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한 소년의 마음을 지키기 위한 각자의 마음속 ‘파수꾼’ (2011)
개봉일 : 2011년 3월 3일
감독 : 윤성현
출연 : 이제훈, 박정민, 서준영, 조성하, 이초희 외...
연약한 소년의 마음을 지키기 위한 각자의 마음속 ‘파수꾼’
몇 번을 보아도 참 묘하고도 현실적인 영화다.
영화를 처음 본 고등학생 시절, 왜 영화의 이름이 파수꾼일까 생각했었다. 파수꾼이라 하면 무언가를 지키는 사람이 아닌가, 이 영화에서 나오는 사람들 중 자신을 온전히 지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이해하기 힘들었던 의문들이 사그라들고 시간이 흘러 나는 기억 속에 묻혀있던 이 영화를 다시 꺼내보았고 나는 미간을 마음 편히 펴지 못한 채 ‘기태’, ‘동윤’, ‘희준’을 바라보며 117분을 보냈다. 그와 동시에 갑자기 ‘내가 조금은 어른이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 시절, 내가 이 영화에 대해 온전히 공감하기 어려웠던 건 웃기게도 내가 기태와 같은 터널 속에 있는 여고생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시절 나는 기태와 다른 위태로움과 복잡함을 가진 또 다른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저 남자애들은 왜 저렇게 지질하게 싸우는 거야?’하고 이해하지 못한 또 다른 등장인물이었던 것이다. 지금에서야 ‘아, 학창시절에 저런 친구들이 있었지’하고 말할 수 있지만, 그때의 그 감정으로는 객관적인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이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학창시절을 단단한 마음으로 무난하게 보낸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으로 겪는 혼란의 시기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춘기란 것을 겪을 때면 부모님과의 대화보단 문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음료수를 마시며 온갖 수다를 떨어대는 것이 더 좋고, 혼자만의 비밀을 만들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자존심을 내세우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질풍노도의 시기. 절친이었던 기태, 동윤, 희준이의 각자의 고민과 오해, 자존심 등 온갖 감정들이 섞이며 오묘한 냄새가 풍긴다.
‘기태’, ‘동윤’, ‘희준’ 세 친구는 사춘기 남학생이다. 흔히 말하는 잘나가는 친구인듯한 ‘기태’ 학교에서 그는 인기가 많아 쉬는 시간이 되면 친구들과 온갖 이야기를 쏟아내며 거친 청춘의 언어들을 뱉어내며 우정을 다진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기태’는 극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 가장 감정적이며 이중적인 인물이다. ‘기태’라는 잘나가는 친구는 사춘기 남학생들 사이에서 흔히 말하는 ‘빽’이 될 수 있는 인물이면서도 친구인 동윤, 희준의 마음을 가리고 막을 수 있는 존재다.
기태는 무언가에 결핍을 느끼고 있기에 본인을 더욱 내세운다. 가정에서의 유대관계를 크게 갖지 못해서일까, 기태는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다소 거친 인물이다. 그는 대화를 통해 풀어가기보단 ‘아 왜~’, ‘뭐가~’, ‘됐다 그만하자’는 일방적인 소통 방법을 사용한다. 어쩌면 ‘강한 아이’처럼 보일 수 있는 그의 거친 어투와 날카로운 행동 때문인지 기태를 건드리는 것들은 크게 없었다. 기태의 그것은 무기가 되기도 하고, 기태의 모든 걸 잃게 만드는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희준에게 그런 기태는 비 오는 날 작은 우산을 쓰고 걷는 듯 어깨를 움츠리게 만드는 인물이다. 희준은 답답하고 작은 우산을 쓴 듯 불편해 보였고 둘 사이의 거리는 점점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친구라고 생각한 희준, 동윤과 나눠썼던 작은 우산의 밖으로 밀려난 기태는 비를 맞기 시작한다.
기태의 아킬레스건은 ‘외로움’과 ‘친구를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사춘기 아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기태의 전부는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이었을 것이다. 전부였던 관계를 지키기 위해 기태는 더욱 날을 세워 자신의 공간에 ‘우정’과 비슷한 그 무언가를 채워 넣으려 발버둥 치는 여린 존재였다.
'동윤'은 기태와 희준 사이에서 나름의 중심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나는 어른스러워’‘나는 괜찮아, 너의 말에 흔들리지 않아’하는 식의 자존심을 꼿꼿이 유지하는 ‘척’을 하는 불완전한 어른이자 주변인이다. 기태와 희준의 사이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할 때 동윤은 중재에 나선다. 기태를 뜯어말려보지만 선을 넘는 기태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동윤이 기태에게 완전히 등을 돌렸던 건 자신의 여자친구 ‘세정’을 험담하고, 그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세정의 모습을 보는 순간이었다. 동윤을 자극하듯 ‘너 세정이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마. 걔가..’하며 얘기를 꺼내는 기태에게 ‘나도 알아. 나도 그냥 즐기는 거야’ 어른스럽고 쿨한 척 한쪽 입꼬리를 올려 보인다. 하지만 불완전한 동윤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하고, 와르르 무너져내린 세정의 모습은 동윤에게 되돌릴 수 없는 상처가 된다.
