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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Mar 29. 2024

흰 눈밭 위에 찍어낸 한편의 실체 없는 우화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리뷰, 해석 / 신작, 하마구치 류스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Evil Does Not Exist, 2024)

"흰 눈밭 위에 찍어낸 한편의 실체 없는 우화"


개봉일 : 2024.03.27.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 106분

감독 : 하마구치 류스케

출연 : 오미카 히토시, 니시카와 료, 코사카 류지, 시부타니 아야카

개인적인 평점 : 4.5 / 5

쿠키 영상 : 없음


2021년 연말, 조용히 나타나 예술 영화계를 시끌벅적하게 만든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이하 드마카)>의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의 신작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개봉했다. <드마카>가 179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잔잔한 진행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끈 이후 이전에 발표한 그의 영화 <스파이의 아내>, <아사코>가 줄줄이 재주목 받았고, 무려 328분의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 <해피 아워> 또한 ‘하마구치 류스케’라는 이름만 믿고 도전하는 관객들이 더러 생겼을 만큼 현재 ‘하마구치 류스케’ 라는 이름은 일단 믿고 볼만하다는, 하나의 인증 마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감독의 이름값에 더해 제80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받은 영화라고 하니 국내 팬들의 관심도 또한 높아질 수밖에. 나 또한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개봉하길 손꼽아 기다렸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스타일은 그대로. 주제는 신선하게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스타일은 확고하다. 섬세하고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하지만 길고~ 느리고~ 조용하다. 그의 이전 영화들에 푹 담가졌던 관객이라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상당히 만족스러운 영화가 될 것이다. 하지만 <드마카> 또는 <우연과 상상> 도전했을 때 불호였다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불호일 확률이 높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전 영화들에 비해 짧은 러닝타임(106분)을 가졌지만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특유의 정적인 느낌이 그대로 느껴지는 영화라 단순히 ‘재밌는 영화’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중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가장 좋았다. 이전 영화들은 외로움, 불륜, 사랑이 메인 주제였기에 개인 취향에 크게 부합하지 않았는데 이번엔 지금껏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주제라 상당히 신선하고 재밌었다. 영화의 중후반부까진 어… 애매한데? 싶었지만 영화의 마지막쯤 모호했던 것들이 하나씩 형태를 갖춰가는 순간, 마음이 싹 바뀌었다.



조용하지만 묵직한 도끼질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한다. 대사와 액션 자체가 적고, 와이드샷, 롱테이크 샷의 비율도 높으며 배경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 누군가 크게 감정에 호소하거나 이마를 빡!강타하는 강력한 장면도 없다. 아름답고 시큰한 눈밭, 차가운 공기, 답답하고 건조한 대화, 지루할만큼 길게 뻗어있는 도로 등 심심하고 건조한 것들 투성이다. 이 중에서 그나마 볼만한 요소라면 눈밭과 같은 자연 경관뿐이다. 재밌는 요소라곤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앞서 느꼈던 애매한 감정들을 확실한 한 방으로 정리한다. 마치 달인의 도끼질 같달까. 달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고, 최소한의 동작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낸다. 도끼질도 그렇다. 처음 해보는 사람은 몸에 힘을 빡 주고 크게 도끼를 휘두르지만 정확도와 숙련도가 떨어져 웬만한 힘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선 장작의 겉면만 폭-하고 찍거나 다른 곳을 찍기 바쁘다. 하지만 매일같이 도끼질을 해온 숙련자의 도끼질은 다르다. 도끼를 크게 휘두르거나 요란한 기합도 넣지 않고 그냥 툭- 휘두르는데 장작이 쩍쩍 갈라져 나간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딱 이러한 숙련자의 느낌이 드는 영화다. 눈길을 끌만한 여러 요소를 넣지 않고 우직하고 조용하게, 단 한방의 유효타를 향해 간다. 물론 그 유효타까지 가는 여정이 쉽지는 않지만.. 뒤돌아보면 견디길 잘했다 싶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제목의 의미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작은 산골 마을 하라사와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 이야기다. 하라사와는 개발이 진행되지 않은 외진 산골 마을이다. 어느 날 도시에서 온 한 연예기획사 직원들이 이곳에 글램핑장을 짓겠다며 설명회를 연다. 이들은 구멍투성이인 설립 계획을 떠벌리며 글램핑장이 들어서면 마을도 함께 발전할 거라고 주민들을 회유한다.


