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후기,리뷰/영국,프랑스. 실화 여성 영화 추천/결말 해석]
개봉 : 2020.05.27. (한국 기준)
감독 : 필립파 로소프
출연 : 키이라 나이틀리, 제시 버클리, 구구 바샤-로, 수키 워터하우스, 레슬리 맨빌, 킬리 호위스, 리스 이판, 그렉 키니어
세상을 향한 여성들의 외침
<미스비헤이비어>는 약 50년 전 런던에서 일어난 여성해방운동을 주제로 한 실화 영화다.
34-24-36 일명 ‘황금 사이즈’라고 불리는 세 가지 숫자를 기준으로 여성을 평가하던 시대.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뽑는 ‘미스 월드’ 대회에 열광한다. 전 세계인의 축제라는 명목하에 여성을 무대 위로 올리고 외모와 성적인 매력을 평가하는 ‘가축 시장’과도 같은 이 대회가 펼쳐지는 밤이면 전 세계가 ‘어떤 아가씨를 골라야 하는가’ 고민하기 시작한다. 화려한 왕관을 쓰게 되는 단 한 명의 아가씨는 하룻밤 사이에 신데렐라 코스를 밟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가씨’라는 타이틀은 눈부시게 빛나지만 그건 그저 구경거리가 되는 일이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하던 여성 운동가이자 역사가 ‘샐리’와 남자들의 판을 갈아엎겠다는 포부를 가진 페미니스트이자 예술가 ‘조’. 그리고 여성연대 구성원들은 이 가축시장 같은 대회와 이상한 세계를 향해 여성해방의 목소리를 외친다.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성을 타고났다는 이유만으로 제한된 공간 안에 갇혀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시대. 무시와 차별이 너무도 당연시되었던 50년 전 그때. 사실 50년이 지난 지금도 ‘평등한 사회’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성들의 목소리는 전보다 조금 더 강해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스비헤이비어>는 최근 몇 년 사이 미투 운동을 시작으로 젠더에 대한 이슈가 매일같이 생겨나고 있는 이 시기에 아주 시의적절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여성 관객이라면 이 영화의 주제에 공감하고 환호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깨부수고자 힘을 모은 여성 감독과 여성 주연배우들로 이루어진 ‘진짜 여성 영화’다. 이렇게 조금씩 단단한 벽을 깨부수다 보면 언젠가 ‘여성 감독’이라는 말이 어색한 시대가 올 수 있겠지- 기대해본다.
"왕관을 거부한 유쾌한 반란" 우리는 예쁘지도 추하지도 않다! 우리는 화가 났을 뿐!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학계에서 무시당하지만 실력으로 이기겠다는 여성 운동가이자 역사가 '샐리' (키이라 나이틀리), 성적 대상화의 주범 미스월드에 한 방 먹일 작전을 짠 페미니스트 예술가 '조' (제시 버클리), 역사상 최초의 미스 그레나다로서 흑인 아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은 '제니퍼' (구구 바샤-로)
1970년, 달 착륙과 월드컵 결승보다 더 많은 1억 명이 지켜본 '미스월드'
성적 대상화를 국민 스포츠로 만든 미스월드에 맞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진정한 자유를 외친 여성들의 유쾌한 반란이 시작된다!
<미스비헤이비어>에는 여러 상황에 놓인 여성들이 등장한다. 주인공 샐리는 이혼 후 딸과 함께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는 여성이다. 샐리는 중학교 중퇴생이지만 딸을 키우며 졸업장 취득 후, 케임브리지 대학 사학과 진학에 성공한 만학도다. 진취적인 성향으로 학교생활을 하면서도 여성 운동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샐리는 ‘고학력과 사회적 지위는 남성이 갖는 것이다’는 편견으로 똘똘 뭉쳐진 남성들만의 판에 올라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샐리의 어머니는 샐리보다 한세대 위의 여성으로 사회적 억압에 갇혀 살아온 ‘엄마’다. 그 세대를 살아온 여성에게 주어지는 것은 어머니 또는 부인이라는 직책뿐이었다. 샐리의 엄마는 자라온 환경에 길들여져 여성에겐 아름다움이 있어야 하고 여성이 안정적으로 살아가려면 결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스 월드 참가자들을 흉내 내며 포즈를 잡는 손녀에게 구두를 신기고, 하트 모양 입술을 발라주는 샐리의 어머니는 또 다른 시대의 피해자였다. 여성 운동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샐리에게 엄마는 ‘넌 여성운동을 하지만 항상 아빠의 편이었지.’라며 섭섭함을 드러낸다. 샐리는 어딘가에 갇혀있는 듯 자유롭지 못한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대신 엄마가 아닌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고 취미를 즐기고 사회생활을 하는 아빠의 모습처럼 되고 싶었고, 그 자유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닌 양성이 모두 당연하게 누려야 할 권리로 인정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여성해방 운동에 적극 참여한다.
