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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Jun 11. 2020

<로렌스 애니웨이> - '숨이 막혀도 사랑이고..'

[영화 후기,리뷰/ 왓챠, 자비에돌란 영화 추천/결말 해석]



로렌스 애니웨이 (Laurence Anyways)

개봉일 : 2013.12.19. (한국 기준)

감독 : 자비에 돌란

출연 : 멜비 푸포, 수잔 클레망, 나탈리 베이, 모니아 초크리, 이브 자크, 수잔 알그렌, 소피 포세, 카트린 베갱                                                                         

숨이 막혀도 사랑이고, 나 자신이라


’로렌스 알리아씨가 찾는 게 뭐죠?‘

이 영화는 하나의 물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자비에 돌란 감독의 내밀하고 깊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로렌스 애니웨이>는 주인공 로렌스가 자신의 진정한 가치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담았다.



주인공 로렌스는 자신의 성 정체성과 다른 신체를 타고난 사람이다. 35년이라는 세월을 거대한 죄악을 끌어안고 살아왔다 느끼던 로렌스는 연인 프레드에게 마음을 짓누르던 비밀을 고백한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신기하다는 듯 빠른 눈길로 훑어내지만, 돌란 감독은 조금 다른 시선으로 로렌스를 바라본다. 로렌스는 그 누구도 정의할 수 없는 그저 ’로렌스‘라는 사람 자체였다. 남선생님도 여선생님도, 시시콜콜한 여학생들의 대화에 오르는 섹시한 청년도, 이상한 청년도 아니다.



<로렌스 애니웨이>의 러닝타임은 총 3시간(168분)으로 꽤 긴 편에 속한다. 긴 러닝타임과 더불어 돌란 감독의 여느 작품들에 비해 살짝 루즈한 느낌이 들어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돌란 감독만의 감각적인 영상 연출은 여전히 엄청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나는 이 영화 속 현실에 적절하게 끼어들어있는 비현실적인 순간들과 돌란 감독의 색채 사용법이 참 좋다. 




로렌스 애니웨이 시놉시스


너만이 가득한 세상, 이 사랑이 모든 것을 바꿔주면 좋으련만…

몬트리올에서 소설을 쓰는 청년 로렌스와 그의 정열적인 피앙세 프레드는 미래를 약속한 사이.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이한 어느 날, 로렌스는 사랑하는 프레드에게 그동안 숨겨왔던 비밀을 고백한다. 남은 일생을 여자로 살고 싶다고… 


절망의 끝에서도 차마 ‘이 사랑’을 놓지 못하는 두 사람. 이들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로렌스와 프레드는 잘 어울리는 한쌍이다. 아름다운 문장을 종이 위에 쏟아내는 소설가 로렌스와 감각적인 사진을 만들어내는 연출가 프레드. 정갈하고 짧은 머리를 한 로렌스와 정열이 가득한 붉은 머리칼을 가진 프레드. 둘은 미래를 약속한 사이였고 그 믿음은 콘크리트 벽만큼이나 단단한 것이었다. 


단단한 둘의 사이를 한순간에 관통한 것은 로렌스의 성 정체성에 대한 갈등이었다. 로렌스의 생일. 로렌스 앞에 놓여있는 케이크와 그를 둘러싼 프레디와 친구들. 로렌스가 생일 초를 부는 모습이 샴페인 잔에 거꾸로 비친다. 상하가 뒤바뀐 채 촛불을 부는 로렌스의 모습은 현재의 로렌스의 모습과 정반대인 무언가의 탄생을 암시하는듯하다. 그리고 그 해 생일이 지난 후 로렌스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백한다. 



로렌스의 지난 35년은 죄악을 끌어안은 채 사는 것과 같았다. 로렌스의 고백을 들은 프레드는 동성애자임을 왜 말하지 않았냐며 당혹감과 배신감, 분노를 숨기지 못한다. 갑작스레 밀려온 커다란 변화에 프레드는 시간을 갖길 바랐고 로렌스는 그저 그녀의 선택을 기다릴 뿐이었다. 시간이 흐른 후, 프레드의 결론은 ‘로렌스의 팔을 베고, 함께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프레드는 로렌스의 가장 소중한 피앙새이자 수호자가 된다.



