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완벽하지 않아> 리뷰, 해석 / 신작, 저스틴 H.민
개봉일 : 2024.04.01. (NETFLIX)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코미디
러닝타임 : 92분
감독 : 랜들 박
출연 : 저스틴 H. 민, 셰리 콜라, 앨리 마키, 타비 게빈슨, 데비 라이언, 소노야 미즈노, 티머시 사이먼스, 제이컵 배털론, 테오 아이어, 스콧 시스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사람들은 보통 세상은 내가 생각한 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가끔, 세상을 필요 이상의 시니컬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세상이 내가 생각한 그대로 나쁘게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세상은 공평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다.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수많은 편견과 혐오가 있고 우리는 서로를 사랑으로 감싸줄만한 여유 따윈 없는 바쁜 인생을 살아간다. 그래도 ‘아직은 살만하다’, ‘이것 덕분에, 누구 덕분에 살맛 난다.’ 같은 필터를 끼고 바라보다 보면 즐거운 것,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하나쯤은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의 단점에만 집중한 채 피해의식과 열등감을 품고 살아간다면 나의 행복, 자존감을 찾기가 굉장히 어려워진다.
영화 <완벽하지 않아>는 따사로운 햇살과 밝은 분위기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도시,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살고 있는 청년 벤의 이야기다. 영화를 사랑하는 그는 독립 영화관 매니저로 일하며 6년 된 여자친구 미코와 아슬아슬하게 관계를 이어간다. 두 사람은 영화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추구하는 영화 취향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다. 밝고 도전적인 성격을 가진 미코와 반대로 벤은 필요 이상으로 시니컬한 성격을 가졌다. 사소한 문제로 다투던 두 사람은 미코의 인턴십을 이유로 잠시 시간을 갖게 되고 벤은 그 시간 동안 나름 새로운 시도를 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제대로 플리는 게 하나도 없다.
배우의 매력만 기억나는 영화
영화 <완벽하지 않아>는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남자 벤을 앞세워 진행된다. 그는 시대에 걸맞지 않은 차별 발언을 날리거나 순간의 감정에 휘둘려 실수를 하기도 한다. 영화는 밉상 그 자체인 이 남자의 안에 들어있는 콤플렉스를 은은히 내보이며 옅은 공감과 애처로움을 불러일으킨다.
러닝타임이 짧아 가볍게 볼 수 있고, 폭력성도 없고, 주제도 나름 공감되고 나쁘지 않고, 출연진 구성도 재밌다. 그런데 아쉬운 건, 강렬하게 각인되는 장면이 없다는 거다. 무난하고 시간이 아깝지 않은 영화. 딱 그 정도, 범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뇌리에 강렬하게 남은 건 저스틴 H. 민 배우의 안광과 웃음뿐이다.)
세상을 비뚤게 보는 열등감 덩어리
하지만 밉기보단 애잔한 남자
벤은 쉬지 않고 누군가를 평가하고 세상을 비뚤게 바라본다. 조금 순화해서 말하면 시니컬한 편이고 까놓고 말하면 열등감 덩어리다.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그는 피부색으로 타인을 판단하거나 자신을 낮춘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 영화가 아닌, 자본주의를 주입시키는 상업 영화를 폄하한다. 벤이 늘어놓는 온갖 말도 안 되는 투덜거림에 지친 사람들은 그의 곁을 떠난다. 벤은 밉상 캐릭터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그 발언 자체엔 공감을 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를 계속 지켜보고 있으니 나와 비슷한 점이 보이기도 하고.. 슬슬 애잔함이 피어오른다.
꿈의 언저리에 머물러있는 벤과 앞으로 나아가는 미코
벤은 영화를 배우기 위해 학교에 입학했으나 2년 후 자퇴해 사비를 털어 영화를 만들려 했으나 쫄딱 망하고 만다. 그는 독립 영화관의 매니저로 일하며 꿈의 언저리에 머물러있다. DVD를 소장하고 여러 번 돌려보는 걸 보면 그가 여전히 영화를 사랑하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이미 실패를 맛봤기에 다시 영화를 제작하려 도전하기보단 안전한 현재의 삶에 안주하고 있는듯하다.
그런데 여자친구 미코는 벤과 다르게 앞으로 나아간다. 벤은 미코와 함께 그녀가 기획/제작에 참여한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영화제에 간다. 기립박수를 치는 관객들과 고양된 미코의 동료들 사이에서 벤은 어색한 칭찬 몇 마디만 늘어놓을 뿐이다. 영화는 한 펜트하우스의 백인 지배인에게 동양인이라 무시당한 주인공과 그녀의 남편이 엄청난 재력을 이용해 펜트하우스를 사들이며 끝난다. 미코는 이 영화가 사람들이 원하던 메시지를 담은 영화라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벤은 이건 요란한 주류 영화이자 물질 만능주의를 부추기는 영화일 뿐, 진짜 영화가 아니라고 툴툴댄다.
벤이 말 하는 좋은 영화는 ‘결점 있는 인물이 있는’ 영화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잘난 사람으로 가득한 영화가 아닌 인간미 있는 영화. 벤의 기준으로 보면 <완벽하지 않아>는 좋은 영화에 속하려나?. 아무튼, 이 결점 있는 인물 벤은 내내 툴툴대기를 반복한다. 벤에게 지친 미코는 인턴십에 붙었다는 거짓말을 하고 벤이 가장 싫어하는 도시 뉴욕으로 떠난다.
