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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Mar 31. 2024

연약한 인간이 악에 맞서야 하는 이유

영화 <검은 사제들> 리뷰, 해석 / 오컬트, 장재현 감독 영화 추천


검은 사제들 (The Priests, 2015)

연약한 인간이 악에 맞서야 하는 이유


개봉일 : 2015.11.05.

관람등급 : 15세 관람가

장르 : 미스터리

러닝타임 : 108분

감독 : 장재현

출연 : 김윤석, 강동원, 박소담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없음


나는 믿는 종교가 없어 종교에 대해 잘 모른다. 영적 존재는 조금만 믿을 뿐 그들의 존재를 확신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장재현 감독이 만든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그 안에 나온 종교와 존재들을 온 마음을 다해 믿게 된다.


<검은 사제들>은 장재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나의 본격 오컬트 입문작이기도 하다. <검은 사제들>을 보기 전까지 내가 아는 오컬트는 <엑소시스트>나 <인시디어스 시리즈> 뿐이었다. 지금보다 영화를 보는 눈이 좁기도 했고 오컬트 장르를 무서운 악령이 나오는 영화 정도로만 생각했기에 딱히 이 장르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검은 사제들>을 본 후 나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장재현 감독이 <검은 사제들>속에 심어놓은 작은 종교의 흔적들이 나에게 큰 흥밋거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난 그제야 오컬트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게 됐고 종교적 의미, 비밀스러운 현상들에 대한 궁금증을 품기 시작했다. 오컬트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지식과 죄와 회개, 환영과 깨달음을 탐구하는 과학이라고 한다. 그냥 무서운 악령, 귀신들이 나오면 다 오컬트인 줄 알고 살았는데… 정말 모르고 살았다 싶었다.



공포, 악령, 구마 의식이 전부가 아닌 영화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것들에 대하여


<검은 사제들>은 위에 말한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가 등장하는 오컬트 장르의 영화이자 세상의 가장 구석진 곳에 숨어있는 어두운 곳을 들여다보는 영화다.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한 후 의문의 증상에 시달리는 한 소녀와 그를 구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는 김 신부, 어쩌다 선택된 신학생 최 부제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세 사람은 알 수 없는 힘을 마주하고 이겨내기 위해 소녀가 누워있는 어둡고 좁은 방 안에 모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사명감을 등에 업고 위험한 일을 시작한다.


영화의 포스터와 시놉시스만 보면 구마 의식, 악령의 존재가 <검은 사제들>의 중심 소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공포가 아닌 죄, 회개, 깨달음, 인류애. 그리고 이것들을 느끼고 받아들일 준비가 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검은 사제들>은 공포와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서 인간이라면 관심을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영화다.


<검은 사제들>속 세상은 크게 ‘넓고 밝은 곳’, ‘어둡고 좁고 위험한 곳’으로 나뉘며 인물들의 경우는 크게 ‘악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 ‘악의 존재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사람’, ‘악의 존재를 알기에 직접 어두운 곳으로 뛰어드는 사람’으로 나뉜다. 주인공 김 신부와 최 부제는 가장 후자에 속한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알면서도 인정해 주지 않는 가장 위험한 일에 사명감을 느끼는 그런 사람. 김 신부와 최 부제는 홀로 남겨진 이를 무시하고 도망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위험에 뛰어든다. <검은 사제들>은 이들이 가진 사명감과 용기, 그리고 그 뒤에 숨어있는 죄의식, 성장 과정을 함께 보여준다.



거대한 악 앞에서 인간이 해야 할 선택


주인공 김 신부는 모두가 포기한 한 소녀에게 매달리고 있는 신부다. 교단의 다른 종교인들은 가톨릭이 현대적 이미지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요즘 같은 시대에 무슨 구마 의식이냐, 걔(소녀)도 그냥 정신과 진료하고 약 좀 먹이면 나을 거다.. 등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김 신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녀가 이상한 말을 늘어놓고 병원에서 뛰어내리는 사건까지 발생하며 김 신부는 교단의 흠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구마 의식을 함께했던 보조 사제들은 모두 도망가고 교단은 더 이상 힘을 싫어주지 않고, 소녀의 몸 상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김 신부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던 순간, 그의 앞에 신학생 최 부제가 나타난다. 김 신부와 최 부제 모두 서로를 원한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둘은 파트너가 된다.


두 사람은 죽이 잘 맞는 파트너는 아니었다. 최 부제는 악령의 존재와 김 신부를 믿지 못하고 김 신부는 최 부제가 이 상황을 버틸 수 있을지 믿지 못한다. 김 신부는 마치 최 부제를 테스트하려는 듯 최 부제의 죄의식과 슬픔을 쿡쿡 쑤셔대는데 그 덕에 최 부제는 김 신부를 더욱 믿지 못하게 돼버린다. 반대로 김 신부는 그 대화를 통해 최 부제의 담대함과 죄의식, 사명감을 느끼고 그가 곤경에 빠진 이를 두고 도망쳐버릴 사람이 아니란 걸 직감한다. 그리고 김 신부의 직감은 딱 맞아떨어진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김 신부와 최 부제는 함께 하나의 선을 넘어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어두운 곳에서 모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거대한 악령에 맞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구한다. 그리고 이는 소녀의 목숨을 구했다는 것을 넘어서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녀의 몸에 들어간 악령은 기근, 역병, 전쟁 등을 일으키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실제로 인간들은 이러한 어려운 시기들을 겪어왔고 함께 도우며 오랜 시간 이 사회를 일구고 이어왔다.