샐리가 운동을 하며 만나는 ‘조’와 동료들은 남성들의 판을 뒤엎으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스프레이로 글씨를 쓰고 자유롭고 거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녀들 또한 ‘여성 해방’에 대한 같은 뜻을 갖고 있는 여성이었다. 대중매체를 이용하는 방법을 몰랐던 조와 여성 연대 회원들은 주로 글과 그림으로 운동을 이어나가던 중 샐리를 만나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다.
미스 월드에 참가한 제니퍼(미스 그레나다)와 펄(미스 남아공)은 역사상 최초의 미스 그레나다, 남아공의 최초 흑인 참가자다. 미스 월드에 참가한 걸 보면 여성연대와 반대되는 뜻을 가진 게 아닌가? 싶지만 제니퍼와 펄 또한 차별에 맞서 싸우기 위해 대회에 참여한 것이다. 성별과 인종차별을 모두 겪으며 자라온 그녀들은 ‘흑인 여성도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고향에 있는 여자아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무대 위에 선다.
미스월드는 여성차별과 성적 대상화의 상징물이다. 원래 자신의 이름이 아닌 출신 국가와 번호로 호칭이 바뀌고 그녀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오직 외모다. 다리가 얼마나 예쁜지 웃는 표정은 얼마나 자연스럽고, 치아는 하얗고 고른지. 가슴과 엉덩이의 볼륨은 어느 정도인지, 허리는 잘록한지. 마치 물건을 고르듯 아가씨들의 성적 매력을 평가하는 것은 남성들이었다.
세상의 절반이 권력을 전부 쥐고 있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가 봐요.
나에게도 역시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이었다. 흔히 생각하는 사회 고위층 직업이 대부분 남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게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대통령도 남성, 학자도 남성, 판검사도 남성, 선생도 남성, 경찰도 남성. 영화감독도 남성.. 이런 직업들을 여성이 갖게 되면 꼭 ‘여’라는 호칭이 따라붙는다. 여검사, 여선생, 여자대통령, 여경, 여감독 등.. 젠더 권력은 우리 사회의 기반에 깊은 뿌리를 내린 채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의식들이 당연하게 자리 잡고 있던 시대였지만 샐리는 그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총명한 여성이었다.
들어앉은 게 유아용 의자였네요.
샐리와 조는 서로 다른 스타일의 여성운동을 진행했다. 샐리는 권력을 쥔 남성들로 가득 찬 테이블에 함께 앉아 남성의 판이 아닌 양성평등의 판을 만들고 싶어 했고 조는 대학에 진학한 샐리를 보며 ‘남성들의 판을 뒤엎긴커녕 함께 들어앉는다’며 이해하지 못했다.
샐리는 사학과의 유일한 여성이었다. 남성들로 가득한 회의에서 샐리의 말은 이유도 들어보지 않은 채 모두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샐리의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그저 그가 여성이었기에 ‘쟤가 하는 말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치졸하고 유치한 이유 때문이었다. 샐리는 미스 월드 대회장 앞에 서서 동향을 지켜보고 있던 조의 옆에 서서 얘기한다. ‘내가 들어앉은 게 유아용 의자’였다고.
우린 추하지도 예쁘지도 않고 그저 화났을 뿐이다.
사람은 외적 조건으로 모든 걸 판단할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그 시대의 여성들에겐 예쁜지. 아니면 추한지(예쁘지 않은지)가 판단의 기준이었다. 여성연대는 이런 말도 안 되는 평가 기준에 대해 반기를 든다. 우리는 예쁜 여성도 추한 여성도 아닌 이 말도 안 되는 사회에 화가 난 여성들일 뿐이라고 말이다.
그녀들의 시위 방법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다 함께 슬로건을 들고 행진하고 전단지를 뿌리고, 남성 권력에 대해 부끄러운 줄 알라며 소리치는 것. 작고 소박한 그 움직임은 대중매체를 통해 멀리 전해졌고, 작은 움직임은 도시 전체로 퍼져나갔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대회 직전 아나키스트의 폭탄 테러로 인해 곳곳에 경찰이 포진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작은 소동이라도 일으키는 즉시 바로 연행될 것이 분명했다. 딸아이를 두고 있는 엄마 샐리, 뱃속에 새 생명을 품고 있는 조는 자신의 가족을 위해 운동을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자신의 미래와 딸, 모든 여성들을 위해 용기를 내 운동을 진행했다. 엄청난 용기와 소신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들이 카메라와 눈을 맞추며 마치 우리를 바라보는듯한 장면에선
완고하고 꿋꿋한 그들의 의지가 절로 전해지는듯하다.
‘성차별, 성 평등’ 어쩌면 무겁고 논쟁의 여지가 많은 주제일 수도 있다.
<미스비헤이비어>는 신문 1면을 장식했던 여성들의 외침을 발랄하고 위트 있게 풀어내 거리감과 논쟁의 여지를 최소화했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이게 진짜 있었던 일이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모두 진짜다.
모든 건 진짜였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우리는 이 여성들이 전한 해방의 메시지가 지워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