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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Jan 16. 2022

죽음이 지나가도 사라지지 않을 소중한 순간들

[영화 <노웨어 스페셜> 후기 /감동,실화 영화 추천/결말 해석]



노웨어 스페셜 (Nowhere Special,2020)

개봉일 : 2021.12.29. (한국 기준)

감독 : 우베르토 파솔리니

출연 : 제임스 노턴, 다니엘 라몬트, 에일린 오하긴스


죽음이 지나가도 사라지지 않을 소중한 순간들


죽음을 가장 가까이 접하는 직업을 가진 ‘존 메이’의 이야기를 다루며 삶과 죽음, 외로움과 보이지 않는 인연에 대해 풀어낸 영화 <스틸 라이프>로 유명한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의 7년 만의 신작(개봉 날짜 기준)이 2021년의 끝, 아주 살포시 국내에 개봉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영화, <노웨어 스페셜>은 서른네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아빠 존과 네 살짜리 아들 마이클의 이야기다. 존은 매일같이 다양한 모양의 창문을 닦으며,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의 수많은 일상을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그의 인생의 가장 큰 행복, 아들 마이클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존은 끝없이 사랑하고, 사랑하기에 그만큼 미안한 아들을 바라보며 잠시 시름을 내려놓고 웃기도 하고, 또다시 책임감 한 아름을 짊어지기도 한다.


                                                                              

부모와 자식의 인연


부모와 자식이란 인연은 한없이 소중하면서도 복잡하고, 아프고,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끊어낼 수는 있지만 끝내 부정할 순 없는 단 하나의 인연이니까. <노웨어 스페셜>은 가장 힘이 될 수도 가장 큰 아픔과 죄책감이 될 수도 있는 이 인연으로 이어진 존과 마이클의 소소한 일상을 담아내며 잔잔한 슬픔과 감동을 전한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 존과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린아이 마이클. 존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마이클을 보며 여러 고민에 빠진다. 순수한 어린아이에게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또 아이는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죽음이 지나간 자리에 홀로 남겨진 아이를 위해 어떤 것을 남기고 가야 할지. 아이의 새로운 인생을 위해 어떤 이들에게 아이를 맡겨야 할지.. 같은 답 없이 무거운 고민들 말이다.


존은 얼마 남지 않은 인생에 얹어진 짐을 묵묵히 견디며 마이클을 위한 새로운 가족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는 풍족하지 못한 현실에 놓인 마이클을 보며 항상 미안함을 느낀다. 비싸고 멋진 장난감을 사주지 못하는 집안 형편, 존이 일을 나갈 때면 엄마가 아닌 보모의 손에 맡겨져야 하는 환경,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사회통념상 그다지 자랑스러운 아버지는 아닌 것 같다는 죄책감까지. 존은 이제 부족한 아버지의 손을 떠날 마이클을 위해 새로운 인생을 선물해 주고 싶어 한다.


최선을 다하고, 모든 걸 줘도 항상 미안한 아버지의 마음과 아버지를 향한 순수한 사랑을 뿜어내는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에 소중한 인생의 한순간이 비치고, 그 안에서 죽음이 지나가도 사라지지 않을 무한한 사랑을 느꼈다.


                                                                              

주연을 맡은 연기 천재 다니엘과 제임스의 눈빛


<노웨어 스페셜>의 강점은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에도 있지만, 주연을 맡은 두 배우 제임스 노턴과 다니엘 라몬트의 연기도 큰 몫을 한다. 4살의 나이로 <노웨어 스페셜>을 통해 데뷔한 다니엘 라몬트와 따뜻하고 깊은 눈빛을 보여준 제임스 노턴 배우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따로 설명해 주지 않아도 온갖 부자 서사가 뚝딱 만들어진다.


특히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대사를 읊는 다니엘을 보면 미소가 절로 나며 나의 4살 시절을.. 반성하게 된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그때쯤 나는 엄마한테 “이건 뭐야?” 정도의 질문만 반복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게 바로 진정한 ‘연기 천재’구나 싶다. 내가 결혼을 일찍 했으면 .. 저만한 아이가 있을 수도 있는.. 나이니까.. 이모를 넘어 사실상 엄마의 눈으로 흐뭇하게 지켜봤던 것 같다. 이 배우가 어떻게 성장할지 정말 정말 기대된다. 만약 <노웨어 스페셜>이 뛰어난 영화가 아니었다고 해도, 다니엘 라몬트를 발굴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고 말하고 싶을 만큼 말이다.


