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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Dec 16. 2021

반장선거 - '까맣게 순수한 아이들의 누아르'

[영화 후기,리뷰/신작, 한국 단편 영화, 왓챠 영화 추천/결말 해석]

                   

언프레임드 - 반장선거 (Unframed, 2021)

개봉일 :2021.12.08. (왓챠 공개)

감독 : 박정민

출연 : 김담호, 강지석, 박효은, 박승준


까맣게 순수한 아이들의 누아르


프레임 안에서 연기를 펼치던 4명의 배우들이 프레임을 넘어, 카메라 앞이 아닌 카메라 뒤에서 각자가 품어온 이야기를 펼치는 새로운 프로젝트 <언프레임드>. 박정민, 손석구, 최희서, 이제훈 배우까지. 그들이 바라본 세상의 조각들이 이토록 애틋하고, 원초적인 빛깔을 띠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언프레임드>에 담긴 4편의 단편영화를 보면 그들이 영화와 이야기를, 이 세상을 얼마나 골똘히 바라보고 있는지 깊이 느낄 수 있다. 더불어 감정을 온전히 전하기 위해 꼭 긴 시간을 쓰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만든다.




언프레임드의 첫 번째 에피소드 <반장선거>.
처음 만나는 초등학생 누아르


언프레임드의 에피소드 1은 박정민 배우가 연출한 <반장선거>다. 초등학생이라 하면 가장 먼저 순수한 모습을 떠올리게 되지만, ‘생각해보면 나의 초등학생 시절은 순수하지 않았다.’고 말하던 그는 힙한 초등학생 누아르를 내놓기에 이른다.


초등학생과 누아르? ‘에이 초등학생들이 해봤자~’라고 생각한다면 섭섭하다. 카메라에 담긴 배우들의 다양한 표정들엔 어른들 못지않은 서늘함과 긴장감이 팽팽하게 들어차있다. 특히 주연인 강지석 배우와 김담호 배우의 연기가 가히 압권이다. 서늘한 눈빛과 목소리를 뽐내는 강지석 배우와 귀여운 외모와 단단한 집중력을 갖춘 김담호 배우의 상극에 위치한 매력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케미가 상당하다.


                                                                              

<반장선거> 줄거리


반장선거는 제목 그대로 한 학기 동안 학급을 관리할 반장을 뽑는 ‘반장선거’를 주제로 한다. 반장 후보로 각각 남자, 여자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유장원, 주선영과 수줍은 성격으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정인호가 등록되고, 아이들은 본인이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노래를 부르고 간식을 돌리고 열심히 공약을 뽐내고 심지어 싸우기까지 한다. 장원, 선영의 지지자들이 요란하게 싸우는 동안 지지자 없이 단독으로 출전한 인호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거나 책상과 천장의 중간 어딘가를 바라보고만 있다. 어떠한 비밀을 숨긴 채 말이다. “너 반장할래?” 유장원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리며 선거의 전말이 밝혀진다.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드는 리듬감


<반장선거>의 배우들만큼이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매력 포인트를 꼽자면 리듬감이 아닐까 싶다. 쉴 틈 없이 변화하는 컷들과 그 안에 꽉 채워진 어린 배우들의 순수하고 뜨거운 숨결, 마미손의 힙한 음악이 합쳐지며 만들어내는 리듬감과 긴장감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귓가와 머릿속을 빙빙 맴돈다. 어릴 적 한 번쯤 들어봤을 ‘기호N번 000!’이라는 아이들의 선거 송과 세련된 음악의 만남이라니. 여태껏 상상해 본 적 없었지만, 상상 그 이상으로 찰떡 그 자체였다.


                                                                              

순수하지 않았던, 또는 너무 순수했던 초등학생 시절


공교육의 범위를 벗어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지라 지금도 그런진 모르겠지만, 나의 초등학생 시절도 박정민 배우의 그 시절처럼 딱히 새하얗게 순수하진 않았던 것 같다. 나만이 아니라 모든 친구들이 말이다. 순수하긴 했으나 새까맣게 순수했다고 해야 할까? 나는 초등학생 시절을 너무 순수해서 본능에 한 발짝 더 가까웠던 순간들로 기억한다.


본능적으로 강자의 편에 서고, 그를 믿고 따르며 무언가 떨어지길 기대하는 본능. 그렇게 편을 가르고 서로의 세력을 뽐내고 견제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을 보았다. 특히 ‘이거 선영이가 주는거다-’라며 간식을 돌리던 컷에서 내면의 웃음이 터져버렸다. 반장선거가 가까워질 때면 왠지 간식이 풍족하게 뿌려졌던 기억이 있었는데, 그게 정말 ‘기분 탓’이 아니었구나,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인생은 역시 누아르


어른이 되어 다시 들여다본 아이들의 세계가 참 흥미롭게 느껴진다. 별거 아닌 것 같은 말 한마디도 한껏 진지하게, 온 힘을 다해 싸우던 그때. 그놈의 반장이 뭐라고.. 선생님도 아니고 반장인데.. 하지만 그땐 그 자리가 그렇게 대단해 보였더랬다. 국회의원도 대통령 선거도 아닌 반장선거지만 이 선거는 나름 진지한 투쟁이자 세력 다툼이다. 어른들의 다툼을 축소해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선거 한 판이 이토록 흥미로울 줄은 몰랐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가뿐하게 씹어먹고 있는 까맣게 순수한 영혼들을 보며 우리의 인생은 역시 판타지보단 누아르에 가까운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여본다. 역시 강한 자의 편에서 우르르 몰려다니는 게 인생이지!


하지만 마지막 결과를 보자면.. 그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한발 떨어져서 투표를 지켜본 사람으로서.. 이 투표, 다시 하고 싶다.. 그래도 이렇게 인호가 친구들이랑 잘 어울리면 그걸로 된 건가? 아니다. 역시 조금 쓰다.



상대적으로 큰 키에 그늘진 얼굴로 문밖에 올라서있는 강지석 배우와 빛을 받고 있는 동그란 얼굴로 강지석 배우를 올려다보는 김담호 배우의 모습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유장원과 정인호라는 캐릭터에 어쩜 이렇게 잘 맞는지.. 두 배우가 보여준 집중력과 연기에 감탄했다.


강지석 배우는 최근에 <좋은 사람>을 통해 발견한 이효제 배우와 참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언젠가 두 배우가 같은 프레임 안에 있는 모습도 꼭 보고 싶다. 오늘부터 소원 빌어야지. 앞으로 쑥쑥 클 일만 남은 배우님들.. 랜선 이모가 응원할 예정이니 바르게만 자라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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