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칫솔에게도 이름이 있다면

by 호텔몽키

호텔 욕실, 차가운 대리석 선반 위에는 늘 그들이 있다.
반투명 비닐 포장지에 몸을 숨긴 일회용 칫솔, 손바닥보다 작은 비누, 종이처럼 얇은 슬리퍼.
우리는 너무나 익숙하게 그들의 포장을 뜯고, 하룻밤의 피로를 그들에게 기꺼이 넘겨준 뒤, 다음 날 아침이면 아무 미련 없이 그들을 쓰레기통에 남겨두고 떠난다.
그들에게는 이름이 없다.
그저 ‘어메니티(Amenity)’라는 무성의한 이름으로 불릴 뿐이다.


만약 저 작은 칫솔에게도 이름이 있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까.


그의 이름이 ‘하루’라고 상상해 본다.
그는 어둠 속에서 아주 오랫동안 누군가를 기다렸다.
마침내 한 여행자가 그의 포장을 뜯는 순간, 그의 짧은 생이 시작된다.
그는 여행자의 입 안을 구석구석 여행하며 지난 여정의 고단함을 닦아내고, 낯선 도시의 음식 냄새를 지워준다.
여행자가 거울 앞에서 짓는 가장 솔직하고 지친 표정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하는 유일한 존재.
그것이 ‘하루’가 가진 단 하룻밤의 운명이다.


그 옆에 놓인 작은 비누의 이름은 아마 ‘순간’ 일 것이다.
그의 몸은 여행자의 손에 닿는 아주 짧은 순간, 부드러운 거품으로 부서지며 온전히 사라진다.
여행자의 손에 남은 낯선 도시의 먼지와 긴장을 씻어내기 위해, 그는 기꺼이 자신의 형체를 포기한다.
그의 소임은 여행자의 가장 사적인 순간에 스며들어, 위로의 온기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다.


이름 없는 존재들은 그렇게 여행자의 가장 내밀한 하룻밤을 묵묵히 지탱한다.
그들은 이전의 여행자를 기억하지도, 다음 여행자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오직 지금, 이곳에 도착한 단 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소멸할 뿐이다.


어쩌면 그들의 운명이 여행의 본질과 가장 닮아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역시 낯선 도시에서 단 며칠간 머무는 ‘일회용 여행자’가 아닌가.
그 도시의 일부가 되기 위해 잠시 머물지만, 결국에는 모든 것을 남겨두고 떠나야만 한다.
칫솔과 비누가 여행자의 흔적을 지워주듯, 우리도 여행지의 기억을 가슴에 묻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체크아웃을 하며 돌아선 욕실.
그곳에 남겨진 이름 없는 존재들에게 마음속으로 조용한 인사를 건넨다.
나의 가장 피곤한 밤을 온몸으로 끌어안아 주었던 나의 작은 친구들.
그들의 이름은 비록 ‘어메니티’일지라도, 그들이 내게 건넨 위로는 결코 일회용이 아니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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