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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경김웅기 Mar 20. 2020

우리의 희망은 같이 자랐다

기형도 시인을 만나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쓸쓸한 밤눈들이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앉을 것임을 안다.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이 물러가면
눈은 또 다른 세상 위에 눈물이 되어 스밀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때까지 어떤 죽음도 눈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詩作 메모> 中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는 폭력은 위계적이지만 피해는 민주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진정 '우리'의 것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해 감히 의문 부호를 달지 않기로 하겠다. '스모그'처럼, 모두에게로 수렴하는 무한한 위험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요즘 같은 세상엔 뛰어난 선각자 한 명에 의해 대중이 이끌리는 환경이 그리 여의치도 않고 합당하지도 않다. 다시 말해, 개인성이라는 것이 시간을 거듭할수록 첨예해지고 있다. 다만 개인의 경계를 지키는 선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마련하고자 모든 운동이 존재할 뿐. 그렇다면 우리에게 공동으로 남은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왜 개인이면서 공동이어야 할까? 왜 공동성이 요구되는 걸까? 남겨진 질문들.

     초등학교 6학년 무렵, 나는 수능 공부를 하는 누나에게서 시 한 편을 들었다. 그것이 기형도 시인과 나의 첫 만남이었다. <엄마 걱정>은 '방 안에 찬밥처럼 담'긴 내가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렸던, 유년의 '차가운 윗목'을 오늘의 손이 쓸어보는 시다(「엄마 걱정」, 1985.4). 이 시를 읽고 초등학교 6학년이 느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슬프다' '나도 엄마를 기다릴 때가 많은데' '엄마는 언제 올까?'... 정말 어머니는 언제 일을 끝마치고서 돌아올까 하는 생각을, 그 과정에서 탄생하는 애상을 느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감상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시간이 한참 흘러 대학 졸업반이 되어서야 나는 다시 한 번 기형도 시인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좋아하는 시인에 대해 A4로 5장 내외 분량의 글을 쓰라는 과제 때문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는 시인은 많았지만 좋아하는 시인은 딱히 없었다. 기형도라는 이름도 단지 강렬한 기억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오로지 과제를 써야 해서, 나는 애써 '찬밥처럼' 담겨 있던 한 아이의 '방'이라는 공간으로 시선을 옮긴다. 아이는 슬프다. 아이를 슬프게 하는 것은 방이다. 이 방이란 공간은 누가 만든 것일까? 아이를 다그치는 '어머니'(<폭풍의 언덕>, 1982.4)가 보인다. 중풍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는 '아버지'(<너무 큰 등받이 의자-겨울 판화7>, 1988)가 보인다. 방죽에서 겁탈당한 아이의 '누이'(<안개>, 1985)가 보인다. 희망이 없어 보였다. 자신보다 큰 몸집의 문제들이 너무 많아서 차갑게 식어가는 아이는 밤이 되도록 울어도 소용이 없어 보였다. 졸업반의 대학생은 어둠의 질감 이토록 끔찍한 것이었던가 상상한다. 그리고 한동안 그 어둠이란 게 이 시인의 전유물처럼 느껴졌다. 과제 몇 장을 갈겨쓰고 나니 새벽이었다.

