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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Jun 25. 2024

과거의 약속 위에 간절함을 덧칠해 복원해낸 사랑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리뷰, 해석 / 일본 로맨스 멜로 영화

주요 내용

-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소개, 줄거리

- 자전거 체인을 감는 준세이

- 미술품 복원가라는 직업의 의미

- 조반나 선생의 작품 훼손, 죽음의 의미

- 과거와 현재의 결실

냉정과 열정 사이 (Twist Calm&Passion, 2003)

과거의 약속 위에 간절함을 덧칠해 복원해낸 사랑

개봉일 : 2003.10.10.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멜로, 로맨스, 드라마

러닝타임 : 124분

감독 : 나카에 이사무

출연 : 다케노우치 유타카, 진혜림, 유스케 산타마리아, 시노하라 료코

개인적인 평점 : 4.5 / 5

쿠키 영상 : 없음


우리가 시간이란 개념을 인식하기도 전부터 시간은 항상 흘러왔다.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쉼없이 흐르는 시간은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아주 천천히 무언가를 훼손시키기도 한다. <냉정과 열정 사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훼손되고 잊혀야 했을 옛사랑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 미술품 복원가의 사랑 이야기다.


피렌체는 수많은 예술품과 고건물들로 가득한 시간이 멈춘 도시다. 이 아름다운 도시의 광장에서 수많은 연인들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 시간이 지나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피렌체처럼 우리의 사랑도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기를 소원하면서. 그런데 유형물이든 무형물이든, 오래도록 그 모습을 유지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1966년, 홍수로 인해 아르노 강이 범람하고 피렌체는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 수많은 예술 작품들이 물에 잠겨 손상되었고 사람들은 이를 복원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학습했다. 사람들의 노력 끝에 도시는 예전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조금씩 되찾게 된다.


주인공 준세이는 피렌체가 가진 복원 기술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결심한 학생이다. 그는 현재 피렌체의 한 공방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기술을 배우고 있다. 준세이는 비틀비틀 서툰 실력으로 자전거 탄 채 낯선 도시를 가로지른다. 시간이 지나며 그의 자전거 실력이 안정되고 이동 수단이 더 빠르고 안정적인 스쿠터로 바뀔 때쯤. 옛사랑과의 만남, 작품 훼손과 공방 폐쇄 등 큰 사건이 연달아 터지고 그는 일본으로 돌아가게 된다.

일본은 준세이의 고향이자 잊지 못할 옛사랑과의 추억이 담긴 곳이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추억을 되새기며 옛사랑에게 편지를 쓴다. 준세이는 이번 편지를 마지막으로 그녀를 잊으려 했으나 결코 잊을 수 없었고, 이별의 비밀과 오해를 알게 된 후 10년 전 그녀와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피렌체로 향하게 된다.

엇나간 시간의 체인을 다시 감다


준세이와 아오이는 잘 맞는 한 쌍이었다. 두 사람은 자연히 10년 뒤를 약속할 만큼 서로를 사랑했다. 하지만 준세이의 아버지가 둘 사이에 난입한 것을 시작으로 두 사람의 관계엔 오해와 갈등이 생겼고 결국 헤어지게 된다. 아오이는 비밀을 그대로 간직한 채 고향 밀라노로 떠나고 준세이는 오랜 시간이 지나 피렌체에서 다시 돌아왔을 때, 과거 아오이가 겪었던 일을 알게 된다.


극 중엔 준세이가 복원 일을 하며 피렌체에 머물 때,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한 아오이가 성당 근처 골목에서 엇나간 자전거 체인을 다시 감고 있는 준세이를 목격하는 장면이 있다. 현재 두 사람의 관계는 엇나간 체인 때문에 멈춰 선 자전거와 비슷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문제없이 잘 굴러가고 있었으나 어떠한 충격(아버지의 개입)으로 체인이 풀려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결국 체인이 빠져버리고 체인이 빠져 더 이상 페달을 밟을 수 없는 자전거처럼 둘의 관계 또한 그 자리에 멈춰버린다. 준세이는 자전거의 체인을 새롭게 감았던 것처럼 두 사람의 관계도 다시 감기위해 노력한다.

미술품 복원가라는 직업의 의미, 과거를 붙잡으려는 준세이


미술품을 복원하는 것은 단순히 그림을 복원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 안에 담긴 시간, 그때 작가가 느꼈던 마음을 모두 되살리는 일이다. 전공을 뒤로하고 이 일을 선택한 준세이는 훼손된 미술품과 사랑을 복원하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준세이에겐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이름이 있다. 아오이.

1990년, 19살의 나이에 만난 두 사람은 꽤 오래 연인 관계를 이어왔으나 타인으로 인해 생긴 오해 때문에 이별을 하게 된다. 오해를 풀 틈도 없이 아오이는 고향인 밀라노로 돌아가고 준세이는 일본에 남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준세이도 일본을 떠나 피렌체에서 미술품 복원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이젠 서로가 어디에 있는지도 물을 수도 없고 더이상 만날 일도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준세이의 맘속엔 항상 '아오이'란 이름이 박혀있다.