                                                                             

자연스러운 인생의 한순간


툭, 솔직히 말하자면 이 영화는 인생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영화이자 ‘우리 감정에 솔직하게, 오랜만에 울어보자’는 느낌이 드는 영화다.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부터 그렇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와 홀로 남겨질 어린아이. 그리고 ‘새 부모를 찾는다’는 포스터에 박힌 절절한 문구와 대놓고 관객들의 눈물을 뽑아낼 영화라며 경품으로 쓰인 두루마리 휴지까지. 누가 봐도 ‘이 영화는 슬플 것이다,’, ‘눈물 나는 영화다.’라는 느낌이 확 온다.


하지만 <노웨어 스페셜>은 감정 없이 눈물을 쥐어짜는 영화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아버지와 아들의 상황을 봐, 슬프지. 울어봐!하는 식으로 절망과 슬픔을 쌓아가는 형식이 아니다. 이야기는 잔잔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간혹 고통을 느끼는 존의 모습이 나오긴 하지만, 존은 묵묵히 평소처럼 일을 하고, 마이클과 시간을 보내고, 함께 책을 읽고 케이크를 만들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공원을 거닌다.



새로운 가족이 되어줄 이들을 만나는 약속을 제외하면, 존과 마이클의 일상은 평소처럼 흘러간다. 평온하고 온전하게, 사소한 행복으로 가득 찬 모습으로 말이다. 커다란 흔들림 없이 두 사람의 시간은 쉼 없이 흘러가고, 존과 마이클은 죽음에 대해 조금씩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리고 존은 이 이야기의 끝에서 마이클의 새로운 선택을 접하며 지금껏 알지 못했던 마이클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


사실 관객들을 울리는데 어린아이와 부모의 눈물만큼 확실한 장치가 없지만 <노웨어 스페셜>은 그런 치트키 같은 장치를 전혀 쓰지 않는다. 그리고 ‘죽음’을 마냥 이별, 마지막 같은 슬픈 의미로 풀어내지 않으며 이별보다는 죽음 앞에서도 온전할 사랑에 대해, 앞으로 더 긴 인생을 살아갈 아이의 선택에 집중한다.


나는 <노웨어 스페셜>을 보며 만들어진 관객들의 눈물엔 억지 눈물이 단 한 방울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느낀 <노웨어 스페셜>은 억지가 아닌 진실된 감정이 가득한 영화였으니까.




노웨어 스페셜 시놉시스


서른네 번째 생일을 맞은 창문 청소부 ‘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에게는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다. 바로 네 살짜리 아들 ‘마이클’에게 새로운 부모를 찾아주는 것. 세상에 혼자 남을 아이를 위해 ‘존’은 특별한 부모를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창문 너머로 비치는 다양한 인생의 흔적들,
그리고 존의 눈에 들어오는 다른 가족들의 순간들


창문 청소부인 존은 매일같이 여러 손님들의 창문을 닦는다. 화려한 장식품이 가득한 가게, 음식점, 아이를 키우는 잘 사는 가정집의 창문. 크기와 모양새, 달려있는 높이도 모두 다른 창문 너머엔 방주인의 인생을 보여주는 흔적들이 가득하다. 부족함 없이 자란 아이의 놀이방엔 장난감이 바닥에 굴러다니고, 존이 닦고 있는 가게 유리창 너머엔 비석 모양의 장식품이 가득하고, 그 가게 반대편엔 화목해 보이는 한 가족이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는 모습이 보인다.


존은 자신의 인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마이클은 자신과 다른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자신이 해주지 못한 것을 모두 누릴 수 있는 집의 자식으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는 가끔 마이클이 던지는 “우리 엄마는 어디 있어?”라는 물음이 “나도 엄마가 있어?”라는 의미가 아닌, 정말 말 그대로 “엄마는 어디로 외출했어?” 정도의 질문이길 바랐을 것이다. 조금 더 배워 선망받는 위치에서 일하고, 부유한 환경에서 마이클이 원하는 강아지도 키울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을 것이고, 마이클이 자라 친구들과 운동을 배울 때면 그 옆에서 유니폼을 챙겨들고 응원하고 싶었을 것이다. 존의 눈에 비치는 다른 가족들의 모든 순간들이, 특별하고 아리게 다가온다. 평범하고 완전한 가족, 존은 마이클에게 그런 가족이 되어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죽음을 설명하는 일


