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봇 드림> 리뷰, 해석 / 신작, 애니메이션 영화
개봉일 : 2024.03.13.
관람등급 : 전체 관람가
장르 : 애니메이션, 드라마, 가족
러닝타임 : 103분
감독 : 파블로 베르헤르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없음
애니메이션은 유치하다. 애니메이션이 어른에게 감명을 주긴 어렵다는 생각은 이제 저 먼 곳으로 던져놔야 할 오래 묵은 편견이다. 디즈니, 픽사를 제외하면 애니메이션을 자주 보는 편이 아니기에 이 장르에 대해 할 말이 많진 않지만, <로봇 드림>은 이런 무지한 눈을 가진 내가 봐도 딱 깔끔하게 잘 뽑혔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로봇 드림> 76회 칸영화제 특별 상영 부문에 초청,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 후보로 지명되면서 국내 정식 개봉 전부터 큰 관심을 받았고, 국내 개봉 후 작지 않은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로봇 드림> 줄거리
<로봇 드림>은 뉴욕 맨해튼에서 홀로 살며 외로움을 느끼던 개 ‘도그’가 반려 로봇을 주문하면서 시작된다. 도그는 로봇과 단짝이 되어 함께 거리를 걷고, 공원에 나들이를 가고, 게임을 하며 행복을 느낀다. 도그의 손에서 조립된 로봇은 도그와 다른 인물들을 보고 따라 하며 세상을 배운다. 하지만 이들의 행복한 시간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여름을 맞이해 해수욕을 하러 간 도그와 로봇은 별다른 의심 없이 신나게 바닷물 속으로 뛰어든다. 지칠 때까지 해수욕을 즐기던 둘은 따사로운 햇볕을 느끼며 잠시 잠에 빠져든다. 도그가 눈을 떴을 땐 다른 해수욕객들이 모두 빠져나간 후였다.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눈치챈 도그는 재빠르게 일어나 옷을 갈아입는데, 로봇은 평소와 다르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알고 보니 로봇에겐 방수 기능이 없었고 바닷물에 의해 부품 사이에 녹이 슬어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이다.
도그는 어떻게든 로봇을 일으켜 함께 가려고 하지만 도저히 방법이 없어 일단 자리를 떠난다. 그리고 다음날, 도그는 로봇을 고치기 위해 로봇 수리 책과 비싼 도구를 사들고 해변으로 향한다. 하지만 도그를 반겨주는 건 탁 트인 해변이 아닌 ‘내년 6월 1일 재개장’이라는 표지판과 높은 철조망뿐이다.
담백하지만 묘한 여운을 남기는 끝 맛
<로봇 드림>은 상당히 담백한 영화다. 그림도 화려하지 않고 대사도 없다. 살짝 지루하고 답답한 부분도 있다. 기대를 많이 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 영화의 첫인상은 딱 깔끔하고 담백하다.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로봇 드림> 괜찮은 영화 같다고 느낀 이유는 이 영화가 가진 섬세함과 공감되는 주제, 그리고 자꾸 생각나게 만드는 묘한 여운 때문이다.
<로봇 드림>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한 번쯤 겪어봤을 관계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근데 이 관계를 그리는 방법이 참 섬세하다. 대사가 없는 영화다 보니 모든 감정을 말이 아닌 인물의 표정, 행동, 눈빛으로 표현하는데, 이게 신기할 만큼 마음에 잘 와닿는다.
관계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이별한다고 모든 게 사라지는 건 아니다.
상영관을 나와 집으로 오는 내내 이 영화가 주는 여운에 대해 생각했다. 이야기만 본다면 <로봇 드림>은 단순한 축에 드는 영화다. 만남과 이별, 그리움, 극복. 이 단계가 진행되는 사이에 흥미를 끄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극적이고 감동적인 엔딩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계속 생각이 나는 걸까?
개인적으로 <로봇 드림>이 가진 가장 큰 힘은 ‘공감’인 것 같다. 극 중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들고 이별하고, 또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는 도그와 로봇처럼 우리 또한 다양한 관계를 만들고 관계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나면 언젠가 내가 겪었던 만남과 이별의 경험이 하나쯤 떠오를 것이다.
관계라는 건 삶에 행복과 즐거움을 선물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좌절과 슬픔을 선물하기도 한다. 특히 긴밀하고 소중한 관계일수록 큰 행복과 큰 슬픔을 함께 느끼게 된다. 소중한 관계에 변화가 찾아오면 그에 얽힌 시간과 감정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 같고, 관계에 실패한 것 같다는 생각에 허망함이 밀려오기 마련이다.
어떠한 관계든 완전하고 영원할 수 없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관계는 언제든 변할 수 있다. 관계에 변화가 일어났다고 해서 그것을 ‘실패한 관계’라고 정의할 순 없다. 극 중에서 도그와 로봇은 해변가 출입 제한으로 인해 이별하게 된다. 그리고 몇 가지 우연의 개입으로 다시 만나기엔 너무 애매한 관계로 변한다. 그럼에도 도그와 로봇은 이별에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현재 우리가 다른 곳에 서있다 하더라도 함께한 시간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를 아름답게 기억하며 관계의 변화를 받아들인다.
