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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Jun 01. 2021

<애플>- '상실을 깎아낸 자리에 남은,말라버린 껍질'

[영화 후기,리뷰/신작, 개봉작, 상영작,영화 추천/줄거리 결말 해석]

                                                                              

애플 (Mila, Apples)

개봉일 : 2021.05.26 (한국 기준)

감독 : 크리스토스 니코우

출연 : 알리스 세르베탈리스, 소피아 게오르고바실리

                                                                        

상실을 깎아낸 자리에 남은, 말라버린 껍질


사과처럼 생긴 남자의 머리. 그리고 정수리 쪽부터 천천히 깎여나가는 사과 껍질. 정적이면서도 강렬한 이미지의 포스터에 한번 이끌리고, 공허한 색감에 또다시 이끌려 망설임 없이 선택한 영화 <애플>.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이 영화를 선택한 것에 단 한 줌의 후회도 없으며 스크린에서 내려가기 전에 꼭 다시 한번 보러 가리라 다짐했다. 친절하지 않아 이해가 어렵다는 평도 간혹 보이지만, 난 그 친절하지 않은 침묵이 좋았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많은 걸 잃는다. 일단 살아간다는 건 시간을 연속적으로 소비하며 내게 남은 시간을 잃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기억하고 싶은 기억을 잃기도 하며, 사랑을, 우정을, 돈을, 명예를 잃기도 한다.


<애플>이라는 영화 속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기억을 잃는다. 어느 날, 이유나 뚜렷한 전조증상 없이 ‘머리가 좀 아팠다’는 흐린 느낌만을 간직한 채 기억을 잃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갑자기 차가 멈춰 서거나 길을 가던 사람이 집을 기억하지 못하며 버스에 앉은 손님이 종점에 도착해서도 목적지를 제대로 말하지 못할 때, 이를 발견한 사람들은 “잠시 기다리세요. 119 부를게요.”라고 말하며 침착하게 대처한다. 기억을 잃은 사람들 중 일부는 가족들에게 무사히 인도되고, 신원 미상으로 분리된 사람들은 신원 확인용 사진을 한 장 남기고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나’임을 확인하고 ‘나’를 기록하기 위해 찍는 사진 한 장. 그리고 유일한 기억으로 남은 좋아하는 사과의 맛. 주인공 알리스는 담당자들의 지시 아래 사진을 찍어가며 차근차근 새로운 나를 만든다. 그는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새로운 나를 만드는데 성공할까? 아니, 애초에 그는 왜 기억을 잃게 된 걸까. 왜 잃어야만 했을까. 


차라리 잊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를 상실의 상처를 껴안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알리스가 깎아놓은 사과 껍질이 어떤 마음을 의미하는지 어느정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달달한 사과의 향기가 아닌 밍밍한 맛을 가진 사과 껍질이 말라붙었을 때 풍기는 그 냄새. 한마디로 형용할 수 없는 건조한 그 냄새가 가득 차있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상실의 냄새를 새롭게 정의했다.




애플 시놉시스


원인 모를 단기 기억상실증 유행병에 걸린 ‘알리스’에게 유일하게 남은 기억은 이름도 집 주소도 아닌 한 입 베어 문 사과의 맛. 며칠이 지나도 그를 찾아오는 가족이 나타나지 않자 무연고 환자로 분류된 ‘알리스’에게 병원에서는 새로운 경험들로 기억을 만들어내는 ‘인생 배우기’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알리스’는 자신처럼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안나’를 만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쿵- 쿵- 쿵- 쿵-. 무슨 이유에서인지 벽에 머리를 박고 있는 남자 ‘알리스’. 무엇이 그리 괴로웠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머리에 든 무언가를 떨쳐내려는 듯 벽에 머리를 연속적으로 박고 있다.