만약 기근, 역병, 전쟁 같은 큰 재앙 앞에서 인간들이 서로를 돕지 않고 각자의 삶만을 위해 살아왔다면 지금의 사회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다. 우리나라로 예를 들자면 멀지 않은 시기에 6.25 전쟁이나 일제 강점기, IMF 등 거의 재앙 같았던 큰 사건들을 겪고, 많은 국민들이 힘을 합쳐 극복해낸 사례가 있지 않은가. 하나의 인간은 짐승을 이길만큼 몸집이 크거나 힘이 세지도 않고 초자연적인 현상 앞에서 무력해지기 쉽지만 함께 마음을 모아 서로를 구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영화의 후반부, 다시 돌아온 최 부제에게 김 신부는 이렇게 말한다. “짐승은 절대 자기보다 큰 놈한테 덤비지 않아. 그리고 악도 언제나 그런 식으로 우리를 절망시키지. 니들도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그런데 신은 인간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어.” 그리고 돌아올 사람은 돌아오게 되어있다고도 말한다. 김 신부는 최 부제와 고깃집에서 나눈 대화를 통해 최 부제가 죄의식과 사명감을 충분히 가진 사람임을 눈치채고 그가 커다란 악 앞에서도 도망가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었던 것 같다.



한쪽이 깨진 안경과 3D 안경, 악을 외면하는 인물들


극 중에는 김 신부, 최 부제와 대비되는 인물들이 있다. 그건 바로 김 신부를 제외한 다른 종교인들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다른 종교인들은 12형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도 그게 어떻게 한국에 있겠냐고, 소녀의 문제는 그저 정신적인 문제일 것이라며 모르는 척한다. 심지어 김 신부의 부탁을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하며 수급에 문제가 생겼음에도 대충 넘기려고 한다.


영화에 나오는 김 신부의 한쪽이 깨진 안경과 3D 안경은 이러한 두 집단의 시선 차이를 보여준다. 김 신부는 투명한 렌즈가 껴진 안경처럼 투명한 시선으로 영적 존재를 보고 몰아내려 하지만 외압으로 인해 여러 면에서 타격을 입는다. 안경은 이 상황과 김 신부의 상태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김 신부의 안경은 한쪽에 금이 가있다. 하지만 안경테와 남은 한쪽 안경알은 여전히 깔끔한 모습으로 안경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성추행범으로 의심받고 교단에서의 지위를 잃었음에도 여전히 신부로서 소중한 이를 구해내기 위해 꿋꿋이 버티고 있는 김 신부의 모습을 표현하는듯하다.


반대로 최 부제가 김 신부의 지시를 받고 성당에 찾아가는 장면, 다른 종교인들은 어두운 렌즈가 껴진 3D 안경을 쓰고 있다. 그들은 안경을 쓰고 3D 영상을 구경하느라 최 부제가 온 것조차 모른다. 3D 안경은 바로 눈앞에 벌어진 영적 사건에 관심을 갖지 않고 김 신부가 이상한 짓을 하는 거라며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이들의 심리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구마 의식이자 회개, 성장의 과정


최 부제에겐 오래된 죄의식이 하나 있다. 그는 아주 어릴 적 여동생과 함께 길을 나섰다 커다란 개를 만난다. 개는 최 부제보다 덩치가 작은 여동생에게 달려들었고 겁이 난 최 부제는 개에게 맞서지 못한다. 여동생은 그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었고 이는 평생 최 부제를 괴롭혀왔다. 소중한 이가 위험에 빠졌을 때 그를 돕지 못하고 도망 쳐버린 죄책감, 무력감. 누구도 최 부제가 죄를 지었다고 손가락질할 수 없는 갑작스러운 사고였지만 그는 여전히 사고 당시의 죄책감을 안고 있다.


구마 의식을 진행하던 중 공포감을 이기지 못한 최 부제는 밝은 거리로 뛰쳐나간다. 그리고 한 어두운 골목에서 어린 자신과 여동생의 모습을 본다. 어린 최 부제의 발엔 신발 한 짝이, 현재 최 부제의 발엔 신발이 남아있지 않다. 최 부제는 이때 깨닫는다. 위험에 빠진 이를 도망친다는 건 신발과 함께 무언가를 잃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홀로 살아남아 맨발로 걸어간다 한들 그 길이 평온할 리가 없다는 것을.


소녀에게서 악령을 몰아내는 일은 소녀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최 부제가 회개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최 부제는 소녀 안의 악령과 맞서며 죄의식의 일부를 씻어냄과 동시에 종교인에게 주어지는 사명감을 받아들이게 된다.



<검은 사제들>은 가장 어둡고 위험한 곳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는 날이 온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밝아지지 않을까. 꼭 이들처럼 종교인이 되어 악령과 싸우라는 뜻은 아니다. 세상엔 악령이 아니더라도 어두운 존재들이 정말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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