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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kmo Feb 09. 2022

어떤 이유에서 글을 써야 하나?

과연 내가 남들에게 읽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요즘 오랜만에 고향에 온 느낌이다. 사실 진정한 고향은 서울이고, 흘러 흘러 이렇게 독일 드레스덴에 10년 가까이 살아가고 있으면서 뒤돌아보면 해놓은 것도 성취한 것도 없는 인생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서 살았다고는 생각하지만, 무언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기도 했다. 때로는 하루에 12킬로씩 달리기도 하고, 단식도 하면서 건강한 삶을 지키려 노력했지만 신체의 건강과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할 때, "밀리의 서재"를 소개받아서 이용할 기회가 생겼다. 처음에는 생소한 인터페이스와 느린 로딩 속도(해외이용이라서 그런지도)로 인해 금방 안 쓸 것 같았으나, 출퇴근 시에는 오디오 북, 잠자기 전이나 시간 날 때마다 손에 들고 읽게 되니 점점 재미도 생기고, 내가 몰랐던 철학, 에세이, 소설 등을 접하면서 다양한 생각과 느낌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이런 느낌이 들면서 두뇌에서는 그동안 쓰지 않았던 뉴런들이 다시 자극이 되는지 약간 간지러운 느낌도 든다.


사실 책을 멀리하게 된 것은 컴퓨터 전공 후 직업으로 프로그래밍을 하고 나서였다. 그 전에는 류시화, 라이너 마리아 릴케, 알퐁스 도데, 미카엘 엔데, 헤르만 헤세 같은 번역가/작가들의 책을 읽으며 삶에 통찰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었다. 어느 정도 자신감을 회복한 후에는 책 대신에 게임을 했었다. 1인칭 롤플레잉/어드벤처들을 좋아해 폴아웃, 엘더스크롤과 근래에는 사이버펑크 2077과 윗쳐를 마지막으로 했다. 다시, 책들을 가깝게 하게 된 계기는 사실은 처음에 리디북스에서 제공하는 리디 셀렉트에 가입을 하고 나서였다. 세상은 이제 e북으로 넘어가고 있는지라, 아마존 킨들도 사고 한국 책은 이제 다운로드하여서 사용할 수 있어서 언제든 내가 마음만 먹으면 쉽게 다양한 작가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기분 좋게 천천히 책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덕분이기도 하다.


십 대일 때, 열심히 일기를 썼던 기억도 있는지라. 나에게도 어쩌면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다시 책을 읽게 만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현재까지 많은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리디에서 읽었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나에게 상상력을 다시 불러줬던 작가의 불씨 같은 역할을 하였고, 밀리에서 추천하는 "불편한 편의점"과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약간의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보태준 감사한 인연들이다. 거기에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의 작가, 황보름님은 나와 같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 아닌가? 사실, 책을 많이 읽지 않아서 아직은 등장인물, 플롯, 구성에 대해서는 아직 익숙하지 않으니까, 아주 짧은 에세이 식이 좋은 접근법이라는 말을 듣고, 일단은 1200자의 길이를 맞추면서 써보려고 한다. 당연히 다른 책들을 가까이하며 말이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할아버지와 꿀벌과 나"라는 책이다. 영어 제목은 "The Honey Bus"로 되어있다. 매러디스 메이가 쓴 회고록으로 어머니의 절망과 무기력으로부터 벗어나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 성장한 한 여성의 기록이라고 출판사 서평이 적혀있다. 이 책을 읽게 되면 어린 시절의 나와 오버랩되면서 천진난만한 그때로 돌아가 할아버지와 진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꿈과 같은 공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상실감, 부모와의 관계 단절로 인한 불안감, 가족의 재정립과 같은 어린 나이에 경험하고 싶지 않은 감정적인 상처들을 어떻게 치유하며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는지 흘러가듯 읽게 된다. 나에게도 이런 할아버지가 있었다면 양봉업을 자연스럽게 이어받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메레디스 메이 작가님 사진들과 할아버지와 같이 찍은 사진 (출처: 아마존)
The Honey Bus 원서 커버와 실제 Honey Bus사진 (출처: 아마존)

삶이란 원래 상처받고 회복하고를 무한 반복하는 과정에서 패턴을 찾고, 적당한 기술을 배우며, 자기만의 방식을 터득하여 죽기 전까지 고집스럽게 그 방식을 나에게 적용하거나 남에게 강요 혹은 설득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이 책은 꿀벌들로부터 배운 여러 가지 자연의 법칙들을 자연스럽게 나의 삶과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마치 할아버지가 나에게 직접 말씀하듯이 말이다.


아마도 글을 쓴다라는 것은 그 많은 꿀벌들이 자기만의 방식과 철학들을 조용히 나와 다른 꿀벌들에게 속삭이듯이, 이 글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읽혀, 보다 다양한 생각과 관점들을 넓히고 내 안에 있는 강력한 에고를 우주만 한 크기의 의식과 비교하여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는 작은 씨앗을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아주 속 좁은 바람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남을 억지로 설득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글이 아닌  과거의 나를 아주 조금씩 바꿀 수 있는 자아성찰에 도움이 되는 글을 여기서 쓸 수 있기를 바라며 이번 글을 마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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