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상화> 리뷰 후기 해석 / 허우 샤오시엔, 양조위 신작
영화 <퀴어> 리뷰 후기 해석 /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신작 로맨
개봉일: 2026.02.04.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14분
감독: 허우 샤오시엔
출연: 양조위, 하다 미치코, 이가흔, 유가령
개인적인 평점: 3.5 /5
쿠키 영상: 없음
19세기 말, 아편전쟁 이후 상하이는 국제 무역항으로 자리 잡는다. 중국은 영국에 차와 비단을 수출했고 영국은 경제적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중국에 아편을 대량으로 유입시켰다. 그 결과 상하이는 번성하는 항구 도시이면서 동시에 아편과 향락이 뒤섞인 쾌락의 도시라는, 두 얼굴을 갖게 된다. <해상화>는 바로 이 양면적인 도시를 배경으로 가장 모순적이고 양면적인 감정인 ‘사랑’을 들여다본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상하이의 고급 유곽에 불이 켜지고, 상하이의 꽃이라 불리는 기녀들이 손님을 맞이한다. 오늘날 ‘꽃’이라는 비유는 다양한 의미로 읽히지만, 당시에는 대부분 ‘아름다움으로 평가되고, 남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존재’라는 의미로 여성을 꽃에 비유하곤 했다. 유곽을 찾은 남자들은 돈을 손에 쥐고 꽃을 고르듯 기녀들을 선택한다. 그리고 실없는 농담과 웃음으로 밤을 지세운다.
진정한 감정이라곤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이 공간에서 주인공 왕은 나름 진중한 태도로 연인 ‘소홍’을 독대한다. 하지만 흔들리는 촛불 아래, 왕과 소홍의 얼굴은 반쯤 어둠에 잠기고 그들의 말과 표정은 진심과 거짓 사이를 미묘하게 오간다. <해상화>는 이 미묘한 간극을 아주 가까이서, 진득하게 응시한다.
이 진득한 시선은 영화의 오프닝 장면에서부터 드러난다. <해상화>의 오프닝 신은 약 8분에 달하는 롱테이크로 구성된다. 남자들이 기녀들을 세워두고 영양가 없는 수다를 떠는 사이, 카메라는 천천히 방 안을 훑는다. 이때 카메라는 남자들의 얼굴 바로 앞이 아니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선 거리에 위치한다. 화면의 가장자리에 기녀들의 모습이 걸리고, 그 사이에 남자들이 위치한다. 마치 기녀들 사이에 서서 남자들을 지켜보는 사람의 시선처럼 말이다. 이로 인해 관객들은 영화 속 세계에 자연스레 스며들게 된다.
영화는 오프닝 신의 프레임 구성을 통해 몰입감을 끌어올린 후, 본격적으로 진득하게 인물들을 훑기 시작한다. <해상화>는 인물들의 대사가 아닌 프레임 안을 드나드는 움직임을 통해 감정과 관계를 표현한다. 왕이 소홍의 방을 찾아가는 장면을 보면 두 사람은 한 프레임 안에 함께 앉아 있다가도 한 사람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른 한 사람이 화면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잠시 후 다른 한 사람이 다시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며 거리가 좁혀지지만, 카메라는 그 순간을 오래 보여주지 않고 다음 신으로 넘어가 버린다. 가까워질 듯하다가도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는 두 사람의 관계는 이런 식으로 반복해 암시된다.
왕과 소홍은 손님과 기녀로 만남을 시작하지만 왕은 소홍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왕은 계속해서 소홍을 두드리고, 소홍도 마음을 열고 함께 마주 앉아 고기 죽을 나눠먹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현실의 벽 앞에서 멈춰 선다. 왕은 여러 여자를 만나도 되는 고위 관료고 소홍은 여러 남자를 만나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기녀다. 왕에게 ‘시집을 오라’는 말은 가벼운 제안일 수 있지만 소홍에겐 인생이 걸린 선택이다.
왕이 소홍이라는 꽃을 품어줄 든든한 땅이라면 인생역전 신데렐라 스토리가 될 수 있겠지만, 만일 왕이 계속해서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라면 소홍은 그곳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해상화(海上花)의 불안정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불행히도 영화는 ‘왕이 어떤 남자인지’ 정확히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소홍은 자신의 진심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고 두 사람 사이에는 혼란만 남는다. 왕이 소홍의 방을 뒤엎는 장면에선 유일하게 촛불이 꺼지는데, 이때 잠시 왕의 진심이 보이는 듯하지만 다시 촛불과 함께 화면이 밝아지자 왕은 그 어떤 감정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린다.
<해상화>는 이 복잡한 관계의 결말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왕과 소홍의 관계를 뒤흔든 사건의 진실(배우와의 밀회가 진짜인지, 오해인지) 조차 분명히 보여주지 않은 채, 그저 누군가는 떠났고 누군가는 남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비슷한 관계를 반복하고 있는 풍경만을 보여준다. 유곽 안에선 왕과 소홍의 혼란한 로맨스 외에도 여러 관계가 이루어지지만 결국 남는 것은 비슷하다. 남자들(왕, 주도령)은 떠나고 기녀들은 그 자리에 남는다. 시간과 계절의 흐름을 알 수 없는 유곽 안에서 만남과 이별은 계속 반복된다.
영화는 이 끝나지 않는 기녀들의 밤을 응시한 채 멈춰 버린다. <해상화>는 그 어떤 관계도 제대로 정의해 주지 않는다. 그저 허공을 떠도는 마음과 끝나지 않을 듯한 그들의 밤을 조용히 바라보며 미묘한 여운과 의문을 남길 뿐이다. “이 시점에 그/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관객 스스로 내릴 수밖에 없다.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을 나섰을 때 이러한 의문과 “이상한 낮잠을 자고 깨어난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새 까무룩 잠들어서 내가 지금 본 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잠시 헷갈리게 만드는 그런 낮잠. <해상화>는 이런 낮잠처럼 ‘내가 본 것이 사랑인지 아닌지조차 분간하기 어렵게 만드는’, 그런 미묘한 낮잠 같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