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후기,리뷰/왓챠, 감동,드라마 영화 추천/결말 해석]
개봉일 : 2014.06.05. (한국 기준)
감독 : 우베르토 파솔리니
출연 : 에디 마산, 조앤 프로갓, 카렌 드루어리, 앤드류 부찬, 데이빗 쇼 파커, 마이클 엘킨, 팀 포터, 브론슨 웹
누군가의 외로움을 어루만지다
<스틸 라이프>는 잔잔한 바람처럼 다가오는 영화다. 고독사를 맞이한 사람들의 장례를 치르고 지인들을 찾아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 ‘존 메이’의 담담하고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지는 이 영화는 삶과 외로움에 대해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든다.
현 사회에서 우리가 유지해야 할 인간관계의 가짓수와 종류는 전보다 훨씬 다양하게 늘어났지만 필요가 없어지면 순식간에 끊겨버리는 관계가 대부분인 형태로 변화해왔다.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면, 내 가족들이 하나둘 사라진다면.. 먼저 떠난 그들을 제외하고 내 장례식장에 참석해 줄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내가 축의금 또는 조의금을 냈던 사람들 외에는 없을 수도 있겠다.
<스틸 라이프>의 주인공인 존 메이어는 고독사를 맞이한 사람들이 마지막 가는 길만큼은 누구보다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무덤덤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따스한 마음씨를 갖고 있는 사람. 그가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진 많은 영혼들과 그들을 기리는 마음을 담은 사진들은 존 메이어의 모든 것이었다.
나의 외로움과 쓸모를 발견해 준 단 한 사람, 당신의 ‘존 메이’는 누구인가요?
홀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장례를 치르고, 지인들을 찾아 초대하는 직업을 가진 존 메이. 런던 케닝턴 구청 소속 22년 차 공무원인 그의 주 업무는 잊힌 의뢰인의 유품을 단서 삼아 아무도 듣지 못할 추도문을 작성하는 것이다. 매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길로 출근하고, 같은 일을 반복하며 혼자 살던 그에게 어느 날 예상하지 못한 의뢰인이 나타난다.
존의 아파트 바로 맞은편에서 살던 ‘빌리 스토크’가 죽은 채 발견된 것. 같은 날 회사로부터 정리해고를 통보받은 존은 자신의 마지막 의뢰인인 ‘빌리 스토크’를 위해, 처음으로 사무실에서 벗어나 전국을 돌아다니며 그의 삶을 뒤쫓기 시작한다. 비록 알코올중독자로 홀로 생을 마감했지만 풍부한 역사를 가졌던 빌리 스토크의 인생은 단조롭던 존의 일상에 변화를 가져오는데...
다양한 형태의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다. 기독교식, 천주교식, 또는 전통적인 장례식.. 이 모든 장례식의 공통점은 무연고자의 장례식이라는 점. 그리고 그 모든 장례식을 지키는 유일한 사람은 ‘존 메이’라는 점이다. 검은 몸체에 흰 뚜껑을 가진 통들이 빼곡히 쌓여있는 보관창고엔 수많은 사람들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흔적이 정리되어 있다.
부모의 사망 소식을 들었지만 장례에 참석하지 않는 아들, 고양이 외엔 가족이 없었던 무연고자.. 수많은 사람들이 존의 손길을 거쳐간다. 무연고자의 정보가 적힌 파일엔 그 사람의 사진이 붙어있다. 찍은 지 오래된 낡은 사진들, 그들은 새로운 사진 한 장 찍어줄 사람이 없는 외로운 인생을 살다 고독사한다. 존은 장례에 참석할 지인을 찾거나 무사히 장례를 치러주고 난 후에 서류에 ‘사건 종결’이라 쓰고 그 사람의 사진을 집으로 가져와 사진첩에 소중히 붙여둔다. 두툼한 파란 앨범 사이엔 외롭게 세상을 떠난 사람들 각자의 인생과 시간, 사연이 가득 차있다. 존은 무덤 주위에 모여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쓸쓸한 사람들의 마지막을 지키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존은 정적이고 이성적이며 깔끔한 사람이다. 의자를 빼고 앉을 때도 각을 맞춰야 하고 책상도 언제나 깔끔하게 유지해야 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꼼꼼하고 섬세한 성격 덕분에 고인의 마지막 길을 내어주는 이 일과 잘 어울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매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길로 출근을 하고 같은 일을 하며 집안을 매일 똑같이 유지하는 반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존에게 조금 특별한 의뢰인이 생긴다. 바로 자신의 집 건너편에 살고 있던 ‘빌리’라는 사람이었다. 한눈에 들여다보일 정도로 가까운 건너편에 살고 있던 사람이었지만 그가 고독사 한 건 존도, 그 집의 주인도 바로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하다. 빌리의 집주인조차 그의 죽음을 알지 못했고 다른 입주자들의 썩은 내가 난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빌리의 시체를 발견한다. 빌리의 집에 고인의 유품을 가지러 들어간 존은 빌리의 방안을 구석구석 살핀다.
빌리의 상자에서 발견한 신분증.
