드에 파일을 올렸다. 그리고 몇일 기다리기만 하면 책은 완성될 터였다. 이렇게 해서 한국에서 가져온 숙제를 스위스에서 처리했다. 인터넷을 활용하지 않으면 처리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윽고, 이 장소(피아짜 그란데)를 나중에 추억하고 싶어서, 광장의 노천 주점에서 생맥주를 주문했다. 스위스에서 영어가 통할 것 같지 않아서 메뉴판을 가리키고 읽으며 한 잔을 주문했는데 두 잔이 나왔다. 역시 언어가 다른 사람들끼리 의사 소통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음날은 마돈나 델 사소 성당을 구경하고, 아스코나 호수와 루가노 호수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호수 앞 식당에서 자유식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길 안쪽 이면도로에 있는 명품 거리를 돌아다니며 상점을 구경하고, 멋진 커피숍에 가서 차도 마셨다. 커피숍에서 현지인들이 서로 마주 보고 담소를 나누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우리 일행은 다시 버스를 타고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국경을 넘었다.
다음날은 이탈리아의 남부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가이드는 ‘오드리 햅번’이 나오는「로마의 휴일」영화를 틀어주었다.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주의 시에나에 도착해선 도미니크 성당과 시에나 두오모 대성당을 구경하고, 캄포 광장에서 예쁜 우편 엽서를 구입했다. 오르비에토로 이동해서 언덕길을 올라 오르비에토 대성당을 구경하고, 젤라또를 사 먹었다.
다음날은 로마를 구경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여행이 끝난다고 생각하면 서운할만도 한데, 가는 곳마다 예상을 뛰어넘는 감동을 경험했기에 서운함보다는 기대감이 더 컸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바티칸 박물관에 도착했다. 보통은 2~3시간은 족히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고 했지만 운 좋게도 1시간만에 입장할 수 있었다. 특히 시스티나 성당에서 천정화를 올려다본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미켈란젤로가 4년간 그렸다는 그림에는 혼이 담겨 있었다. 천장화와 함께 좌측 벽엔 모세의 이야기, 우측 벽엔 예수의 이야기가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위대한 거장의 숨결이 느껴졌고 그저 감탄사만 연발했다. 그 인파 속에서는 감탄하는 소리만 들려올 뿐 대화다운 대화는 들리지 않았다. Oh my God! Unbelivable! ...
성 베드로성당 앞에는 긴나긴 줄이 늘어섰다.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성 베드로성당에 들어가는 순간, 이렇게 거대한 건물을 어떻게 지었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그 무게를 떠받치는 기둥이 엄청나게 두껍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줄지어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은 탓도 있었으나, 워낙 큰 성당이라서 앞쪽 끝이 잘 보이지 않았고, 앞쪽에 가서야 비로소 실제로 미사를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신성함, 웅장함, 거대함이 어우러져 하나의 도시를 보고 있는 듯했다. 성당 앞 광장에는 한 편에 베드로의 조각상이 있고, 다른 한 편엔 바울의 조각상이 있다. 베드로는 손에 천국 열쇠를 쥐고 있다. 그 광장은 끝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길었다.
이어서 벤츠 택시를 타고 이동해서 스페인 계단에 도착했다. 오드리 햅번이「로마의 휴일」영화에서 젤라토를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곳이 스페인 계단이다. 예전엔 많은 사람들이 젤라토를 들고 이곳에서 사진을 찍었다지만 현재는 금지되었다. 아마 계단이 젤라토로 오염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내려진 조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어 판테온 신전을 구경하고, 트레비 분수에 도착했다. ‘분수’라고 하기에 그냥 좀 특이한 관광지의 하나겠거니 생각했지만, 실제로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분수와 함께 거대한 조각이 병풍처럼 자리잡고 있었고, 강렬한 햇살을 받아 분수와 조각 건축물은 찬란하게 빛났다. 또 한 번 감탄사를 연발했다. 하지만 소매치기가 가장 많은 곳이 트레비분수 앞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가방을 손으로 누른 채 감상해야 했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캄피돌리오 광장인데, 이곳에는 로마 16대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의 동상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내가 인문학 글쓰기 강의를 할 때 자주 인용하는 ‘명상록’을 쓴 저자가 아우렐리우스 황제다. 그래서 이곳이 더 반갑고 정겨웠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관광지는 콜로세움이다. 설명이 필요 없는 장소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내부에 들어갈 수 없었고 외부에서 콜로세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정해진 일정을 모두 마치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이탈리아’라는 나라는 여행자가 가는 곳마다 상상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전통을 고수하려는 그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고 그것이 그들의 경쟁력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라 전체가 박물관이라는 말에도 수긍이 갔다. 예술혼을 품은 나라, 위대한 예술 작품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 그 정신을 이어받은 후손이 전통을 이어가는 나라가 이탈리아다. 이 나라가 디자인 강국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대로 설명되었다.
스위스는 아름답고 순수한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라서 여행 내내 편안하고 안락했다. 인간의 야성을 흔들어 깨우는 곳, 춤추고 뛰놀게 하는 곳, 살고 싶은 곳이 바로 스위스다. 인터라켄을 처음으로 마주하던 때, 그 청명한 하늘과 잔디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연의 내음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동화같은 풍경 속에 장난감 같은 집을 짓고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자연인의 삶을 엿볼 수 있었고, 그곳에서 받은 감동과 황홀한 추억을 평생 간직하고 싶다.
괴테는 자신의 삶과 지적 성장을 이야기할 때 여행이야말로 가장 큰 배움의 원천이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독일 각지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등을 여행하면서 직접 보고 느낀 경험을 통해 책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생생한 지식을 얻었다고 말했다.「이탈리아 기행(Italienische Reise)」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자신을 시험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 우리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떠한지 연구하는 것은 곧, 우리 삶의 모습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를 탐색하는 작업과도 같다. 이대로 지금처럼 사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아니면 내가 몰랐던 또다른 모습이 있는 것은 아닌지... 원초적 자아로 돌아가 우리의 모습을 스스로 비춰봐야 하지 않을까.
< 후기: 한국에 돌아와서... >
인천 공항에 내리면서 즉시 인쇄소에 전화했다. 책이 다 완성되었다고 한다. 공항에서 바로 인쇄소로 향했다. 완성된 책을 확인하고 포항에 있는 의뢰인에게 연락했다. 다음날 용달로 책을 배달해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용달 기사님과 함께 포항에 책을 배달하고 돌아왔다. 이로써 이번 여행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