하지만 이들의 계획대로 글램핑장이 들어선다면 산불, 식수 오염 등 여러 환경 문제가 일어날 게 뻔한 상황. 마을 주민들과 주인공 ‘타쿠미’는 침착하게 마을의 의견을 어필하며 계획에 반대하고 연예 기획사 직원들은 계획을 검토해 보겠다며 도시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후, 연예 기획사 직원들이 다시 하라사와에 방문하고 타쿠미와 하나에게 작은 사건이 일어난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전체적인 흐름만 보자면 이 이야기 속엔 명확한 악이 존재한다. 깨끗한 산골 마을, 그 마을을 침범한 자연 파괴범 그 자체인 도시 사람들. 이들은 확실한 악인으로 보이는데 왜 영화의 제목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일까.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얘기하고자 하는 게 선과 악의 구분 또는 자연보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에서 절대적인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나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런 애매모호한 주제를 짊어진 채 퍼석한 흰 눈밭을 걸어간다. 이 이야기는 하나의 소설 같기도, 구전 신화 같기도, 우화 같기도 하다. 신비롭고, 흥미롭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깨끗한 마을에 들어서려는 글램핑장
식민지와 식민국 / 자연을 해치는 사람


하라사와는 전쟁 이후 개척된 마을이다. 6천여 명의 하라사와 마을 사람들은 이곳 특유의 깨끗한 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주인공 타쿠미와 마을 사람들은 함께 저녁을 먹고, 서로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고받으며 단단한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이들은 외지인의 도움과 관심 없이도 충분히 마을을 꾸려나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평화로운 마을에 난데없이 상생 관계라는 가면을 뒤집어 쓴 외지인,연예 기획사 플레이 모드의 직원들이 등장한다. 도시에 위치한 이 회사는 글램핑 사업과 마을에 대한 지식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글램핑장 건설을 추진한다. 진심으로 이 사업을 해보려는 건 아니고 2달 치 매출에 해당하는 코로나 보조금을 타기 위해 온 것이다. 플레이 모드 직원인 타카하시와 마유즈미는 설명회를 열지만 이들의 계획은 허점 투성이다.


정원은 64인인데 정화조는 50인용. 그마저도 정화율은 90%. 게다가 정화조의 위치마저도 지하수와 연결된 우물 바로 옆이다. 게다가 글램핑 관리인은 총 4명, 그런데 23시부터 6시까지는 자리를 비운단다. 어이없는 계획에 화가 난 주민들은 따로 저수지를 파거나 시설의 정중앙에 정화조를 옮겨야 한다, 관리인을 24시간 상주 시켜라 등등 여러 의견을 어필하지만 이들은 대충 전달하겠다는 말로 얼버무리며 주민들의 의견을 피하기만 한다. 어차피 내가 사는 곳도 아니고 원래 내가 하는 일도 아닌데.. 뭐, 알바냐? 하는 마음인 거다. 그나마 마유즈미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 계획을 백지화해보자고 하지만 플레이 모드의 사장, 글램핑 업체 쪽은 일단 듣는 척만 하고 타쿠미를 설득해 보라며 타카하시와 마유즈미를 다시 마을로 보낸다.


사슴이 지나는 길 한복판에 계획된 글램핑장 건설은 자연을 침범하는 사람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나는 이를 보며 다른 주제가 떠오르기도 했다.


소수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산골 마을 / 큰 도시에 세워진 연예 기획사. 이 두 집단은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갖고 있고 돈을 굴리는 스케일도 다르다. 플레이 모드는 요구를 들어주는 척만 해라, 어차피 한가해 보이는데 관리인이나 시켜라.라는 발언을 하며 하라사와의 주민들을 얕잡아본다. 선민의식을 가진 플레이 모드는 자본력을 끌어와 글램핑장을 지어 마을을 침범하려고 하는데 이들의 행동은 제국주의 시대와 식민국을 떠올리게 만든다. 본인들과 아무상관 없는 하라사와를 재료로 삼아 코로나 보조금을 크게 뽑아먹으려는 커다란 집단. 이는 약한 나라를 점령해 식민지로 만들고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식민국의 모습과 닮았다.