이제야 4살이 된 어린 마이클은 존을 가장 좋아한다. 존의 팔뚝에 있는 타투를 따라 그리고, 함께 생일 케이크를 고르고, 존의 목에 올라타 아이스크림을 먹는 순간을 좋아하고, 장난감이 많은 놀이방이 없어도, 그저 우리가 함께하는 ‘우리 집’이 가장 좋다고 말하는 순수한 아이. 그게 마이클이다. 마이클에게 존은 사랑하는 아버지이자 유일한 가족이다. 불만 같은 부정적인 감정 하나 없이, 마이클은 그저 존을 사랑한다.


마이클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는 어린아이다. 마이클은 존의 34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당연하게도 초를 1개 더 꽂을 35번째 생일이 돌아올 것이라 생각한다. 존은 마이클에게 죽음을 설명해 주기 위해 함께 동화책을 읽고, 죽은 딱정벌레를 보며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죽음은 마냥 슬픈 것이 아닌, 영혼이 육체를 떠난 것뿐이라고, 떠난 것은 사라지지 않고 그를 기억하는 사람의 주변에 남아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렇게 마이클은 조금씩 죽음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에 대해 질문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에 이른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마이클뿐만이 아니라 존 또한 죽음에 대한 태도를 조금씩 바꿔간다. 영화의 초반, 존은 새로운 가족 후보들을 만나면서 아이가 아빠를 어떻게 기억했으면 하냐는 질문에 그저 “창문 청소부로요.”라고 답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어린 마이클이 부족했던 가족과 그에 대한 기억을 잊고 새로운 삶을 살길 바랐지만, 영화의 후반부엔 생각을 바꾸고 마이클을 위한 편지와 자신의 물건 몇 가지, 그리고 떠나버린 아내의 장갑을 남긴다. 나의 죽음이 마이클의 괴로움과 상처가 아닌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길 바라며, 마이클이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 준다면 우리의 아름다운 순간은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존은 그렇게 초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



멈추지 않고 흐를 마이클의 시간, 그리고 마이클의 선택


함께 카니발에 놀러 간 존과 마이클이 거울의 방을 지나는 장면을 보면, 거울에 비친 마이클이 존보다 더 크게 표현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존이 떠나더라도 마이클의 시간은 계속될 거란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존이 세상을 떠나도 아이의 시간은 계속될 것이고, 언젠간 존보다 더 큰 어른이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런 날이 오기 위해선 우선 어린 시절을 보살펴줄 새로운 가족을 만나야 하는데.. 존은 이 문제에 대해 혼자 무거운 고민을 반복한다. 아이에게 죽음을 설명하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에서 홀로 중대한 결정까지 짊어진 존의 마음은 점점 조급해진다. 그러던 중, 존은 문득 ‘내가 이 아이의 결정을 대신해도 되는 걸까?’ 의문을 갖게 된다. 앞으로 새로운 가족과 살아갈 사람은 마이클이고, 마이클도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궁금증을 표할 수 있는 한 사람인데 말이다.



강아지를 키울 수 있는 마당,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부유한 집안, 장난감 하나쯤은 쉽게 사줄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 부모, 사회 통념상 안정적이라고 느끼는 두 부모가 있는 가정. 존은 이러한 조건들에 집중했지만, 마이클은 조금 달랐다. 마이클은 자신과 눈높이를 맞추고 함께 사탕의 수를 세나갔던, 처음으로 “아줌마는 언제 죽어요?”라고 질문했던 집을 선택한다. 그 집은 마당도 없었고, 부유한 집안도 아니었고, 안정적인 커플도 아니었지만,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아이만큼, 새로 올 아이를 사랑해 줄 수 있다’고 말하던 유일한 집이었다. 새로운 가족을 선택하는 기준은 어른의 눈으로 본 가정 환경이나 부유한 경제력도, 커다란 마당도 아닌 새로운 가정에서 살아갈 아이의 마음, 그리고 아이를 향한 어른의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존은 전혀 부족함 없는 훌륭한 아버지가 아니었을까? 마이클이 아버지와의 시간을 오래도록, 아프지 않게 아름답게 지녀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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