불쾌한 소문의 근원지가 어디인진 중요하지 않다. 기태가 시작한 것이든 떠도는 이야기를 기태가 잡아끌어 동윤과 세정 앞에 갖다 놓은 것이든, 그건 상관없었다. 동윤은 그저 눈앞에 보이는 기태가 없어졌으면 했다. 동윤은 다른 이들의 말에 힘껏 어른인척했지만 정작 본인의 상처 앞에서는 순식간에 힘이 풀리는 어린아이였다.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는 기태에게 동윤은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고 기태는 ‘마지막 친구’라고 믿은 동윤마저 잃게 된다.
희준은 마치 주춧돌 같은 사람이다. 주춧돌은 건물의 기둥을 받쳐주는 돌인데, 묵직하게 기태를 받쳐주는 듯했지만, 희준과 기태의 관계가 뒤틀린 순간 기태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만다.
기태의 가정과는 다른 ‘평범한’ 가정에서 관심과 나름의 사랑을 받고 자라온 희준. 왠지 강박적이며 깔끔하고 직선적인 희준은 쉽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는다. 크게 화나 짜증을 내지도, 소리나 주먹을 질러버리는 스타일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의 눈빛은 숨기기 힘들다는 말이 있듯, 어린 희준의 눈빛엔 기태를 향한 마음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시작은 희준의 짝사랑 대상인 보경이 기태를 좋아한다는 것에서 나온 질투, 그 후엔 기태에 대한 거리감과 상하관계, 그것은 희준의 시야를 조금씩 좁혀갔다. 그리고 친구를 잃기 싫어 발버둥 치는 기태의 엇나간 표현법들에 지쳐 질투를 넘은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기태를 향해 쏘아대는 희준의 표정은 마치 완벽한 적을 대하는듯했다.
‘나 전학 가, 너 때문에’라는 한마디엔 모든 일의 시작은 기태였고 모든 잘못도 기태가, 엇나간 우정 또한 기태가 만들어낸 것이다.라며 뿌연 현실을 바라보는 희준의 마음이 너무도 투명히 드러나는듯했다. 그렇게 희준은 기태의 존재를 피해 전학까지 가게 된다.
뒤에 가서야 희준과 동윤은 기태를 용서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기태의 마음은 이미 산산조각이 난 상태였고 그로 인해 기태는 두 친구의 곁을 떠난다. 세 친구 중,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지켜낸 소년은 없었다.
여린 소년들에겐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각자의 무기가 필요했다.
기태는 거친 행동, 거친 언어를 뽐내며 주변을 찍어내리는 것, 동윤은 어른인 척 태연하게, 어린아이들을 보는 듯 이야기하는 것, 희준은 무던한 표정을 유지하며 표현하지 않는 것.
서로의 등을 맞대고 다른 방향을 쳐다보던 소년 셋은 가장 가까운 사이인 듯 보이지만 등 뒤에 있는 친구가 어딜 바라보고 있는진 알 수 없었다. 본인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무기를 든 소년들은 자신을 공격해오는 것들의 방향조차 알지 못했지만 각자의 무기를 힘껏 휘두르며 자신의 마음을 지켜내고 있었다. 그 누구도 잘못했다고 말할 수 없도록 무지향성을 지닌 채 말이다.
사춘기 소년들의 겉모습은 마치 깨진 거울 같다. 위험하고 날카로워 보인다. 깨진 조각을 줍기 위해 손을 뻗으면 따끔하게 상처가 날 듯 말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 깨진 거울들은 작은 충격에도 쉽게 만들어진다. 소년들은 그렇게도 여린 존재였다.
나는 소년들의 겉모습만 보고 자란 여고 출신 여고생이었기에 소년들의 세세한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거칠고 투박했으며, 긴밀하지만 때론 너무도 싸한 그들의 우정을 말이다. ‘남자들은 단순해서 금방 싸우고 금방 풀지 않나?’하고 오해했던 지난 시간이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사춘기 남학생들은 단순하지 않으며 오묘하고 다중적인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의 우리는 너무도 어렸고, 어린아이와 어른 사이 그 어딘가를 빙빙 돌던 주변인이었다. 객관적이고 부드러운 표현보다는 당장 마음속에서 치고 올라오는 내 감정이 중요했고, 나의 고통은 다른 이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장 내 마음을 치고 올라오는 찰나의 감정을 한번 내려놓고 나면 조금은 다른 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우리는 셀 수 없는 실수를 하고, 그 실수에 대해 후회하고, 또 모르는척하며 자라난다. 벅찬 마음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해 깨져버릴 때도, 감당하지 못한 것을 다른 이에게 쏟아낼 때도 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 과정을 수없이 지나 조금은 더 단단하고 두꺼운 마음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게 흔들리는 시기를 무탈히 지나온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엔, 각자의 파수꾼이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