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운명을 말하기엔 우린 잘 모르잖아요
어플로 만나 운명론에 빠진 그 사람을 경계하다
요즘 비혼을 종종 생각했다. 지난 연애들은 결과론적으로 실패했고, 나랑 맞는 사람이 있을까 싶고, 주위 소개팅도 영끌해 다 써버렸고, 역병이 창궐하여 새로운 모임에 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동시에, 언젠가 마음이 변해 나이 들어 결혼이란 게 하고 싶어지면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 있겠단 걱정도 들었다.
내가 자발적 비혼고민자인지, 타의적 비혼고민자인지 확인하기 위해 최후의 수단(?) 소개팅 어플을 사용하기로 했다. 소개팅 앱들을 제대로 베타테스트 하기 위해 썸데이, 스카이피플, 다이아매치 등 여러 종류를 다운받았다. 지난 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써 본 가치관 어플은 빼고.
어느 날, 첫 매칭이 성사됐다. 얘기를 나눠보니 가까운 동네 사람이었다. 왠지 당근마켓을 통해 이웃을 만나는 친근한 기분이 들었다. 가볍게 평일 저녁, 집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마주한 첫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안경 낀 남자를 선호하는데, 그러한 외향을 갖추고 있었다. 키도 커 보였고, 깔끔히 차려입은 셔츠도 괜찮았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소개팅에 임해보기로 했다.
대화 중간, 갑자기 그 남자가 손으로 내 옷을 가리키며 웃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어떻게 서로 위아래 옷 컬러를 하늘과 검정으로 맞춰 입은 거냐고, 남들이 보면 커플인 줄 알겠다며 웃었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식당이 어두워서 옷 색이 잘 안 보였을 뿐더러, 내 눈에는 그의 하늘색과 나의 하늘색은 톤이 완전 달랐다. 그럼에도 호감에 대한 긍정적 사인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그 뒤에 그가 계속 옷 얘기를 반복하기 전까지는.
소개팅에서 만난 상대와 서로 호감을 나누기에 공통점만큼 좋은 게 없다. 실제로 우린 동네가 비슷하며, 입고 온 옷 톤이 유사한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운명을 주장하기엔 살아온 환경이 너무 달랐고 아직 너무 모르는 사이였다. 일방적으로 운명론에 빠진 그는 친한 사이나 할 법한 신체에 대한 농담까지 던졌고, 본인이 먹던 술잔의 술을 거절하는 내게 따라주는 등 무례한 행동을 했다. 운명일지도 몰랐던 사이에 그가 찬 물을 끼얹고 있으니, 나는 우리가 운명이 아니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몇 개의 공통점만으로 운명이라 여겼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첫 만남에서 운명론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해 더 귀 기울이고 존중하는 자세이다. 특히 소개팅 어플로 만난, 어쩌면 신원이 불확실할 수도 있는 조심스러운 사이에는 더욱 그렇다.
30대를 살아가는 지금은, 운명이란 일방적 주장보다, 서로가 운명일지를 함께 탐색해 갈 사람이 필요하다.
첫 만남에 불편함만 남은 해당 어플은 삭제했다. 좀 더 신원을 명확히 밝히는 소개팅앱에 집중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