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속은 무소속

파친코

by 구환회

'왜 많이 팔렸지' 궁금한 이번 주 급상승 도서

[2021년 2월 1주] 2/1~2/7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훗날 『파친코』『이방인』이나 『안나 카레니나』같은 '첫 문장이 유명한 명작' 리스트에 오르게 해 줄 문장이다. 이어서 불과 열 페이지 안에 무려 여덟 명의 죽음이 언급되는 첫 번째 장은 '일상으로 돌아가 여느 때처럼 일을 하기 시작했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책에는 비슷한 여운을 남기는 문장들이 여럿 등장한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고국이라는 게 없어." "삶은 원래 괴로운 거야. 그래도 살아야지 어쩌겠어.") 이렇게 이민자 4대 가족은 담담하고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간다.


x9788970129815.jpg '파친코'는 성공도 실패도 불확실한 재일 한인들의 삶을 은유한다.


1933년 고향 부산 영도에서 목사인 남편과 함께 오사카로 이주한 양진(2대). 그의 두 아들(3대)은 평생 '민족'이라는 외적 정체성과 '나'라는 실제적 존재 사이에서 갈등한다. 점잖고 학구적인 첫째 노아는 일본인이 되기를 꿈꾼다. 성격이 보다 쾌활하고 행동과 계산이 빠른 둘째 모자수는 일찍이 사업에 성공한다. 형과 달리 원래 국적을 유지한다.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4대)은 사람의 좋고 나쁨은 '국적'이 아닌 '개인'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바꿀 수 없는 운명은 끌어안겠다고 마음먹는다. 이 결론은 책의 단호한 첫 문장과 연결된다.


『파친코』는 이민자이면서 계속 한국 이름을 유지한 작가 이민진이 30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다. 대학 3학년이던 1989년 일본 거주 조선인들에 대한 강연을 들으며 구상을 시작했다고 한다. 80년간의 세월을 무대로 펼쳐지는 강렬한 드라마와 최소한으로 절제된 문장들이 만나 격조 높은 서사시를 완성했다. 4대를 이루는 모든 가족 구성원은 모두 자립적이며 투쟁적이다. 너무 이상적으로만 그린 것일까? 작가는 밝고 어두운 인물상을 균형 있게 배치하는 것보다는 그들 각자가 맞게 되는 다양한 결말을 통해 이야기에 입체성을 부여하는 편을 택했다.


81537473_10157304332826749_5003550815810486272_n.jpg 버락 오바마가 뽑은 '2019년의 책'


버락 오바마를 비롯한 독서 셀럽과 언론의 극찬을 받았고,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국내에는 2018년 3월 출간되었다. 지난 1월 말 유튜브에 올라온 작가의 한 강연 영상이 주목받으며 판매가 급증했다. 열기는 오래 이어질 전망이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애플TV+'는 8부작 드라마를 제작한다. 역시 한국계 이민자 가족을 다룬 영화 <미나리>가 작품 안팎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두 작품을 나란히 소개하는 언급이 많아질 것이다. 외적 이슈를 제외해도, 무엇보다 이 '현대적 고전' 속 꿈틀거리는 이야기의 생명력은 매우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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