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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Aug 17. 2020

<보희와 녹양> - 소년이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방법

[영화 후기,리뷰/ 왓챠,여름, 성장, 한국 독립 영화 추천/결말 해석]

                                                                              

보희와 녹양 (A Boy and Sungreen)

개봉일 : 2019.05.29.

감독 : 안주영

출연 : 안지호, 김주아, 서현우, 신동미, 김현빈, 김소라


소년이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방법


티 없이 맑고 진한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 같은 날에 태어나 평생을 함께한 소년과 소녀의 새로운 모험이 시작된다. 내가 겪고 있는 현실의 여름은 지독한 장마와 타들어갈듯한 햇빛, 도저히 없어지지 않는 습기..로 그득하지만, <보희와 녹양>에 녹아있는 여름은 싱그럽고 풋풋하며, 신선하다. 이 영화는 여름에 대한 기억을 조작하는 영화임이 틀림없다. 근데 웃기게도 <보희와 녹양>을 보며 나도 모르는 새 ‘이 영화는 싱그러운 여름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여름이 돌아올 때쯤 이 영화가 다시 생각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14살 소년, 소녀의 눈에 비친 세상은 궁금한 것, 알고 싶은 것들로 가득 차있다. 14살 소년 보희, 14살 소녀 녹양이는 각자의 상처와 결핍을 갖고 있지만, 서로의 상처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무시하는 것이 아닌, ‘너의 상처’라는 프레임을 눈에 걸지 않은 채 온전한 너의 모습만을 바라본다. 순수하게 반짝이는 눈빛을 나누는 소년과 소녀는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다.




올해는 지난한 장마와 더위, 전 세계적 위기까지. 너무도 힘든 여름으로 기억될듯하다. 작년처럼 여름의 향취를 흠뻑 느끼긴 어렵지만, <보희와 녹양>이라는 영화 속에 담긴 싱그러운 계절과 풋풋한 소년소녀의 작은 모험을 함께 떠나보는 건 어떨까. 추천해본다.




 보희와 녹양 시놉시스


"꼭 뭘 해야 돼? 찾고 싶어서 찾는 거지!"

모든 것이 두렵고 어려운 소심한 중학생 보희와, 두려운 것 하나 없는 씩씩하고 당찬 녹양.

한날한시에 태어난 둘도 없는 단짝★절친★베프 보희와 녹양의 좌충우돌 모험이 시작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한날한시에 태어난 보희와 녹양이는 둘도 없는 절친이다. 보희는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 들어갔을 만큼 연약했고, 녹양이는 4.4kg의 튼튼한 우량아였다. 사주를 풀어본다면 비슷한 운명을 타고났을듯한 두 아이는 의외로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보희는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녹양이는 영화에 집중하지 못한 채 편안한 좌석을 침대 삼아 짧은 잠을 잔다. 보희는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하지만, 녹양이는 거침없고 솔직하며 발랄하다. 조심스럽고 소심한 고양이 같은 보희와 궁금증이 생기면 어디든 단숨에 달려갈듯한 토끼 같은 녹양이. 두 아이는 사춘기에 접어들고, 저 멀리 미뤄둔 궁금증에 한걸음 다가간다.



보희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고, 녹양이는 아빠,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보희의 엄마가 말하길 아빠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보희의 엄마는 보희를 키우기 위해 미용실을 열었고, 홀로 시간을 보낼 보희를 위해 남희 누나를 소개해 준다. 보희는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보희 누나를 무서워했고, 학교나 학원에선 다른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그런 보희에게 먼저 손을 내민 건 녹양이었다. 보희는 무방비 상태인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보희를 보며 “얘는 절대 날 버리지 않겠구나”라는 믿음을 느낀다. 그렇게 보희와 녹양이는 가장 친한 절친 사이가 된다.



