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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Mar 14. 2021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 '불신의 틈 속에서..'

[영화 후기,리뷰/신작, 개봉작, 상영작, 디즈니,어린이 영화추천/결말]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Raya and the Last Dragon)

개봉일 : 2021.03.04 (한국 기준)

감독 : 돈 홀, 까를로스 로페즈 에스트라다

출연 : 켈리 마리 트란, 아콰피나, 산드라 오, 대니얼 대 킴, 젬마 찬


불신의 틈 속에서 찾아낸 믿음의 힘


이 영화는 무한 경쟁과 불신이 당연시되어버린 건조한 사회를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믿음이 가진 순수한 힘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누군가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커녕, 내 비밀 하나 말할 수 없는 얼음장같은 사회에서 ‘내가 먼저 너를 믿을게. 너도 나를 믿어줘.’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믿음을 내어주는 사람을 보며 ‘대단하다. 내게도 저런 친구가 있었으면.’이라 생각하면서도 정작 먼저 용기를 내지 못했던 아둔한 어른인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감동받기도, 마음 한 편이 쿡쿡 찔리기도 했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디즈니 최초로 동남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다. 거기에 능동적인 여전사 스타일의 공주 ‘라야’와 대부분 여성으로 이루어진 주연들은 기존의 디즈니 공주들의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성 안에서 아름다운 연미복을 입고 왕자를 기다리는 공주가 아닌 허리춤에 칼 한 자루를 차고 전설의 드래곤을 찾아 나서는 공주 ‘라야’의 모습은 꽤나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는 디즈니의 공주들이 겨울 왕국을 이후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고, 이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어떠한 히로인의 등장이나 숨겨진 비밀로 상황을 반전시키는 한판 승 이야기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열쇠는 영화의 초반부, 라야의 아버지인 벤자를 통해 라야에게 던져진다. 뒤이어 나타난 마지막 드래곤 ‘시수’ 또한 무너져버린 세상을 되살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열쇠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라야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쉽게 용기를 내지 못한다.


나는 망설이는 라야를 보며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것이 우리의 사이를, 우리의 사회를 더 끈끈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지 알면서도 먼저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가 나를 믿음을 담은 눈빛으로 바라봐 주길 바란다면, 더 좋은 세상이 되길 원한다면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용기를 내야 할 시점이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시놉시스


인간과 드래곤이 평화롭게 공존하던 신비의 땅, 쿠만드라 왕국.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삼키는 악의 세력 '드룬'이 들이닥치자, 드래곤들은 인간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 전설 속으로 사라진다.

500년 후 부활한 '드룬'이 또다시 세상을 공포에 빠뜨리자, 전사 ‘라야’는 분열된 쿠만드라를 구하기 위해 전설 속 마지막 드래곤을 찾아 모험을 떠난다. 그러나, ‘라야’는 험난한 여정을 겪으며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는 전설 속 드래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세상이 망가지기 500년 전, 그 자리엔 하나의 도시 ‘쿠만드라’가 있었다. 물, 비, 평화를 주던 용들과 이기심 없는 사람들이 도시를 가득 채웠고, 삶은 풍족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서로를 불신하기 시작했고, 불신을 통해 태어난 ‘드룬’이 쿠만드라 사람들을 위협하게 된다. 마지막 드래곤 시수는 형제들의 마법의 힘을 모아 드래곤 젬을 만들고 드룬을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드룬과 싸우던 용들은 모두 돌이 되었고, 위기를 넘긴 사람들은 또다시 실수를 반복한다.


쿠만드라 사람들은 용의 신체 부위인 꼬리, 척추, 송곳니, 심장, 발톱의 이름을 달고 각자의 나라를 꾸리게 된다. 진하게 그어진 국경만큼이나 사람들 사이엔 넘지 못할 불신의 선이 생기고 만다. 심장의 땅 족장이자 라야의 아빠인 벤자는 여전히 쿠만드라를 꿈꾸지만 다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드래곤 젬을 갖고 있는 심장의 땅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모든 것을 혼자 독점하고 있는, 혼자서만 풍요를 누리고 있는 땅이라면서 말이다.


벤자는 다시 하나가 될 쿠만드라를 꿈꾸며 파티를 기획한다. 벤자는 여러 땅의 특산품들을 한곳에 모아 하나의 요리를 만드는데, 어린 라야는 아직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벤자는 라야에게 ‘서로에 대한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남기고 드룬에 의해 돌이 되어버린다.