모든 게 싫고, 의심스러운 벤
그의 열등감은 어디서 왔을까
벤은 싫어하는 것도, 화를 내는 포인트도 참 많다. 주류 영화는 끊임없는 가식이라 싫고, 운전 중에 누군가 끼어들면 그가 생각 없는 기득권층일 거라는 예감이 들어 화가 나고, 이상한 예술병에 빠진 사람은 감당할 수가 없어 싫고, 누군가 나를 쳐다보면 유색 인종 남자라고 욕하는 것 같아서 신경이 쓰인다.
벤의 분노는 열등감으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벤은 미국에서 태어났고 미국에서 자랐다. 국적 또한 미국이다. 하지만 아시안의 피를 물려받았기에 그는 쉽게 일본, 한국인으로 오해받는다. 미코의 새로운 연인 또한 벤을 보자마자 일본어로 말을 걸고 태극권으로 혹시 모를 벤의 공격을 막아내려 한다. 미코와 앨리스 등 다른 인물들은 요즘 같은 세상에 인종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어딨냐며 벤을 나무라지만 세상엔 편견 없는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다. 영화에 나오지 않았을 뿐 벤은 크고 작은 차별을 받으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가 지나가듯 학교에서 나는 유일한 유색 인종이었다고 하는 대사가 있는데, 이러한 사회에서 그가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았을 확률은 0에 가깝다.
물론 같은 유색인종인 미코와 앨리스도 차별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지만, 벤과는 다르게 그것을 잘 극복하고 성장한 케이스다. 미코는 새로운 것(상업 영화, 모델)에 도전하고 앨리스는 연애에 실패한 후에도 “나한테 뭔가 문제가 있는 거겠지?”라고 물으며 자신의 문제나 약점을 인식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벤은 자신의 문제, 상처를 살펴보거나 인정하지 못한다. 그렇게 쌓인 상처들은 회복되지 못하고 쌓이고 쌓여 커다란 열등감이 되었을 것이다. 열등감은 자존감을 떨어트리고, 자존감 하락은 분노를 불러온다. 누군가 그냥 쳐다보기만 해도 "왜 쳐다봐? 내가 유색인종이라?”하는 생각이 치고 올라온다. 이러한 열등감과 분노는 또 다른 편협한 사고를 불러오고 벤을 툴툴대는 밉상으로 만들어버린다.
벤에겐 또 다른 열등감이 하나 더 있다. 그가 영화 학교를 포기하고 영화 제작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는 차세대 에릭 로메르 감독을 꿈꾸며 학교에 들어갔지만 2학년까지 공부하다 자퇴를 했다. 그리고 지인과 대출을 총동원해 영화를 제작하려 했지만 실패한다. 벤은 이 이야기를 하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 난 그냥 벤 타가와라는 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말만 그렇게 할 뿐, 그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사랑하지도 못한다.
벤이 어떤 서사를 가졌든 그가 언급했던 여러 차별적인 발언이 옳은 것이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벤이 가진 불안감과 열등감 자체엔 어느 정도 공감이 갔기에 그를 마냥 미워할 수 없었다. 나도 내 안의 열등감과 분노를 풀기 위해 엄한 곳에 화를 내고 날카롭게 행동했던 적이 있으니까. 또 방법은 서툴지만 나름 노력하며 농담도 던지고 사람들 사이에 섞이려는 그의 모습, 작은 관심에도 기대하고 실망하는 그의 모습이 너무 애처롭기도 했고.
벤은 변화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미코를 잡으려 달려간 길, 벤은 행복해 보이는 미코를 보고 무언가를 깨달은 듯 비행기를 탄다. 그리고 비행기에서 자신이 그토록 맘에 안 들어 했던 미코가 참여한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를 발견한다.
벤은 그 할머니를 보며 지금껏 자신이 세워온 날카로운 기준이 무너졌음을 느꼈을 것이다. 벤은 열등감과 분노를 바탕으로 냉정하고 엄격하게 세상과 사람들을 평가했으며 자신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들은 모두 거부했다. 멋진 예술, 독립영화가 아닌 상업영화를 싫어했고 괴상한 예술을 하는 어텀에게 거부감을 느꼈고 앨리스를 따라갔던 게이 파티에선 어색함을 견디지 못했다. 그리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뉴욕을 거품만 낀 도시라며 비난한다. 하지만 그가 별로라고 했던 영화는 누군가에겐 감동적인 영화가 됐고, 미코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매력적인 모델이 됐다. 어텀은 친구들과 사람들을 불러 오래 준비한 예술 작품(변기 사진)을 발표하며 박수를 받았다.. 벤이 진지하지 못한 연애를 한다고 한마디 했던 앨리스는 뉴욕에서 새로운 연인을 만나 함께 살림을 차린다. 그리고 그가 왜 쳐다보는 거냐며 열을 냈던 남자는 그가 유색인종이라 쳐다본 게 아니라 그를 알고 있는 미코의 친구였기 때문이었고 미코의 새 남자친구는 백인이 아니었다.
벤이 함부로 내렸던 평가들은 대부분 빗나갔고 남은 건 사회적 고립과 이별뿐이다. 나는 이 짧은 여정과 이별을 통해 그가 무언가를 느꼈으리라 믿고 싶다. 허탈감 그 이상의 깨달음을 말이다. 그래도 벤의 곁엔 아직 그를 믿는 친구 앨리스가 남아있으니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영화는 벤이 어떤 깨달음을 겪고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 보여주지 않지만 나는 그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만약 벤이 변하지 못할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든 엔딩이라면 이 남자가 너무 애처로워서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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