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v.daum.net/v/20260313070213548
현경미
나도 모르게 화분 곁에 쪼그려 앉는다. 잘못 봤나 싶어 얼굴을 바짝 대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 겨우내 마음을 졸였다. 물 주는 것도 잊은 채 좁쌀 크기만 한 초록 안으로 자꾸만 스며든다.
작년 여름, 생각할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정원을 만났다. 시골 한적한 곳에 새로 마련한 지인의 집에서였다. 수수하면서도 세련되고 자유로우면서도 단정한 느낌이 주인을 닮았구나 싶었다. 구성이 알차서인지 실제보다 훨씬 크고 넓게 다가왔다. 풀벌레 소리는 어느 숲속인가 싶을 만큼 싱그럽고 다채로웠다.
그곳에서는 어느 것 하나라도 그저 꽃, 나무가 아니었다. 꽃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마다 주인만이 아는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마당 끝 담벼락 오동나무는 손가락 한 마디 크기 때 들인 것이, 어른 키를 훌쩍 넘길 만큼 자랐다. 옆집에서 건너온 씨앗은 벙글벙글 내 주먹만 한 송이꽃이 돼 손님을 반겼다. 가로수 귀퉁이에서 잡초처럼 뽑혀 나가고 말았을 어린 은행나무는 제법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돌멩이 하나에도 사연이 있었기에 주인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나 또한 더위에 얼굴이 익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손끝, 발끝으로 일군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어 그곳을 밟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뭔가 뭉클하였다. 즐거운 한때를 보내다가 돌아가려 할 때였다. 애지중지 기르던 어린 꽃나무 몇을 뿌리째 뽑더니 선뜻 내게 건네줬다.
그중 하나가 지금 내 앞에 있다. 한겨울에도 생기를 잃지 않는 화초들 사이에서 점점 말라가는 꼴이었다. 드문드문 물은 주었지만, 별다르게 식물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보니 그저 살아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런 나날들 가운데 오늘, 초록을 마주하니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여름, 애써 내어준 한나절과 나무 이야기들 그리고 건네받은 화초까지, 마음을 나눠준 게 아니고 무엇일까. 아직은 보일 듯 말 듯 미미해도 초록이 담아 전하는 그 마음은 커서 더 귀하게 여겨진다. 따라온 봄도 흐뭇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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