<애플>이라는 영화의 세계관 속에서 사람들은 기억을 잃는다. 기저질환이 있었다거나 기억을 잃는 병, 치매에 걸렸다거나.. 그런 것이 아닌, 너무도 멀쩡하고 젊은 몸을 가진 사람들도 어느 날 갑자기 기억을 잃는다. 마치 스위치를 탁-하고 OFF 방향으로 돌린 듯이, 예고 없이 터져버리는 재채기를 마주하듯이 말이다.


                                                                             

“이거 당신 차 아니에요?” “내 차 아니에요.”

“어디로 가려고 했는데요?” “그게...”


사람들은 장을 보다가, 운전을 하다가,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다가 기억을 잃는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발견한 다른 이들은 침착하게 “잠시만 기다려요. 구급차 부를게요.”라고 말하며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그만큼 이 세계에서 기억을 잃은 사람을 마주한다는 건 ‘무척 당황스럽’거나 ‘두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저 감기에 걸린 사람을 마주한 것처럼.


                                                                             

“사과 안 먹어요?”

“좋아했는지 기억 안 나요.”


신원 미상의 사람들을 모아둔 시설에선 기억나지 않는 이름 대신 새로운 번호가 주어진다. 알리스의 번호는 ‘14842번’. 그는 신원 확인용 사진을 한 장 찍고 병실로 향한다. 그는 달그락거리며 밥을 먹는 옆자리 사람을 지켜보며 사과를 한 알 깎아먹는다. ‘이 사과는 달다’고 말하는 알리스의 말이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던 건 그저 기분 탓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영화의 후반부에 명확하게 제시된다.


기억을 잃은 알리스는 보호관들의 지시에 따라 새로운 집에 머물며 새로운 자아를 찾기 위한 미션을 수행한다. 알리스를 포함하여 모든 기억 상실증 환자들은 보호관들이 제시하는 미션을 수행하며 여전히 흐리게 느껴지는 바깥세상으로 한발씩 나아간다. 그들은 어릴 적 습관을 되살려줄 수 있는 자전거 타기부터 시작하여 음주 가무를 즐기고, 사랑을 나누고, 누군가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본다. 유년기, 청년기를 지나 노년기까지 자연스레 흐르는 삶의 순간들을 더듬고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 노란색 앨범에 가득 붙인다. 그 단계를 거쳐 기억 상실증 환자들은 새로운 인생과 자아를 찾는 것이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을 지켜보며, 그가 죽었을 때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 이전의 나를 함께 떠나보내는 의식을 하는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알리스는 기억을 잃지 않았다. 이웃에 살던 강아지 말리를 기억하고 있었으며, 이 사과의 맛이 평균적인 것인지 맛있는 것인지 정의할 수 있는 ‘평균적인 사과의 맛’을 기억하고 있었고, 집 주소를 묻는 과일가게 주인에게 “135번지요. 죄송해요, 135번지가 아니라 8번지요.”라고 말하며 습관적으로 말했던 ‘원래 집’의 주소를 말한다.


다른 기억 상실증 환자들은 “운전할 줄 알아요?” “무엇을 좋아해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럴걸요.”와 같은 애매모호한 답을 내놓지만, 알리스는 “그 영화를 봤냐”라는 질문에 정확하게 “안 봤어요.”라고 답하며 고장 난 카메라를 뚝딱 고쳐낸다. 그리고 물걸레질을 막 마친 바닥을 바로 밟지 않고 뒤꿈치로 걷는 행동과 자연스레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 꽤 익숙한 손놀림으로 페이스트리를 만들어내는 손길까지.. 어떤 음식을 좋아했는지, 어떤 영화 장르를 무서워하는지, 1분이 몇 초였는지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다른 기억상실증 환자들과 비교해보면 알리스의 자연스러운 행동은 더 어색하게 느껴지며, 그가 진짜 기억 상실증에 걸린 것이 아니라는 걸 추측할 수 있다.



알리스는 왜 기억을 잃은 사람인 척 행동한 걸까. 기억을 잃었다면 그것을 궁금해하고 찾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나마 있기 마련인데, 왜 기억력에 좋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습관처럼 먹던 사과를 내려놓은 걸까.