균형을 유지하려 하지 않는 이기적인 자에게 내리는 자연의 벌
타쿠미와 타카하시의 옷 색깔
타카하시가 목을 졸린 이유, 마유즈미는 당하지 않은 이유


설명회에서 마이크를 잡은 타쿠미는 이렇게 말한다.


“중요한 건 균형이다.” “우리는 외부에 의해 발전하기도, 파괴되기도 했다.”


타쿠미는 처음부터 글램핑장 건설을 찬성하거나 반대하진 않겠다며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계획을 만들어온다면 협조하겠다고 말한다. 그는 플레이 모드를 완전한 악으로 분류하지 않은 상태로 그들에게 자연과 사람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맞출 기회를 준다. 가져온 술과 관리직 제안을 거부하고, 소중한 물로 만들었다는 소바를 대접하고, 직접 물을 떠볼 기회를 주고, 숲을 걸어볼 기회를 줘도 이들은 타쿠미의 뜻엔 관심이 없다. 그저 타쿠미의 뒤를 쫓으며 글램핑장을 잘 운영할 수 있게 마을에 대해 알려달라고 조를 뿐이다.


타쿠미와 타카하시의 옷 색을 떠올려 보자. 타쿠미는 파란색, 타카하시는 주황색. 파란색과 주황색은 색상환의 정반대에 위치한 보색 관계다. 타쿠미의 입장에서 보면 타카하시는 대척점에 서있는, 가까워질 수 없는 악인이다. 마지막에 타카하시가 타쿠미에게 목을 졸린 건 타쿠미가 내린 벌이다. 그런데 왜 같은 회사 직원인 마유즈미는 벌을 받지 않았을까? 그것 또한 이유가 있다.


마유즈미는 플레이 모드 사람들 중 그나마 타쿠미와 마을을 무시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그녀는 플레이 마유즈미는 타카하시가 마이크를 내려놓고 응답하지 않을 때 대신 마이크를 들어 마을 주민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고, 회의 중엔 주민들의 이야기가 이해된다며 이 계획을 백지화하자는 의견을 낸다. 그리고 이 업계가 어떻냐는 타카하시의 질문에 “생각했던 그대로 쓰레기 집합소예요.”라고 답한다. 마유즈미는 이 회사가 하고 있는 일이,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 얼마나 잘못된 건지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마유즈미는 어차피 한가할 것이라며 타쿠미를 무시하는 상사에게 반대 의견을 내고, 타쿠미가 대접한 소바의 맛을 진심으로 느꼈고, 함께 물을 뜨러 간 장면에선 아무도 권하지 않았는데도 장갑을 벗고 하라사와의 물을 맛본다. 그리고 먼저 집으로 돌아가라는 타카하시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하라사와에 더 남아있겠다고 말한다. 반대로 타카하시는 그냥 결혼하고 개 한 마리나 키우며 관리직이나 할까~하는 마음을 갖고 하라사와로 향한다. 그리고 타쿠미는 생계를 위해 반복하는 장작패기를 재밌고 짜릿한 체험쯤으로 생각한다. 소바 또한 몸이 뜨끈해졌다며 애매모호한 평을 내놨고, 물도 맛보지 않았다. 타카하시는 진심으로 마을을 알아가겠다는 마음보단 ‘이 회사를 벗어나 관리인으로 편하게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타쿠미를 쫓아다닌다.


타쿠미는 이런 두 사람의 차이를 느꼈을 거고, 마유즈미는 벌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타쿠미는 마유즈미를 해하지 않고 그녀의 상처에 붕대를 감아준다. 그리고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마유즈미에게 타쿠미 또한 “미안합니다.”라고 대답한다. 악하지 않은 그녀의 손에 상처를 낸 게 미안하기라도 한 듯이.



사슴과 물의 의미, 뜻. 타쿠미와 하나는 사슴?
독이 있는 오갈피 열매와 술
“야생 사슴은 사람을 해치지 않아.”


영화는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나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타쿠미와 하나, 마을 사람들이 사슴과 여러 동물들을 뜻한다고 해석했다. 깊은 산속에 살고 있는 동물들을 마을 사람으로 의인화한 것이고, 플레이 모드는 이들의 터전을 위협하는 사람인 것이다.


타쿠미는 야생 사슴을 이렇게 설명한다.