로렌스는 프레드의 응원에 힘을 얻어 여장을 한 채 학교에 출근한다. 나는 아직도 처음 로렌스가 교실의 한가운데 섰을 때, 몇 시간처럼 느껴지던 그 정적이 잊혀지지 않는다. 열 맞춰 정렬된 책상과 자신을 쳐다보는 수십 개의 시선의 중앙에 선 로렌스는 긴장감으로 얼어붙어있다. 긴 정적이 지나고, 평소와 같이 흘러가는 시간에 로렌스는 자신감을 되찾는다.


'반항하는 거야?’
‘아뇨 이건 혁명이에요'


에메랄드빛 투피스와 짧은 머리. 노란색 구두를 신은 로렌스는 당당한 걸음걸이를 유지하며 복도를 거닌다. 사람들은 평범하지 않은 로렌스의 모습을 다양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놀란 표정, 어이없다는 표정, 웃기다는 표정.. 긍정보다는 부정에 가까운 표정들이다. 로렌스는 그 시선들에 당당히 맞서 걷는다. 하지만 로렌스에게 쏟아지는 건 시선뿐만이 아니었다.



‘사랑으로 모든 걸 극복할 수 있을까?’ 로렌스와 프레드는 수없이 고민했을 것이다. 둘은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고 단언하지만, 둘의 유대감 만으로는 사랑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로렌스는 학부모 단체의 항의로 학교를 그만두게 됐고, 프레드는 쏟아지는 시선에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토요일 브런치를 즐기는 것조차 로렌스와 프레드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무례하게 질문을 반복하는 담당자와 구경거리를 보듯 흘깃거리는 사람들. 그들에겐 로렌스의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이 낯설기만 하다.

                                                                       

우리 같은 사람들도 숨 좀 쉬면서 살자


프레드는 로렌스와 함께할 때 가장 행복했었다. 하지만 행복은 과거형이 되었고 지금은 모든 순간이 숨이 막혔다. 반복되는 심리적 압박에 프레드는 첫 만남의 순간, 로렌스가 선물했던 나비 모양 클립 목걸이를 풀어놓고 파티에 찾아간다. 정열이 가득한 붉은 머리를 한 프레드는 마치 파티의 마지막 주인공 같은 모습이다. 로렌스에겐 비난의 시선이 쏟아졌고, 프레드에겐 관심과 선망의 시선이 쏟아진다. 이 짧은 파티 장면은 온전히 프레드를 위한 시간이었다.



로렌스와 프레드는 여느 연인과 다를 것 없는 이별 수순을 밟는다. 그 후 로렌스는 책을 출판했고 프레드는 평범한 가정을 꾸리지만 둘이 함께했던 시간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힘들었지만 인생의 어느 순간보다 다채롭던 그 시절. 서로를 잊는다는 건 쉽지 않았다. 로렌스는 프레드에게 자신의 책을 보냈고, 프레드는 흰 벽돌집에 대한 구절을 읽으며 로렌스의 존재를 눈치챈다. 다시 마주하게 된 둘은 함께 휴가를 떠나기로 약속했던 블랙섬으로 떠난다. 블랙섬으로의 여행은 도피이자 마지막 시작이었고, 이 여행이 끝나면 로렌스와 프레드는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영화의 초반, 로렌스는 마른 빨래를 쏟아내며 프레드를 깨웠었다. 그리고 여행의 시작. 둘 앞에 펼쳐진 맑고 투명한 하늘에 옷가지들이 휘날린다. 둘의 모습은 당당하고 행복해 보였으며,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이 옷가지들이 땅으로 모두 내려앉을 때쯤, 둘은 마지막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이 사랑은 결국 끝을 맞이한다. 로렌스와 프레드는 둘만의 리스트를 만들며 색에 대한 이미지를 정의했었다. 빨간색은 정열과 사랑, 갈색은 섹시하지 않은 색. 마지막으로 마주한 둘의 모습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있었다. 프레드 열정과 사랑이 가득한 빨간 머리가 아닌 섹시하지 않은 갈색의 머리로, 로렌스는 전보다 길어진 조금 더 여성스러워진 모습으로. 로렌스는 앞문으로, 프레드는 뒷문으로 건물을 빠져나간다. 



