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흰 것을 검게 물들인다고들 한다. 그런데 "댄스 오브 드림(원제: 애군여몽(愛君如夢))"에서는 정반대로 '진(오군여)'의 순수함 꿈과 탱고에 대한 애정이 '로우(유덕화)'의 잿빛으로 바랜 마음을 새하얗게 물들이고, 무채색이었던 '티나(매염방)'의 생활에도 색채와 웃음을 되찾아준다.
"댄스 오브 드림"은 홍콩에 느와르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여실히 보여준 작품이다. 유덕화, 임가동, 매염방, 오군여 등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빛냈던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여 포근함이 가득한 한 편의 드라마를 선보인다.
꿈을 가지고 댄스 학원을 시작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쌓여가는 고지서에 시름만 늘어가는 '로우'와 '페이(임가동)', 웨이트리스 일을 하며 입에 풀칠하기 바쁜 '진', 모자라는 것 하나 없이 호텔을 경영하지만 무엇 하나 흥미를 가지지 못하고 메마른 삶을 살아가는 '티나'. 이들이 '티나'가 경영하는 갤럭시 호텔 파티의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파티의 대미를 장식하는 자리에서 '로우'는 '티나'를 이끌어 탱고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그 순간 '티나'의 얼굴에 스친 미소를 본 동생 '지미(진관위)'는 '로우'에게 그의 누나인 '티나'에게 탱고를 가르쳐달라는 부탁을 한다. 때마침 '진'도 파티에서 탱고를 멋지게 추는 '로우'에게 푹 빠져 그의 댄스 학원에 수업을 신청하러 오게 되며 그들의 인연은 얽히기 시작한다.
'티나'의 손을 이끌어 탱고의 마지막을 장식한 '로우'. 이때만 해도 '로우'는 꿈에 대한 열정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생활고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탕을 바라는 속물적인 마음이 깃들어
유덕화 아저씨가 탱고도 춘다고? 하며 찾아본 작품이었지만, 정작 나를 사로잡은 건 오군여가 연기한 '진'이었다. 없는 형편에도 댄스 학원에 수업을 신청하러 온 '진'이 '로우'가 건넨 구두를 신고 신나하던 모습은 소위 엄마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자신의 처지에 상관없이 꿈을 좇는 사람의 모습이 저렇게 행복했구나, 꿈은 고사하고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아본 적이 언제였나 되돌아보게 되었다.
'로우'가 건네준 "영혼을 유혹하는" 구두를 신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마냥 즐거워하는 '진'.
보는 사람에게도 이런 감정을 느끼게 만든 '진'의 에너지는 이윽고 '로우', '티나' 등 주변 사람들에게도 점점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로우'는 새로운 강습소를 위해 소위 돈줄인 '티나'에게만 신경을 쏟았지만, 가는 곳마다 웃음이 끊이질 않고,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진'에게 점점 끌리기 시작한다.
'로우'가 잠시 자세를 잡아주자 너무나도 좋아하는 '진'.
결정적으로 '티나'에게 아첨꾼 소리를 들은 뒤 회의감에 젖어 있다가 마주친 '진'에게서 들은 말이 '로우'를 일깨우지 않았을까. 머뭇거리던 '로우'가 '진'에게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냐 묻자 '진'은 눈을 반짝이며 이렇게 대답한다.
무척 매력적이죠. 빛이 나요. 춤을 출 땐 더욱 그렇죠. 선생님이 춤을 출 땐 세상이 환해져요. 제 삶도 환해지고요. 꿈이 뭔지 일깨워주셨어요.
사실 '진'이야말로 '로우'의 잊고 있던 진짜 꿈을 일깨워줬으리라. 여기에 결정적인 한 방으로 '로우'는 녹다운이 된다. '진'의 꿈은 정말 소박하게도 '로우'와 춤을 한 번 추는 것이었다. '로우'가 웃으며 곧 그렇게 될 거라고 말하자 '진'은 팔짝거리며 계단을 내려가다 뒤돌아서 이렇게 외친다. "당신은 정말 최고에요!" 그 순간 '로우'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현실에 찌들어 사무적으로 나오는 미소가 아니라,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환한 웃음이었다.
꿈을 좇다가 현실에 타협하는 이의 모습을 유덕화 아저씨와 임가동 아저씨는 각각 '로우'와 '페이'로 분해 재밌는 콤비를 이뤘다 "무간도(2002)", "파이어스톰(2015)" 등 항상 액션, 느와르 장르에서 대치하거나 동료로 나오던 두 아저씨가 티격태격하면서도 죽이 잘 맞는 파트너로 나오는 자체가 신선하고도 참 잘 어울렸다.
쌓여가는 고지서에 한숨만 푹푹 늘어가는 '로우'와 '페이.'
그 절정은 고층 빌딩의 값비싼 강습소를 바라보며 심기일전해 고함을 외치던 장면이었다. 속세에 찌든 이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혀를 차면서도, 사실은 나도 다를 바 없는 걸 알고 있으니 이런 걸 두고 동족 혐오라 불러야 하겠지.
고층 빌딩의 비싼 강습소를 얻는 그날까지 힘내자며 큰 소리로 외치던 '로우'와 '페이'.
두 아저씨가 생각보다 탱고를 멋들어지게 추는 모습도 장관이었다. 아직 30대의 임가동 아저씨는 그렇다 치더라도 유덕화 아저씨는 40대에 진입한 시점이었는데, 어쩜 그렇게 각이 서고 날렵하게 탱고를 출 수 있다니 하며 연신 감탄했다. 젊을 때부터 가수도 겸하고, 댄스곡도 무리 없이 소화하던 실력이 여기서 발휘되는 걸까 싶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콘서트에서 댄스곡 '鑽石眼淚(찬석안루)'로 현란한 댄스를 보여주던 게 어디 갔을까.
댄스 실력도 댄스 실력이지만 저 몸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노력하고 혼신의 힘을 다했을까.
한편 메말랐던 '티나'의 삶은 '탱고'와 '진', 그리고 학원에서 함께 배우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며 점점 촉촉히 적셔지고, 댄스 학원의 작은 파티에서 진정으로 행복한 삶에 한 발짝 다가선다. 댄스 학원 사람들도 계속 '티나'의 굳건히 닫힌 마음을 두드리고, 진정성으로 솔직히 다가가는 '진'에게 누가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있을까.
명색이 댄스 학원이라고, 파티에서 작은 뮤지컬 형식으로 춤과 노래를 부른다. 학원 사람들을 외계인 보듯 하던 '티나'는 점차 그들과 동화되어 싱그러운 얼굴로 파티를 즐기게 된다.
그러나 댄스 강습의 목표였던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호의로 한 일이 되려 어그러져 '로우'와도 갈라지고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는 듯했다. 하지만 '로우'의 진심 어린 사과와 더불어 댄스 학원 사람들을 좋아하게 된 '티나'의 마음은 그대로 있었다. 영화는 '로우'가 '티나'를 비롯한 댄스 학원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진'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하며 끝을 맺는다.
참 이렇게 내내 행복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영화를 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도 모르게 웃음이 자꾸 나오는데, 코믹해서가 아니라 유쾌한 에너지가 한가득이다. 인생 영화를 이렇게 만나다니, 이야말로 행복한 일이 아니고서야 무엇일까. 울적하거나 갈피를 잃었을 때 꺼내보고 싶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