알리스는 기억을 잃지 않았지만 기억을 잃고 싶어했다. 알리스가 TV에 나오는 연인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장면과 그가 집으로 돌아와 여성의 옷으로 보이는 옷가지들과 구두를 정리하는 장면을 보면 대략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여기선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실연 또는 막을 수 없었던 이별. 그리고 그 뒤로 밀려오는 상실감.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가 기억을 잃은 부인을 걱정할 때, 알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게 더 좋을거예요. 선생님을 안 잊어도 되니까요.”라고. 그리고 언젠가 함께했던 그녀를 생각한다. 알리스의 이 대사에서 그가 사랑하는 연인을 어쩔 수 없이 ‘잊어야만 하는’ 일을 겪었음을, 죽음으로 갈라지게 될 이 노부부와 같은 경험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누군가의 일생이 마무리되고 알리스는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갈아 신는다. 영화 속 세계에서 기억 상실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모두 같은 디자인의 옷과 신발을 신는다. 그 이유는 환자들을 조직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또는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아무튼, 알리스는 옷장 가득 차있는 옷과 정해진 신발을 벗고 연인이었던 안나의 묘지로 향한다. 그는 까맣게 시들어버린 꽃을 뽑아내고 새로운 꽃을 꽂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한쪽 면이 상해버린 사과를 도려내고 다시 먹는다.



영화의 포스터부터 알 수 있듯이 이 영화에서 사과는 기억을 의미한다. 과일가게 주인이 “사과는 기억력에 좋다”고 언급하기도 하고, 알리스가 기억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나기 전까지 기억 상실증 환자인‘척’하는 그가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던 건 사과의 맛이다. 알리스는 매일같이 사과를 먹으며 아픈 기억을 떠올린다. 지독히 잊히지 않는 상실의 기억을.


그는 사과가 기억력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사과를 멀리했지만, 영화의 마지막엔 사과의 일부 상한 부분을 도려내고 한입 베어 물었던 것처럼 상실의 아픔을 피하지 않고 극복하기 위해 원래 자신이 살던 집으로 돌아온다.



알리스는 기억을 잊은 사람이 아닌 외면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앞서 알리스는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에게 “그게 더 좋을거예요. 선생님을 안 잊어도 되니까요.”라고 말했는데, 그는 차라리 ‘기억을 통째로 잊는 편’이 사랑하는 사람을 잊어야 하는 아픔을 겪는 것보다 나을것 이라 생각한듯하다. 안나의 연인이었던 알리스보다 신원 미상의 14842번이 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진짜 기억을 잃은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새로운 자아를 만들기 위해 유년기로부터 노년까지의 생을 돌아보고 난 후 그는 ‘새로운 자아’가 아닌 원래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다. 머리와 가슴을 지독하게 찔러대던 기억이 담긴 사과를 천천히 먹어치우고, 아직 상한 부분을 갖고 있는 사과의 일부를 도려내 씹어내며 알리스는 상실의 아픔을 천천히 흡수하고 또 극복해나간다.



‘차라리 없었던 일이었으면.’ ‘차라리 잊어버렸으면’.. 싶은 아픈 기억이, 그런 순간이 누구나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도 가장 큰 상실을 겪었을 때 눈물을 한번 빼고 나서 제일 먼저 이런 생각을 했다. “차라리 내가 모르게 살다 가지”라고. 그리고 내 기억을 모두 지우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잊는다고, 눈앞에서 기억이 담긴 사과를 치워버린다고 이 상실감이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만일 떠나버린 그에 대한 기억이 하나의 사과라면, 상실의 아픔에 눌려 곪아버린 부분이 일부 존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넓은, 행복했던 기억이 담긴 맛있고 싱싱한 부분 또한 여전히 남아있지 않은가. ‘상실의 아픔’으로 모든 기억을 내버리기엔 너무도 소중한 나의 인연에 대해, 이 아픔을 극복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날이다. 찌르는 듯 아픈데 묘하게 위로가 되는 신기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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