로렌스가 진정한 자신을 다른 사람들 앞에 내놓기까진 3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 시기에 걸쳐있던 진득하고 질긴 사랑은 로렌스의 글 속에 영원히 담겼다. 쉽지 않겠지만, 로렌스가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극 중에 로렌스를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학교에서 잘린 날, 바에서 시비를 거는 남성과 싸운 로렌스는 전화를 걸기 위해 도움을 청하지만 낯선 로렌스에게 도움을 준 사람은 로렌스와 비슷한 인물인 베이비 로즈뿐이었다.



로렌스의 어머니는 초반엔 로렌스의 정체성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베이비 로즈의 도움을 받아 로렌스가 어머니에게 전화했을 때, 어머니는 매몰차게 연락을 거부했다. 로렌스의 아버지는 꽤나 가부장적인 사람이었고 오랜만에 찾아온 아들의 이야기보단 TV를 중요시하는 사람이었으며, 어머니는 그에게 휘둘리는 삶을 살았다. 아버지는 당연히 자식의 성 정체성을 이해해 줄 사람이 아니었고, 어머니 또한 아버지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랬던 로렌스의 어머니가 마음을 바꾼 건 비에 젖어 떨고 있는 자식이 집으로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남편(로렌스의 아버지)이 보고 있는 TV를 부수고 집을 나선다. 아들이자 딸인 자신의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니. 그녀는 로렌스가 아들이 아닌 딸처럼 느껴졌었다며 새로운 자식의 정체성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와는 반대로 로렌스를 가장 먼저 이해해 준 사람이자, 로렌스가 가장 사랑했던 프레디는 현실의 벽과 그녀가 원하는 ‘평범한 남자’라는 조건을 버리지 못하고 로렌스의 곁을 떠난다. 



베이비 로즈는 로렌스를 처음 만났던 날, 시선을 받기 싫으면 뒷문으로 나가라고 조언한다. 프레디는 로렌스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뒷문을 통해 조용히 건물 밖으로 나간다. 모두가 여전히 로렌스를 여러 감정을 담은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지만, 로렌스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자신의 중심을 단단하게 잡은 채 앞으로 나아가는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사랑은 잘못되지 않았다. 숨겨둔 정체성을 꺼내놓은 로렌스도, 세상의 시선에 이기지 못해 떠난 프레디도. 그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다. 오히려 로렌스와 프레드는 서로를 위해 온전한 사랑을 유지하려 애썼다. 로렌스는 프레드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자 여장을 하지 않은 채 프레드를 만났고, 프레드는 로렌스를 위해 가발을 선물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로렌스를 소개했다. 다른 이의 시선엔 여장남자와 특이한 취향을 가진 여자의 사랑이지만 둘의 사랑은 남들과 다르지 않았다. 상대를 위해 희생하고 노력하며 진실된 애정을 표현하는 것, 둘은 누구보다도 서로를 사랑했다. 이 사랑의 끝은 서로의 길을 찾음으로써 마무리되었을 뿐. 이기심과 분노가 깃들지 않은 각자의 선택이었다. 



<로렌스 애니웨이>는 표면적으로 봤을 땐, 로렌스의 성 정체성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로렌스가 자신을 찾아 떠나는 이 3시간의 여정엔 로렌스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 세상과 사랑을 바라보는 로렌스의 시선, 사랑을 담아 로렌스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로렌스는 남성의 몸에 갇힌 여성이 아닌 그저 로렌스다. 제목처럼 말이다. 우리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수 없이 고민한다. 그리고 그에대한 답을 쉽게 나오지 않으며, 또다시 똑같은 고민을 반복한다. 하다못해 수학 문제 하나를 풀 때도 수많은 수식과 고민이 머릿속에 지나가는데, 이 길고 방대한 인생에 던져진 나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니.. 가끔은 이 고민이 끝없는 늪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시선과 사회적 통념으로 가득한 여러 가지 보기를 들고 와 자신을 너무 괴롭히지 마시라. 분명 간단한 답은 아닐 테지만 그렇다고 무지하게 어려운 것은 또 아닐 것이다. 나는 그저 나일뿐. 그 누구도 정의할 수 없는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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