그는 3년간 인턴으로 근무하며 일을 배웠고 나이는 어느새 26살이 되었다. 준세이는 출장차 피렌체에 온 친구 타카시를 통해 아오이가 밀라노의 한 주얼리샵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일주일쯤 지난 아오이의 생일을 핑계로 그녀에게 잘 어울릴 주얼리를 하나 골라 파티장으로 향한다. 하지만 아오이는 과거와 달라져있었다.

그녀는 새로운 남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고, 화려한 옷을 입은 채 수많은 사람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준세이와 사귈 땐 수수한 옷을 입고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곤 했는데.. 지금 준세이 앞에 서있는 아오이는 그때의 아오이와는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아오이는 준세이를 남자친구 마빈과 함께 사는 집에 초대한다. 마빈은 준세이 할아버지의 작품을 주제로 준세이와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하지만 준세이는 이 상황이 불편하기만 하다. 오랜만의 재회는 결국 싸움으로 마무리되고 연이어 미술품 훼손 사건이 터지며 준세이는 모든 걸 포기하고 일본으로 돌아가게 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무너져가는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아야 한다
조반나 선생의 작품 훼손, 죽음의 의미


일본은 준세이와 아오이의 과거가 남아있는 곳이다. 준세이의 집, 자주 갔던 중고 레코드 가게, 아오이가 일했던 미술관, 함께 첼로 연주를 들었던 강당 앞 벤치. 곳곳에 두 사람이 함께한 추억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추억이 담긴 장소들은 하나둘 변화를 맞이한다. 늘 갔던 커피숍은 새 건물이 되었고 중고 레코드 가게는 다른 곳으로 이전했고 강당 앞 계단에서 첼로를 연주하던 학생도 없어졌다. 이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고, 예전의 우리를 아무리 그리워해도 돌아오는 것은 없다.


"과거를 되살리는 게 아니라 미래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현재를 살아야 돼."

"여기 사람들은 과거에 살아. 아무리 복원해도 무너져가지."

공방이 폐쇄되고 긴 여행을 떠나기 전, 조반나 선생은 준세이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조반나 선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추측된다. 첫 번째는 준세이의 재능을 보며 자신의 능력적 한계를 깨닫고 느끼게 된 자괴감(그녀가 능력의 한계를 느꼈다는 건 공방의 동료의 말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그녀는 현재가 아닌 과거만을 사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조반나 선생은 숙련된 미술품 복원가이자 준세이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녀가 준세이에게 직접적으로 성애적 감정을 나타내는 장면은 없지만 준세이와 조반나가 함께한 신들을 보면 조반나가 준세이를 이성적으로 또는 하나의 피사체로서 애정 했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위치를 고려하면 조반나는 현재에 살아있는 준세이가 아닌 과거로 남은 그림 속 준세이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상황을 비관한 조반나는 준세이가 복원 중이었던 치골리 작품을 훼손하고 자살한다. 그녀는 무너진 과거와 함께 매몰된다.


준세이는 조반나 선생과 다른 길을 걷는다. 그는 조반나 선생의 작품 훼손, 아오이와의 이별 같은 실패를 경험했지만 그에 비관하지 않는다. 준세이는 과거가 가득한 일본을 떠나 다시 피렌체로 돌아와 과거를 극복하는 새로운 현재를 살아간다. 그 결과 새로운 치골리의 작품과 아오이와의 관계를 복원하는데 성공한다.

현재의 기반이 되어주는 과거


조반나 선생은 과거를 '무너져 가는 것'이라 표현했지만 사실 과거는 무너지고, 지나간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


극 중엔 준세이와 아오이가 대학에 다니던 때, 학교 강당 앞 계단에서 매일 같이 첼로를 켜던 학생이 나온다. 준세이는 그는 매일 같은 곡을 연주했고 꼭 같은 구간에서 실수를 했었다며 추억을 회상한다. 매일 해도 매일 똑같이 틀리다니. 화가 나고 절망할 만도 하지만 그는 같은 구간을 틀렸던 어제에 붙잡히거나 절망하지 않고 더 나아질 오늘과 내일을 꿈꾸며 매일 연습을 반복한다. 그렇게 틀린 부분을 다시 연주했던 과거들이 모이고 모여 10년이란 시간이 지났을 때, 그 학생은 여러 도시를 투어하는 첼리스트가 되었고 더 이상 그 구간을 틀리지 않는다.


준세이는 과거와 과거에 했던 약속(10년 뒤 두오모)을 통해 현재를 살아간다. 그는 과거가 남긴 아름다운 밑그림 위에 새로운 물감을 덧칠해 미술품을 복원하고 과거에 남겨둔 아오이와의 약속(10년 뒤 두오모에서 만나자)에 간절한 마음을 끝없이 덧칠하며 사랑을 복원해간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가 만나 완성된 결실은 꽤 알차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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