녹양이는 보희와 대화를 나누며 휴대폰으로 영상을 촬영한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하나 둘 영상을 찍다 보면 졸업할 때쯤이면 영화 한 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녹양이의 생각이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촬영하고 있던 녹양이에게 보희가 “어쩌면 아빠가 살아계실 수도 있을 것 같아”라며 흥미로운 주제를 꺼냈고, 녹양이는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며 보희의 여정을 촬영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녹양이의 시선으로 또는 보희의 시선으로 이 작은 모험을 지켜보게 된다.



보희에게 엄마 옆에 서있는 낯선 남자는 거부감이 드는 존재이자 큰 충격이었다. 아빠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우리 엄마 옆에 아빠가 아닌 다른 남자라니. 보희는 나무를 사이에 두고 엄마와 아저씨를 바라본다. 거리감과 벽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충격을 받은 보희는 다시 남희의 집을 찾아가고, 남희의 남자친구인 성욱과 며칠 밤을 함께 보낸다. 성욱은 남희의 남자친구인 인물로 보희에게 진실된 조언을 건네는 인물이다. 부모의 존재조차 모른 채 보육원에서 자라온 성욱은 어린 시절의 결핍을 딛고 어른이 되었다. 완벽한 존재는 아니지만 든든한 어른인 성욱은 보희에게 가장 큰 조력자이자 보호자가 된다.


                                                                              

“아니, 그냥 좀 슬퍼 보여서"
“어른들은 원래 다 그렇지 않냐?”


보희는 아빠를 찾기 위해 남희의 서랍에서 찾은 편지 속 주소를 찾아간다. 보희는 아빠 대신 마주친 이상한 아저씨를 보며 어딘가 슬퍼 보였다고 말한다. 녹양이는 “어른들은 원래 다 그렇지 않냐?”라고 답한다. 보희에겐 어른들의 어딘가 슬퍼 보이는 모습이 아직 익숙하지 않다. 녹양이와 함께 한강을 바라보며 엄마의 슬퍼 보이던 모습을 떠올리던 보희는 아빠를 찾는 게 맞는 걸까 고민하기 시작한다. 



아빠를 찾을 수 있을까? 만약 찾았는데 아빠가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지? 보희는 새로운 고민에 직면한다. 아빠가 훌륭한 어른, 위인이길 바라는 것도 아닌 나쁜 사람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지만, 보희는 어딘가 슬퍼 보이는 어른들과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며 고민을 갖게 된다. 보희가 고민에 빠진 채 틀어 둔 TV에선 때마침 가족애가 뛰어난 늑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이가 크기도 전에 훌쩍 떠나버린 보희의 아빠. 가족애가 뛰어난 늑대. 두 대상이 더욱 비교된다. 고민은 끝없이 쌓여가고, 보희는 아빠를 만나는 게 무섭다고 말한다. 



상욱은 보희 엄마의 미용실을 찾아간다. 보희의 등쌀에 밀려 미용실에 들어간 상욱은 보희 엄마에게서 보희의 아빠와 보희에 대한 마음을 듣게 된다. 사랑하는 아들이 매일 밤 아빠를 기다리는 걸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 그 기다림을 멈추기 위해 거짓말을 한 죄책감. 하지만 언제나 아들을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 상욱은 보희 엄마의 숨겨둔 마음을 듣는다. 보희 앞에서 가볍게 웃으며 엄마의 미용 솜씨를 얘기하던 상욱은 보희와 함께 목욕탕에 간다. 엄마와 함께 여탕을 갔던 것 외엔 목욕탕에 대한 기억이 없는 보희는 자연스레 여탕으로 입장한다. 상욱은 그런 보희를 데리고 남탕으로 입장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학교에서 싸움을 하고 온 보희를 보고는 먼저 사과를 해야 한다며 ‘보희의 형’으로서 승현의 집으로 향한다.



상욱은 태어나자마자 보육원에 맡겨진 아이였다. 평생 가족의 보호,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존재. 깊은 결핍을 느끼며 자랐던 상욱은 어느 날 “나는 절대 저들이 원하는 애가 될 수 없겠구나”라는 현실을 깨닫는다. 그 후 어른들의 눈에 들기보단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온 상욱의 앞에 보희가 나타난다. 아빠를 찾겠다며 노력하는 어린아이. 상욱은 처음엔 “아빠 찾기 안 했으면 좋겠어”라며 보희를 말리지만, 보희와 보희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후 보희의 형이자 아빠 같은 존재가 되어준다. 



