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하고 쿨하고 나답게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

by 구환회

'왜 많이 팔렸지' 궁금한 이번 주 급상승 도서

[2021년 1월 4주] 1/25~1/31


90년대 그런지 록 밴드들은 뜯어진 청바지, 허름한 티셔츠, 낡은 카디건을 입었다. 그들은 정해진 틀을 거부했기 때문에 패션 역시 규정이 없어야 했다. 가죽 바지를 입고 머리를 부풀렸던 전 시대 메탈 밴드들과 대조된다. 모든 밴드가 이 흐름을 따르다 보니 '대충 입는 것이 하나의 규칙'이 됐다. 역설이다. 어떤 규범도 따르지 않겠다면 수트를 입고 무대에 올라도 되는 것이 펑크 정신 아닐까. 90년대생 여자 창작자 10명의 인터뷰를 모은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 패션과 아무 상관 없는 이 책에서 박서희의 말을 읽다 떠올린 기억이다.


x9791160404531.jpg 저자가 먼저 생각한 제목은 '우리가 사랑한 미래들'이었다고 한다.


그는 모델이지만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하지 않는다. 대신 전복적이다. 그런데 이 모습이 유행이 되어 남들이 따를까 봐 염려한다고 한다. 나다워지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나다움을 규정하는 것 역시 나라는 소리로 들린다. 10명의 인터뷰이를 묶는 세 가지 키워드 중 첫 번째는 이 '나다움'이다. 그들은 남이 아닌 나의 시선을 소중히 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나다워지는 것에 성공했다. 두 번째 키워드는 '너의 존중'이다. 나도 잘 되어야 하지만 너도 잘 되어야 한다. "약한 존재에 대한 무시와 공격만큼은 참기 힘들어요." 이주영의 말이다.


세 번째 키워드는 '연대'다. 사회적 기준에서 높은 성취를 이룬 열 명의 이름을 보면 책을 읽기 전에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타고난 천재성을 바탕으로 남의 도움 따위 없이 혼자서 모든 걸 이룩했으리라고. 하지만 그들은 뜻을 같이하는 누군가의 지지와 응원이 필요했다고 한결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 대상은 가족, 동료, 팬, 커뮤니티 누구여도 좋았다. 김초엽("혼자가 아니라는 감각만이 여성들을 미래로 나아가게 해요.")과 이길보라("혼자서 굳게 믿을 수만은 없다.")의 말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음으로써 우리는 변화를 꿈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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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유선애는 90년대생 여자들을 만날 때마다 새롭게 다시 살고 싶다는 기분을 느꼈다고 밝힌다. 그런데 책 전체와 모든 인터뷰를 열고 닫는 그의 글도 멋지다. 특히 예지를 소개하면서 내린 '힙'과 '쿨'의 정의는 강력한 펀치라인이다. 변화의 최전선에 있고 독창적이지만(힙) 내가 선두에 있다는 걸 드러내지 않는 것(쿨). 이처럼 힙하고 쿨한 한 명의 인터뷰어와 열 명의 인터뷰이가 만나 명언제조기 책을 일궈냈다. 밑줄 치며 읽게 되는 말이 넘친다. 인터뷰 모음집의 중요한 덕목은 통일성이다. 이 책만큼 결과 색이 고른 인터뷰집은 드물다.




https://youtu.be/arQC1MdDm8k

수트를 입은 펑크 밴드는 사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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