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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Mar 11. 2022

사랑한다면 존중해야 할 각자의 세계

영화 <루비 스팍스> 리뷰 / 디즈니 플러스 로코 영화 추천




루비 스팍스(Ruby Sparks, 2012)

“사랑한다면 존중해야 할 각자의 세계”


개봉일 : 2018.05.10.

등급 : 15세 관람가

장르 : 멜로/로맨스, 판타지, 코미디

러닝타임 : 104분

감독 : 조나단 데이턴, 발레리 페리스

출연 : 폴 다노, 조 카잔, 크리스 메시나, 아네트 베닝, 안토니오 반데라스

개인적인 평점 : 3.5/5


루비 스팍스 줄거리


꿈 속에서 만난 이상형 루비를 주인공으로 로맨틱한 소설을 쓰며 상상 연애 중인 천재작가 캘빈. 어느 날, 그에게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루비가 소설을 찢고 눈 앞에 나타났다!

캘빈이 상상하고 쓰는 대로 변신하는 루비. 완벽한 그녀와 현실 연애를 시작한 캘빈은 진짜 사랑에 빠질수록 점점 혼란스러워지는데...



누구나 꿈에 그리는 ‘이상형’이 있다. 목소리, 성격, 얼굴, 키, 취미, 말투까지.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을 충족하는 나와 찰떡같이 잘 맞는 사람! 어느 날 나의 이상형에 부합하는, 판타스틱 듀오 그 자체인 사람이 딱 등장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볼 필요도 없이 말이다.



<루비 스팍스>의 주인공 캘빈은 고등학생 시절 발표한 소설로 단박에 스타 작가 반열에 오른다. 하지만 그는 꽤 오랜 시간 자신의 초기작을 이길 새로운 작품을 만들지 못한 채, 사랑의 상처를 안고 방안에 틀어박히고 만다. 친구도, 연애도 다 싫다는 그에겐 상담할 때 끌어안는 인형 바비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키우기 시작한 반려견 스카티, 친형 해리가 전부다.


그러던 어느 날, 캘빈은 자신의 이상형의 조건에 완벽히 부합하는 아름다운 여성 ‘루비'가 나오는 꿈을 꾸게 되고 ‘가볍게 글을 써보라’는 의사의 조언을 받아 글을 쓰기 시작한다. 꿈속 이야기가 쌓여갈수록 그의 글 또한 막힘없이 쭉쭉 나아가고, 나아가고 또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루비는 글 속의 여주인공이 아닌 현실의 여자친구가 되어있다. 캘빈은 “현실인지 아닌지 그건 중요한 게 아냐. 누가 뭐라 하든 난 루비를 사랑하니까!”라고 외치며 오랜만에 찾아온 운명 같은 사랑에 정신없이 빠져든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된다. 분명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며 시작된 사랑이 어느덧 ‘나’를 중점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랑으로 변화하고 만 것이다.



<루비 스팍스>는 2012년에 제작된 영화로 국내 개봉인 2018년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영화다. 내 기억으론 이 영화를 2014년쯤… 정확한 경로는 기억나지 않지만, 친구를 통해 접했던 것 같다. 그 당시엔 ‘주인공이 너드남의 정석인 것 같다’, ’후반부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다시 보니 캘빈은 그냥 평범한 너드남 같은 것이 아니었고 후반부는 인상적인 걸 넘어 좀 무섭기까지 했다.


처음엔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일지라도 함께하다 보면 언젠간 단점이 눈에 띌 수도, 바꾸고 싶은 부분들이 생길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기는 의견 차이를 함께 이야기하고 극복해 나가는 것 또한 사랑의 일부인데, <루비 스팍스>의 주인공 캘빈은 그 과정을 뛰어넘고 오로지 ‘완벽한 사랑’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의 행동을 보며 과연 이게 사랑일까? 이게 행복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하고, 완벽해 보였던 사랑은 빠른 속도로 변질된다.



<루비 스팍스>는 다소 귀여운 분위기로 시작된다. 어떻게 나타났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눈앞에 나타난 사랑스러운 여자친구! 내가 원하던 모든 장점을 가진 그! 막힘없이 술술 나아가는 애정전선! 실제 커플인 폴 다노, 조 카잔 두 배우가 선보이는 현실적인 커플 연기는 마치 <500일의 썸머>에 나오는 톰, 썸머 커플을 떠오르게 만든다. 어느 시점엔 씁쓸함을 느끼게 되는 점과 유쾌하고 가볍게 시작되지만 끝엔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점도 닮았다.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너의 세상이 내가 전부가 아니게 될 때


서로에게 완벽하게 들어맞았던 캘빈과 루비는 행복하고 풋풋한 사랑을 이어간다. 그러다 루비가 캘빈의 가족들과 만나고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 후, 둘 사이는 변화를 맞이한다.


