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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월의 범섬 Nov 28. 2019

사물에게 말 걸기

마루 끝자락에서


  팔월 한가위 명절이 반갑고 좋지만, 가난한 집 며느리도 배탈이 날 만큼 풍성하지만, 어머니 넋두리 풍경 또한 나에게 위로가 되기도 한다.


왁자지껄 집안과 마당을 채웠던 소리가 사라지면, 모든 시간이 멈춰버린 듯 또 다른 그림이 채워진다. 마루 끝 적당히 걸쳐진 빛이 아슬아슬하기도 하다. 누렁이는 눈꺼풀을 내리고 올리기를 반복하다가 뜬금없이 잔디마당을 한 바퀴 돌고 와서는 괜히 긴 혀를 내밀며 내 앞에서 헥헥 거린다. 마루 끝자락에서 무릎을 껴안고 볕을 쬐던 나는, 잔디와 시멘트 절반씩 차지한 마당이 한가위 볕에 뜨겁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리고 마당 너머로 공기를 짓누르는 자동차 저음의 소리가 출렁거린다고도 생각을 했다.


볕 좋은 마당을 내다보는 며느리 등에 대고 어머니는 혼잣 말씀을 한다. 어머니 형제 이야기, 결혼해서 아들 낳은 이야기, 어머니의 시어머니 이야기, 남편 이야기가 작년에 이어 똑같이 마당을 채운다. 나는 어머니 얘기를 듣다가 졸다가를 반복하며 한낮의 빛이 참 풍성하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러다 잔디 마당으로 안개처럼 스며드는 유년시절 수채화가 그려진다.

할머니 뜨끈한 아랫목 이불솜에서 빠져나와 방문을 열었던 아홉 살. 마당의 환한 빛이 내 몸에 쏟아지던 따스했던 그 순간. 감기약에 취했는지 혼자여서 무서웠는지 눈부신 그 빛이 그렇게도 반가웠다. 현기증을 멈추려고 눈 뜨지 못해 서 있던 찰나에도 저 볕은 담요처럼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일터로 나가고, 친구들도 학교로 가서 동네는 조용했다. 온 동네의 정적이 할머니 마당으로 고여 드는 것만 같았다. 그 침묵은 끝내 나를 휘감아 현실인지 꿈인지 혼동을 주었다. 지난밤 감기 알약을 삼키지 못해 등짝을 맞은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알약을 목 안으로 삼켜야 하는 이유는 외로움을 넘겨야 하는 이유였다. 마지막일 것 같았던 할머니의 끈을 잡으려 알약을 삼키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꾸만 혓바닥에 홀로 남겨져 까슬거렸다. 결국 약은 밥그릇에 내뱉어졌고, 할머니께 등짝을 맞은 나는 어떤 이유도 없이 주저앉아 엉엉 울었었다. 낮은 천장의 방바닥에 주저앉아 울면서 밥그릇 안의 형체모를 알약을 힐긋힐긋 쳐다보던 아이. 그 모습을 떠올리며 볕을 마주하고 서 있었던 아이.

그 시절 볕이 다시 또 내 머리위로 내린다. 누렁이는 다시 내 앞에서 헥헥거린다. 잔디마당과 시멘트의 눈부심으로 잠시 나는 유년 필름을 보았나보다. 아니면 시어머니 낮은 넋두리에 잠시 꿈을 꿨나 보다. 어머니는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이야기를 풀어내고 계신다. 어머니 사연이 마당 안으로 다시 또 쌓인다. 위로가 되는 순간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안부를 묻기 위해 가끔은 모른 척 넋두리를 풀어내고 있는 거니까.

또다시 누렁이가 마당을 어슬렁거린다. 누렁이 젖가슴도 따라 출렁거린다. 한가위, 마당 가득 볕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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