집주인은 그 신분증을 보고는 ‘알아보지도 못하겠네요. 다들 비슷하게 생겨서’라며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자신과 가까이 살고 있던 빌리의 죽음과 운영 예산 문제로 닥쳐온 정리해고는
22년간 무던하게 살아온 존에게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존은 고인들의 종교에 맞춰 장례절차를 진행했고 고인이 누울 관의 색, 나무의 종류와 비석까지 모두 꼼꼼히 준비했다. 하지만 부장은 예산 문제와 존의 꼼꼼하지만 빠르지 않은 일처리를 싫어했다. 그들에겐 빠르게 고인들의 재를 처리하는 게 제일 중요한 일이었고, 무연고자에 대해선 구덩이를 파 미련 없이 마구잡이로 재를 뿌린 후 아무렇지 않게 덮어버리는게 최선의 대처였다. 존은 자신의 마지막 의뢰인이 된 빌리를 위해 사무실을 벗어나 직접 그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빌리는 알코올 중독자로 생의 마지막을 끊었지만 알고 보니 그는 많은 걸 경험한 사람이었다. 동료들을 대신해 회사에 목소리를 내기도 했으며 새로운 맛의 파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또한 열렬한 사랑을 했고 조국을 위해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모금을 위해 불가능에 가까운 묘기를 부려본 적도, 잊지 못할 동료애로 다른 이들의 마음속에 남기도 했다.
존은 빌리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에 대한 친밀감과 존중의 감정을 키워나간다.
빌리의 묫자리를 선택하던 존에게 직원이 묻는다.
‘무덤 주인이 가족분인가요?’ 존은 대답한다. ‘가족은 아닙니다. 친구죠’
빌리의 집에서 발견한 어린 딸의 사진을 새로운 앨범에 조심스럽게 옮긴 존은 빌의 딸 ‘켈리’를 찾아가 앨범을 전해준다. 켈리는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빠를 미워한 적도 있었지만 여전히 아빠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다.
괴로운 일이죠, 언제 겪어도
3년 전에 돌아가신 켈리의 엄마, 생사도 알 수 없었지만 오늘에서야 죽은걸 알게 된 아빠. 켈리는 자신이 오늘부로 고아가 됐다며 슬퍼한다. 그 모습을 본 존은 항상 괴로운 일이라며 위로를 전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건 언제든 괴로운 일이니.
하지만 존이 어떻게 그 괴로움을 알고 있는지에 대해선 나오지 않는다. 영화 내내 그의 인생에 대해선 긴밀히 언급되는 부분이 없다. 그저 혼자 살고 있는 공무원 22년 차의 40대 남성. 정도가 그에 대한 정보의 끝이다. 존은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위해 홀로 일하고 있지만 정작 그걸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외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켈리는 빌리의 장례를 치러주기 위해 노력하는 존에게 고맙다고 얘기한다. 존은 ‘이게 내 일이니까요’라며 웃어 보인다. 그는 누군가의 인정도 명예도 바라지 않고 그저 외롭게 떠나간 사람들을 위해 마지막 가는 길을 따스하게 데워놓는 일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켈리는 존의 일에 대해 처음으로 존중해 준 사람이다.
타버린 생선, 열린 트럭의 짐칸에서 떨어진 아이스크림. 다른 사람들은 고민 않고 버렸을 것들이지만 존은 당연하게 그 가치를 인정해 준다. 타버린 고등어는 존의 식사가 되고 트럭의 짐칸에서 떨어져 바닥을 나뒹굴던 아이스크림은 존의 간식이 된다. 존은 다른 이가 인정해 주지 않는 것들의 가치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 존의 죽음.
존은 켈리와의 약속을 기대하며 그녀가 좋아하는 강아지 사진이 프린트된 컵을 고심 끝에 고른다.
켈리와 약속을 잡기 위해 나눈 대화는 존의 인생에 있어 가장 설레고 행복하며 두근거리는 대화였을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웃음이 가득했던 존의 모습이었다.
존의 관에는 그의 사망 날짜와 이름만 적혀있었다. 온 마음을 다해 추도문을 썼던 존이 세상을 떠나고 나선 그 누구도 존의 자리를 대신해 주지 않았다. 존의 장례식 또한 아무도 오지 않았다. 매번 꿋꿋이 자리를 지키던 한 사람, 존이 없어지자 외로운 죽음을 맞은 사람을 위로해 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빌리의 장례와 같은 날에 치러진 존의 장례. 존이 찾아준 빌리의 가족과 친구들은 빌리의 무덤가에 모여 슬픔과 재회의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하지만 존의 무덤엔 아무도 없었다. 씁쓸하고 억울한 마음이 치고 올라올 때쯤, 존의 사진첩에서만 보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존의 무덤가로 모여든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가는 길을 위로해 줬던 따스한 존을 위해 수많은 영혼들이 모여 추모하는 마지막 장면은 내 눈물샘을 강타했다. 정말 고생했다. 정말 잘했다. 외로웠지만 잘 살아왔다고 존 메이를 위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