캘빈의 글 안에서 탄생한 루비는 캘빈이 잠에서 깼을 때, 그의 집 주방에서 등장한다. 그 후로 루비는 캘빈의 집에 머물며 하루 종일 캘빈을 기다린다. 캘빈과의 데이트 외엔 외출도 한 번 하지 않았던 루비는 캘빈을 졸라 그의 가족들과 만나게 된다. 루비는 자유롭게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가족들을 보게 되고, 캘빈은 가족들에게도 루비를 소개해 줬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루비를 소홀히 대하기 시작한다. 캘빈에게 노래를 흥얼거리지 말라는 핀잔을 들은 후 홀로 방 안에 쭈그려있던 루비는 ‘우리도 각자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는다.


그렇게 루비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간다. 일주일에 하루뿐이지만 그 하루, 루비의 세상은 캘빈이 아닌 자신의 것이 된다. 이제 반대로 하루 종일 루비를 기다리던 캘빈은 쭈그려 앉아 하루 종일 연인만을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지치는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고 루비가 더 재밌는 세상을 찾아 자신을 떠나게 될까 봐 전전긍긍한다.


루비를 연인이기 이전에 ‘내가 창조한 것’, ‘내 소유물’이라 여기던 캘빈은 불안감에 밀려 더 이상 손대지 않겠다고 했던 소설에 손을 대고 루비를 자신에게 딱 붙여놓는다. 루비가 날 떠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게 그의 기본값이다.



사랑이 아닌 족쇄


캘빈은 앞서 전 연인 라일라를 ‘자신에게 상처를 남기고 떠난 사랑’이라 말한다. 본인은 그 상처에 할퀴어 더 이상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잘못된 건 라일라가 아닌 캘빈의 태도였다.


캘빈은 루비를 루비로서 사랑하지 않는다. 말로는 “난 루비를 사랑해!”라고 외치지만 그가 사랑한 건 주변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완벽하고 사랑스러운 여자친구일 뿐이다. 파티에서 마주친 라일라와 집으로 돌아온 루비 모두 캘빈에게 같은 뉘앙스의 말을 한다. ‘나를 이미지화하고 그것을 벗어나면 화를 낸다.’고. 캘빈이 사랑한 것은 요리 잘하는 여자친구지 요리하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루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화가인 여자친구를 사랑했지만 미술 수업에 나가 그림을 그리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루비는 사랑하지 않았다. 내 옆에 딱 붙어 나를 빛내주는 사랑. 캘빈이 원한 건 그런 사랑이었다.


하지만 그게 완전한 사랑일까? 캘빈의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연인의 입장에서 캘빈의 사랑은 그저 분홍신의 저주 같은 것이다. 그의 사랑은 신는 순간 내 의지가 아닌 신발의 의지대로 끝없이 춤을 추게 만드는 분홍신처럼 연인이 원하는 대로 맞춰 끝없이 움직이게 만드는 속박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의 후반부 캘빈이 타자기를 두드리며 루비를 이리저리 굴리는 장면에선 루비가 빨간 단화를 신고 지쳐 쓰러져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빨간 단화는 분홍신 설화와 이들의 이야기가 비슷한 구석이 있음을 암시한다.



사랑한다면 어느 정도 필요한 거리


사랑엔 ‘사랑’이라는 감정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그만큼 서로를 위한 이해와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 각자의 삶이 있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며 보듬을 수 있어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루비가 캘빈의 손을 벗어나고 두 사람이 다시 운명적으로 만난 순간, 실언을 한 루비는 캘빈에게 “다시 시작할까요?”라고 묻는다. 캘빈은 루비의 요청에 답하고 루비의 옆에 앉는다. 두 사람의 관계는 캘빈의 세상이 아닌 진짜 현실 속에서 다시 시작된다.


사랑을 하다 보면,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연스레 상대방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조금 더 나에게 맞춰줬으면 좋겠고, 조금 더 나에게 시간을 할애해 줬으면 좋겠고, 내가 바라는 대로 맞춰줬으면 좋겠다는 욕심. 하지만 그 욕심이 상대방과 우리의 관계를 망치고 있는 건 아닐지. 가끔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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