                                                                       

서로 못 믿으니까 세상이 망가진 거 아닐까?


시수의 형제들이 서로에 대한 믿음을 모아 만든 드래곤 젬은 드룬을 몰아내는데 성공하지만, 이기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드래곤 젬을 산산조각 내버린다. 라야는 아직 다 꺼지지 않은 드래곤 젬의 빛을 희망 삼아 마지막 드래곤을 찾아 떠난다. 인간들의 불화로 생긴 저주를 풀기 위해선 용과 믿음의 상징인 드래곤 젬이 필요했다. 라야는 시수와 드래곤 젬을 모으기 위해 꼬리, 발톱, 척추의 땅을 모험한다. 그녀는 꼬리의 땅에선 분을, 발톱의 땅에선 노이와 엉기들을, 척추의 땅에선 텅을 만나게 된다. 각자 다른 땅에서 살아온 이들이 시수와 라야를 중심으로 한 팀이 되어 움직인다는 건 벤자가 그토록 원했던 ‘대화합’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볼 수 있겠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에서 벤자와 드래곤들이 말하는 가장 큰 힘은 ‘믿음’이다. 드룬과의 마지막 결투를 앞둔 시수의 형제들은 각자의 마법을 모아 하나의 드래곤 젬을 만든다. 시수는 자신을 딱히 능력이 없는, ‘조별 과제에서 버스 타는 조원’정도였다고 말하지만 형제들은 시수에게 자신들의 마법과 세상의 운명을 바꿀 힘을 쥐여준다. 시수는 형제들의 믿음을 통해 커다란 힘을 발휘했고 500년 전 그날, 세상은 멸망의 위기를 넘긴다.


그리고 또다시 찾아온 멸망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도 이 ‘믿음의 힘’덕분이었다. 벤자가 모든 땅의 사람들을 초대했던 날. 라야는 송곳니의 땅 공주인 나마리와 친구가 된다. 아니, 됐었다. 라야는 자신과 똑같이 용을 좋아하고 연미복을 입기 싫어하는 친구 나마리에게 믿음의 증표로 드래곤 젬 성소를 구경시켜주게 되는데, 나마리는 그 믿음을 져버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깨진 드래곤 젬을 향해 달려든다. 이 일은 라야에게 큰 충격을 안겼고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원수지간으로 지내게 된다.


                                                                      

내가 먼저 시작할게.


라야는 나마리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나마리는 계속해서 라야를 쫓았다. 시수는 다른 이를 믿지 않게 된 라야를 지속적으로 설득하며 나마리에게 선물을 보내보라고 권한다. 라야는 나마리가 라야에게 선물했던 시수 목걸이를 다시 나마리에게 돌려준다. 라야는 여전히 자신에게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는 나마리에게 먼저 ‘믿음의 증표’를 보낸 것이다.


                                                                       

중요한 건 마법이 아니라 믿음이야.


라야와 친구들은 ‘배신자’였던 송곳니의 땅 공주 나마리에게 마지막 희망과 믿음을 건다. 마치 시수의 형제들이 마지막 결전의 순간 마법을 모두 모아 시수에게 젬을 건넸듯이, 친구들은 나마리를 향해 자신이 들고 있던 젬 조각들을 하나씩 건네고 돌이 된다. 오래도록 믿음을 쌓아온 사이가 아닌 불신을 갖고 있던 사이에 다시 믿음을 걸어보는 것. 그것은 용서와 화합에 대한 의지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만일 마지막에 젬을 붙인 인물이 시수나 라야였다면 이토록 큰 힘이 발휘되진 못했을 것이다.


서로를 믿지 못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저주를 이겨낼 수 있는 건 날카로운 칼도, 빠른 다리도, 커다란 방패도 아니었다. 불신의 저주를 이겨낼 수 있는 건 오직 서로에 대한 믿음뿐이다. 1년이 넘도록 지속된 코로나 사태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예민해지고, 개인주의적 성향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만연한 이기주의와 불신 속에서 조금씩 지쳐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면 먼저 용기를 내어 건조해진 땅에 믿음 한 줌을 뿌려보는 건 어떨까. 혹시 용기를 낸 또 다른 누군가가 내 믿음에 물 한 컵을 부어주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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