     나는 졸업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원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기형도 시인을 만다. 농담 같지만 대학 졸업장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대학원으로 진학하게 된 나에게 '연구'라는 단어는 너무 버거운 것이었다. 그것은 어떤 대상에 대해 밤낮으로 공부하고 수많은 가설을 세우고 부러뜨리면서 나아가는 고행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경하는 선생님과 좋은 선배들의 도움으로 기형도 시인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었다(하마터면 기형도가 싫어질 수도 있었는데!). 비록 대단한 저서를 집필한 것도 아니고 학위논문을 쓴 것도 아니었지만, 내 생에 최초로 형식을 갖춘 글을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쓸 수 있었던 기회는 개인적으로 아주 값진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그때의 느낌을 생각하면 충분히 의욕적이게 되고 성취 욕구가 생긴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공간적 감각으로 다시 기형도 시인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유토피아란 게 있다. 다들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상상 속에 존재하는 이상적 공간(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1516). 없으면서 있을 법한 역설의 공간. 시인이라면 누구나 형이상학에 대한 고민을 하기 마련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시인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기형도 시인이 가지고 있 유토피아 무엇일까? 이 의문점은 '유토피아가 있다'는 말을 이미 전제했다. 또한 이것은 어둠으로부터 그를 조금 비껴가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 즉, 그의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나는 하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는 기초가 되는 글들을 마구잡이로 읽어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희망에 대해 전기적으로, 또 텍스트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어 처음엔 놀랐다. 기형도 시인이 조금이라도 따스하길, 누구나 바랐던 것처럼. 차갑게 식어가던 방에서 탈출한 아이의 시선으로 창출해낸 비현실적 공간들이 켜켜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기형도 시인은 <전문가>(1985)나 <집시의 시집>(1986) 등의 작품을 통해 이방인을 등장시킨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암울함이 느껴지는 아이가 대면하거나 관찰한 사람들은 '이 동네'에서는 낯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저마다의 규칙을 가지고 행동하지만 그것은 마을의 규칙을 항상 비껴간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비일상적 규칙'들을 아이가 긍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불어 <숲으로 된 성벽>(1986)이나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1985) 등을 통해 비일상적 장소도 나타난다. 이때 공간과 장소의 차이점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공간은 좌표 또는 물성이 있어야만 가능하지만 장소는 개인의 경험과 마음이 투영된 '곳'이다. 이 비일상적 장소는 반드시 상상 속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이는 유토피아가 된다. 비일상적 장소 내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 내지 그것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은 화자를 통해 긍정적 의지로 표현된다. 즉, 기형도 시인에게 있어 유토피아라는 것은 비일상에 좌표를 찍고 일상의 알레고리를 형성해 현실을 풍자하고 희망을 향해 개진하는 작은 아이를 성장시킬 수 있었던 장소였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의 문제를 살펴보자. 우리는 현재 전염병부터 혐오까지, 우리의 생활에 저촉된 수많은 멍에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국가적 차원의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가! 정치인들이 분명 알아서 할 것이다!라고 하기엔 우리가 아는 게 또 너무 많다. 만일 '나는 잘 살고 있어'라는 다소 쉬운 답을 내놓는다면, 그문제를 회피하는 동시에 문제를 방관해버리는 우를 범하는 것. 물론 현실적으로는 우리의 삶 속에 눈치도 없이 침범하는 공동이라는 가치, 그것을 반길  없다. 나 살기도 바쁘니까. 하지만. 정말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절대적인 혐오로 환원되어서도 안 될 일이라는 것. 사는 게 너무 바빠서, 나 하나도 건사하기가 힘들어서 스모그처럼 번져 있는 사회 내 무수한 폭력을 먼 나라 이야기처럼 생각해버리게 되는 어떤 구조. 기형도 시인의 유일한 시집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1989)을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아무리 나려도 쌓이지 않는 진눈깨비'(<진눈깨비>, 1988)처럼 뉴스를 통해, 인터넷을 통해 우리가 접하는 무수한 폭력이 나의 일은 아닐지라도 그 한 점 한 점의 '눈'들이 바로 무참한 겨울이란 사실을. 그리고 그 겨울이 아직 도래하지 않은 비일상적 장소에서 파견된 수많은 이방인들이 어쩌면 답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 하지만 그 이방인들은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라는 공간 안에서 태어난 존재들이었음을 기형도 시인의 시에서 희망이란 단어로 치환하고 있으므로. 우리도 우리의 이방인을 마주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그들이 살아갈 만한, 그래서 다시 정립된 '우리'의 장소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미세먼지 자욱한 서울의 거리를 걸어갈 때면, 숨조차 쉬기 힘들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과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망칠 수도 없다. 내가 내 인생을 포기하는 순간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썩고 마니까. 전환해야 한다. 내 안에 새로운 인물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내보내야 한다. 그들이 각지에서 만나야 한다. 그제야 현실은 교란되고 정치는 일어난다. 이 세상이 우리가 사는 곳이다. 아무도 모르게 핀 목련이 눈송이처럼 떨어진다.



기형도 시인(1960-1989)
1985년부터 1989년까지가 '시인'으로서의 생애다.
단 한 권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을 냈다.
그에게는 어린 시절, 누구에게도 자랑하지 못한 상장을 종이배로 접어 도랑에 흘려보낸 기억이 있다.
여전히 많은 시인들, 그리고 습작생들이 좋아해서 여전히 어딘가 살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 글은 학교에 출품했던 <이야기가 있는 서가-기형도 30주기 추모>의 서평을 개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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