“야생 사슴은 사람을 해치지 않아.”

“그런 사슴이 있다면 (총알을) 빗맞은 사슴이나 그 어미, 아비일 거야.”


타쿠미와 사슴은 닮았다. 삶의 터전을 망치려는 자들이 밀고 들어와도 그들을 해치지 않고 균형을 맞춰 공생할 방법을 구하려고 한다. 하지만 플레이 모드는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들이 다시 왔을 때 타쿠미는 말한다. 거긴 사슴이 지나가는 길이라고, 사슴은 2미터를 넘게 뛴다고. 그들은 울타리를 쳐야겠다고 말한다.


타쿠미는 다시 말한다.

“그럼 3미터가 넘는 울타리를 쳐야 하는데 누가 오고싶겠어.”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

“도시에서는 못 보는데 야생 사슴을 보면 좋겠네요.”

“야생 사슴은 겁이 많아 사람을 보면 도망쳐.”

“글램핑장이 생기면 안 오겠네요.”

“그럼 사슴은 어디로 가죠?”

“딴 데 어디론가 가겠죠.”


이들은 타쿠미가 말하는 사슴의 삶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래도 타쿠미는 계속 참는다. 그러다 하나가 실종되고 사슴 두 마리와 함께 쓰러진 채로 발견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타쿠미는 사슴과 산을 다치게 만드는 사람, 타카하시의 목을 조른다. 이는 실제로 하나가 사슴 두 마리와 함께 있었음을 말하는 게 아닌 하나의 앞에 서있던 큰 뿔을 가진 수사슴과 총을 맞은 사슴이 타쿠미와 하나라는 걸 암시하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영화의 초반부에 하나와 타쿠미가 함께 산을 걸어가며 나누는 대화에도 힌트가 있다. 낙엽송, 소나무, 산벚나무, 울밤나무 등등 .. 나무 이름 맞추기를 하던 중 하나가 오갈피 나무에 손을 뻗자 타쿠미는 그건 독이 있어서 만지면 안 된다며 하나를 제지한다. 타쿠미는 오갈피 나무는 독이 있어서 사슴도 안 먹는 열매라 말하고 생열매가 아닌 술로 만들어 먹는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그럼 아빠도 못 먹겠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후 타쿠미는 타카하시와 마유즈미가 가져온 술을 거절한다. 사슴도 안 먹는 열매, 그리고 그 열매로 만든다는 술. 타카하시가 가져온 술이 오갈피 열매 술인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타쿠미가 술을 아예 마시지 않는다는 건 어떤 방식으로든 그가 오갈피를 먹을 일이 없다는 것, 그가 사슴처럼 오갈피 열매를 먹지 않는 다는 것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사슴과 하라사와 사람들의 공통점이 또 있다. 우물, 물은 이들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이며 이들은 우물 중심으로 모인다는 것. 하라사와 사람들은 마을의 물을 상당히 자랑스러워하고 우물이 오염되지 않게 지키기 위해 뜻을 모은다. 사슴은 우물로 물을 마시러 오고 사슴은 우물 근처로 지나다닌다.


극 중엔 사슴 발자국이나 새의 깃털 같은 동물들의 흔적이 나오지만 실체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하라사와 사람들이 산을 지키려는 사람이자 동물을 뜻하기 때문이다. 발자국, 깃털을 통해 이 산에 동물들이 살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을 넘어 실제 동물들을 화면에 비춰버리면 긴장감과 마지막 장면의 임팩트가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메시지 또한 애매모호하게 되어버렸을거다.



그래서 왜 악은 존재하지 않는가?


여기엔 절대적인 악이 없다. 의미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타카하시가 악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도 그저 회사의 지시를 받고 온, 악하기보단 무지함에 가까운 사람이다. 타쿠미는 타카하시를 해하는 악행을 저질렀지만 삶의 터전과 가족을 지키기 위한 행위였기에 그가 악인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화면 안엔 악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타카하시는 바닥에 쓰러져 보이지 않고 타쿠미는 하나를 안고 숲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보이는 건 자연뿐이다.


몇 번을 되새겨봐도 여전히 풀지못한 것들이 많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막 보고 나왔을 때보다 곱씹어 볼수록 더 재밌는 영화다. 아마 이 글을 마치고 나서도 또 다른 궁금증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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