상욱이 일하는 호프에 간 보희와 녹양이는 칵테일을 마시며 이야기를 한다. 맛있다며 칵테일을 신나게 마시던 보희는 살짝 술에 취한 채 “녹양이처럼 되고싶었다”라고 말한다. 보희는 어디서나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녹양이의 모습을 부러워했고, 녹양이처럼 되고 싶어 한다. 반대로 녹양이는 보희를 부러워한다. 녹양이는 엄마의 얼굴조차 모르고 찾을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보희는 아빠를 찾아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녹양이는 보희가 아빠를 찾아 떠나는 과정을 모두 기록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의 노력이 닿은 것일까. 드디어 보희 아빠의 존재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언제나 ‘보희’라는 주인공을 영화에 등장시키는 영화감독. 어딘가 낯이 익은 그 남자. 보희와 녹양이는 보희 아빠의 영화를 보러 영화관으로 향한다. 영화 주인공의 이름은 보희. 영화 속 보희의 아빠는 “보희야, 가자”라며 보희를 부르고 있다. 보희의 아빠도 보희를 그리워하고 있었던 걸까?. 영화가 끝난 후 보희는 녹양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 후, 아빠의 뒤를 따라간다. 


                                                                        

제가 보기 싫어서 오지 않으신다고 생각했어요


보희는 아빠의 영화를 본 날, 그 이후로 아빠의 존재에 대한 죄책감과 미련을 접는다. 매일 밤 내가 싫어서 아빠가 오지 않는 것일까?’ 고민하며 앉아있었던 놀이터 그네에서 아빠의 기억을 마주한 보희의 옆으로 아빠가 그린 엽서들이 흩날린다. 아빠의 유일한 흔적이었던 그림엽서가 남김없이 날아가고, 보희는 아빠의 선택을 받아들인다.



돌아온 보희의 생일, 보희는 엄마에게 “그 아저씨 아직도 만나?”라 묻고 연이어 “나 이름 안 바꿀래. 나쁘지 않은 것 같아.”라고 말한다. 아빠의 선택을 받아들인 보희는 한층 성장했고, 새로운 인연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그리고 매일같이 이상한 별명으로 놀림당하던 자신의 이름이 아빠가 남긴 가장 큰 사랑의 흔적이라는 걸 알게 된 보희는 이름을 바꾸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보희는 아빠를 찾아 떠나며 새로운 인연을 만났고,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아빠가 왜 떠나게 됐는지, 아빠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매일 밤 ‘나 때문에 아빠가 돌아오지 않는 걸까?’ 고민했던 놀이터 그네를 벗어난 보희는 절대 나를 외면하지 않을 소중한 친구와 함께 더욱 넓은 곳으로 발을 내디딜 준비를 마쳤다.



녹양이는 보희에게 보희의 여정을 담은 짧은 영화를 선물한다. 영상 속 보희는 아빠에게 어떤 말을 먼저 전해야 할지 고민하며 겨우겨우 “저는 이보희입니다.”라는 인사를 건넨다. 삐죽거리며 겨우 한마디를 꺼내던 수줍은 소년은 푸릇한 여름이라는 계절을 지나 가을을 맞이했고 조금 더 어른이 되었다.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고, 소년은 자신의 상처를 마주한다. 망설이고, 외면할 때도 있었지만, 용기 내 상처를 마주하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한다. 그리고 소년은 조금 더 성숙해진다. 언제든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 같은 든든한 친구와 함께라면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은 보희와 녹양이의 이야기. <보희와 녹양>. 싱그럽지 못한 올해 여름이지만.. 이 영화 속 푸릇한 여름의 향취를 느끼며 이번 여름을 무탈히 지날 수 있길 바란다.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hkyung769/

블로그 : https://blog.naver.com/hkyung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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