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타인이 된다

by 호텔몽키

이 얇은 플라스틱 카드 한 장.

이게 뭐라고, 이걸 손에 쥐고 호텔 복도를 걸을 땐 꼭 기분이 좀 묘해집니다.


센서에 카드를 가져다 대고, '삑-' 하는 그 짧은 기계음.

그리고 묵직한 문을 밀고 들어갈 때 나는 '딸깍-' 하는 그 소리.


저는 그 소리가... 뭐랄까.

일상에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는 소리 같아요.

지금까지 나를 쫓아오던 모든 것들이, 저 문밖에서 잠시 멈춰 서는 소리.


문을 열고 딱 들어서면, 그 특유의 냄새가 있죠.

낯선 카펫 냄새 같기도 하고, 규격화된 청소용품 냄새 같기도 한.

솔직히, 그게 '좋은' 냄새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 낯선 공기를 훅 들이마시는 순간,

'아, 이제 시작이구나.'

그런 기분이 들죠.


방금 전까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나'는,

수백 개의 이메일을 걱정하고, 내일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던 '나'였습니다.

그런데 이 문이 쿵, 하고 둔탁하게 닫히는 순간.


저는 그냥 '305호 투숙객'이 됩니다.

아니, 이름도 없죠. 그냥 '투숙객'이에요.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도 아무를 몰라요.

이 완벽한 익명성.


이 방에선, 엉망으로 신발을 벗어 던져도 돼요.

가방도 그냥 바닥에 휙 던져놓고, 그대로 침대에 '풍덩' 뛰어들어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죠.

TV 소리를 켜놓고 잠들어도 되고.


가만 보면, 우리가 그 얇은 카드 키에 기대하는 건...

사진에서 본 멋진 인테리어가 아닐지도 몰라요.

그냥, 그 방 안에서

잠시 '내가 아닌 나'가 될 시간.

아니, 어쩌면

가장 '완전한 나'가 될 그 시간.

'딸깍' 하는 그 소리.


그건 그냥 문이 열리는 소리가 아니에요.

일상의 볼륨을 '음소거' 하는 소리입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