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서로 조화롭게 사는 세상

by 오초심 수필집

지구상에는 남자와 여자가 존재한다. 우리는 남자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 없듯이 여자 없는 세상 또한 상상할 수 없다. 세계 인구가 70억 명을 넘어 오늘날과 같이 번성하게 된 것도 남녀가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지구상의 인구 중 절반 정도가 남자이고 절반 정도가 여자이다. 그러나 인구 구조상으로는 남녀가 평등했을지 몰라도 역사적으로는 평등하지 못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남녀의 지위는 역사적으로 평등하지 않았다.

유교를 국시로 택했던 조선 시대는 우리나라 역사상 남녀의 차별이 가장 극심했던 시대였다. 남존여비라는 의식이 깊이 뿌리내렸던 조선 시대는 사회 제도의 대부분이 남성 위주로 조직되어 존재했었다. 벼슬길에 나아가는 관문인 과거 제도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으며 그로 인하여 사회의 엘리트 계층은 남성 일색이었다.

여성은 학문의 길에 들어서는 것조차 금기시되었으며, 혼례 전에 여성이 하는 일이란 가사· 자수 등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한 활동으로 제한되었다. 한마디로 조선 시대 여성에겐 자신의 꿈과 이상을 펼쳐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변하였다. 20세기에는 불가능하게 생각되었던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으며, 사회 각계각층에서 여성들의 눈부신 활약이 지속되고 있다.

남성들의 인식도 많이 변하였다.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남편은 직장에 나가서 돈 벌어오고 아내는 가정에서 가사를 전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당시의 남성들은 집에 와서는 가사에 대해서는 무관심이었으며 전혀 도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맞벌이가 늘고 핵가족이 보편화되면서 부부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가정에서 남편이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널고 청소를 하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게 되었으며 오히려 그렇지 않은 남성들이 이상하게 취급받는 세상이 되었다. 요즘 젊은 부부 중에는 육아까지도 공동으로 분담하는 경우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두고 젊은 부부 세대의 부모 세대는 못마땅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아마 그들에게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며 빨래를 널고 청소를 한다는 것 또한 용납이 안 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이 변했음을 이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며 이러한 변화가 지극히 옳은 것이라고 인식해야 한다.

나는 언젠가 ‘결혼한 여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세상은 과연 어떨까?’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남녀가 결혼을 하면 결혼 행진곡을 하는 것만큼 부부가 평등하게 출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후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 특히 아기가 태어난 후의 직장 여성의 삶은 매우 고달프다.

아기는 여성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닌데 우리나라는 아이 출산 후부터 육아와 관련된 짐을 거의 전적으로 여성에게 지우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하여 아이가 있는 직장 여성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선 아이를 맡기는 것부터가 큰 고역이다. 복지 선진국처럼 보육을 국가가 책임져 주지 않는 현실에서 안전하게 아이를 믿고 맡길 곳을 찾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직장 내의 문화도 아직 여성에게 불리한 구조로 되어 있다. 대부분의 직장에서 아이가 있는 기혼 여성에 대한 배려는 거의 없으며 어린이집에 맡긴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조금 일찍 퇴근하는 것조차 눈치가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퇴근하자마자 늦을세라 부랴부랴 어린이집에 들러서 아이 데려오고 집에 돌아오면 집안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옷 갈아입고 씻을 사이도 없이 가사 노동이 이어진다. 설거지하기·청소하기·세탁기 돌리기·빨래 널기·저녁 준비하기·아이 숙제·준비물 챙기기 그야말로 몸은 천근만근 파김치가 된다.

저녁 8시경 퇴근한 남편은 식사하자마자 소파에 앉아 TV 리모컨만 연신 눌러대고 있다. 속에서 부아가 치민다. ‘저 화상, 저녁 설거지라도 좀 해주면 손에서 덧나나. 아이구 내 팔자야!’ 아이가 있는 기혼 여성의 입장에서 하루 일과를 상상해 본 것인데, 실제 현실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기혼 부부의 남녀 인식과 역할이 과거에 비해 많이 바뀌었다고 하나 나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맞벌이 부부가 대부분인 현실에서 남편이 아내의 가사를 돕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무엇보다 고통을 분담한다는 인식이 뚜렷해야 한다.

남성과 여성은 피아노의 흰 건반과 검은 건반의 관계와 같다. 흰 건반만으로 소리가 온전할 수 없듯이 검은 건반만으로도 소리는 불완전하다. ‘남녀가 서로 조화롭게 사는 세상’ 이것이야말로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