로봇의 팔 사이에 둥지를 튼 새 가족과 로봇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해변가에 누워있는 로봇의 팔 틈으로 작은 새가 한 마리 날아든다. 새는 로봇의 몸통과 팔 사이 틈에 둥지를 짓고 알을 낳는다. 로봇은 단단하고 무거운 몸으로 새 가족을 바람과 다른 위협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새 가족은 로봇의 작은 즐거움이 된다. 그런데 아기 새들이 다 자라자 이 관계도 변화를 맞이한다. 새 가족은 작아진 둥지를 떠나고 로봇은 그 자리에 남겨진다. 로봇과 새 가족은 이별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추억이 사라지거나 가치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막내 아기 새는 로봇과 함께한 첫 날갯짓의 순간을 기억할 것이고 로봇은 얼굴을 감싸 안던 아기 새의 작은 날개를 기억할 것이다.
나의 일부가 된 우리의 추억
로봇의 몸 안에 있는 두 개의 최애곡 테이프
로봇은 도그를 통해 세상에 태어났고 그와 함께하며 많은 것을 배운다. 지하철 타는 법, 발로 드럼 박자를 따라 하는 법, 친구의 손을 잡는 법, 스케이트를 타는 법. 그리고 도그의 최애 곡인 September에 춤을 추는 방법까지. 이제 도그는 로봇의 곁에 없지만 로봇의 몸과 마음은 도그가 알려준 모든 걸 기억하고 있다. 도그는 여러 부품을 이용해 로봇의 몸을, 여러 경험을 통해 로봇의 마음을 만들어주었고 도그가 준 것들은 로봇의 일부가 된다.
로봇도 도그에게 준 것이 있다. 로봇은 도그의 외로움을 달래주었고 친구와 함께하는 일상을 선물했다. 그리고 도그에게 ‘로봇에겐 방수 기능과 기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도그는 방수 기능이 있음을 확인하고 새 로봇 틴을 들였고, 틴과 함께 해변에 갔을 땐 기름을 부어주며 틴을 챙기는 모습을 보인다. 좀 웃기고 슬픈 예시지만 도그도 로봇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웠고, 그 지식은 도그의 일부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로봇의 두 번째 친구가 된 파스칼은 로봇에게 새로운 몸통과 다리. 그리고 새로운 노래와 지식을 선물한다. 로봇은 파스칼과 함께 도그와는 하지 않았던 청소와 요리를 하고 파스칼의 최애곡에 맞춰 춤추는 법을 익힌다. 로봇의 새로운 몸 안엔 도그의 최애곡, 파스칼의 최애곡이 담긴 테이프가 들어있다. 이는 로봇이 도그와 파스칼 두 사람이 로봇의 일부를 만든 사람이라는 뜻이 될 수도 있고, 로봇이 두 사람 모두를 마음속에 품고 살아간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사라졌어도 잊히지 않는 것
영화 속에 나오는 쌍둥이 빌딩 / 세계무역센터
<로봇 드림>은 시간적 배경인 80년대, 그 시절의 노래와 그 시절의 도시 풍경을 그대로 잘 담아냈는데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쌍둥이 빌딩(세계무역센터)다. 뉴욕의 랜드마크로 유명했던 이 빌딩은 2001년 테러 이후 일부 흔적만 남기고 붕괴됐다. 이젠 실존하지 않지만 영화와 누군가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그 건물은 그 시절에 대한 향수와 아련함을 불러오기도 하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 추억을 뜻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도그와 로봇은 이별을 받아들였고 둘의 관계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둘 사이의 친구라는 관계는 사라졌어도 함께 만든 우정과 기억은 언제나 둘의 마음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로봇 드림>속에 나오는 누군가의 기억 속 쌍둥이 빌딩의 존재처럼 말이다.
아름답지만 슬프게 느껴지는 우정
각자 다르게 느낀 추억의 무게감, 혼자선 작동할 수 없는 로봇과 로봇의 주인 도그
도그와 로봇의 추억은 아름답다. 이들의 우정이 전하는 메시지 또한 아름답고 의미가 있다. 그런데 도그와 로봇의 마지막을 계속 생각하다 보니 문득, 이 둘의 관계가 조금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둘의 인연은 도그가 로봇을 구매하고 그를 조립하며 시작된다. 도그와 로봇은 친구로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어쨌든 둘은 소유자와 소유물의 관계다. 그리고 로봇은 누군가 선택하고 전원을 켜줘야만 작동할 수 있고 로봇에겐 도그밖에 없다. 하지만 도그에겐 새로운 로봇이라는 선택지가 있다.
도그가 로봇을 해변가에 두고 온 후, 로봇은 그 자리에 누워 도그에게 가는 꿈을 꾸고 도그를 기다린다. 도그도 오랫동안 로봇을 그리워하고 그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새로운 친구를 만나려 노력하고, 덕과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리고 덕과 이별한 후 더 깊은 외로움을 느끼게 된 도그는 새로운 로봇 틴을 친구로 맞이한다.
조금 잔인하게 표현하자면, 도그와 로봇은 같은 시간을 공유했지만, 각자가 느낀 추억의 무게감은 달랐던 것 같다. 둘 다 이별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도그는 자의적으로 새로운 친구를 만들며 이별을 극복, 수용했고, 로봇은 파스칼과 함께하면서도 계속 도그를 생각했지만 다른 로봇과 함께 있는 도그의 모습을 보고 이별을 수용하게 된 느낌을 받았다.
이런 점 때문에도 이 영화가 계속 생각나는 건가 싶다. 아름답고 따뜻하지만 한편으로는 슬픈 이야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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