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연년생, 엄마의 염려

낳을수록 늘어가는 걱정과 사랑

by 이혜미인

나의 임신 소식에 엄마는 온전히 기뻐하지 못했다. 앞으로 딸이 겪어야 할 앞날이 그려져서였을까, 혹여 자신의 성향을 닮아 임신이 고되진 않을까, 육아로 인해 자신의 것들을 하나둘 포기하게 되진 않을까, 엄만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고 했다. 기쁘지만 온전히 기뻐할 수 없는 엄마의 눈은 ‘꼭 임신했어야만 했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엄마의 성향을 닮은 건지, 나의 임신 생활은 평탄하지 않았고(입덧, 토덧, 먹덧을 넘어 환도, 역류성 식도염, 잦은 위경련, 호흡곤란으로 119에 실려 간 게 셀 수 없다. 남들이 하는 건 물론, 안 하는 것까지 다 해본 임신 생활이었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만 ‘빨리 낳았으면 좋겠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열 달의 시간을 보내고 태어난 아이. 엄만 일전의 생각들을 무색하게 할 만큼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딸이 아이를 낳으면 아이보다 딸이 더 걱정되고 눈에 밟힌다던데, 엄만 아이만 보이는 것 같았다. 나쁘지 않았다. 간혹 서운한 마음이 일기도 했지만, 고맙고 감사했다.

하지만 둘째 이야기만 나오면 아직도 그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본다. ‘둘째를 꼭 가져야 하니?’






출산한 지 5개월이 지났다. 새벽녘부터 계속되는 구역질에 몸의 이상을 느꼈고, 응급실로 향한 나는 또 한 번의 임신을 확인했다.

‘설마’ 했던 것이 ‘현실’이 되자 ‘난감함’이 찾아왔다. 엄마에게 전화했고,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는데도 첫째 때보다 더 큰 엄마의 염려를 느낄 수 있었다. 연년생, 그것도 13개월밖에 차이 나지 않는 연년생이었다. 동년 생이 아닌 것에 감사해야 하나, 나조차 복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는데 엄마는 오죽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마주한 엄만, 온갖 생각에 마음이 어려웠다고 했다. 아직 몸조리도 끝나지 않은 딸이 또 아이를 가졌다. 첫째 아이를 잘 케어할 수 있을까, 몸이 회복될 수 있을까, 둘째를 낳으면 몸조리는 어떡하나, 결국 자신의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건 아닌가, 별의별 생각에 잠을 설쳤다고 했다.






“네가 셋째 아이를 낳아 안고 돌아왔을 때 이 에미가 지었던 표정을 용서하렴. 네가 엄마! 하고 놀라서 내 얼굴을 빤히 보았던 그날이 늘 마음에 맺혀 있었고나. (중략) 저 어린 셋째를 낳는 데 아무 도움도 주지 않았으면서도 아이를 안고 돌아온 너에게 내가 그랬어. ‘어쩌려구! 셋이나 어쩌려구!’ 미안하다, 얘야. 네 셋째에게 미안허구 너에게두. 네 인생인데, 그것도 너는 문제를 푸는 데 놀라운 집중력을 가진 내 딸인데 아무렴 그 문제를 풀어나가지 못할까. 엄마가 잠시 네가 어떤 사람인지를 잊구선 내뱉은 말이었고나.

(중략) 그날 밤에 네가 샤워하러 세면장에 들어가느라 바깥에 벗어놓은 옷들을 집어보았다. 소매 끝이 다 닳은 네 셔츠엔 자둣물이 방울방울 묻었고, 무릎이 벙벙하게 나온 바지는 솔기가 터져 있고, 언제 산 것인지 낡은 브래지어 끈엔 보푸라기가 무성하게 일어나 있고, 돌돌 말린 채 놓여 있는 팬티는 무늬가 무엇이었는지 알아볼 수가 없더구나. (중략) 이리 살려고 공부를 그리했나 싶은 게. 사랑하는 내 딸.

(중략) 일을 다시 할 생각도 안하고 낡은 옷을 입고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그저 아이 키우는 일에 몰두한 채 분주한 너를 뒤에서 바라보는 일이 속상했다. 걸레를 빨아 방을 닦는 너와 눈이 마주쳤을 때 이 에미가 했던 말, 너 이렇게 사냐! 했던 말 말이다. 그 말도 용서해라. (중략) 얘야, 너는 이 에미에게 항상 기쁨이었다는 것만 기억해.”

-신경숙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

밑줄도 긋고 책의 상단을 접어놓기도 했다. 꼭 엄마가 하는 말 같아서 그랬다. 나에게 하고픈 말인데 못 하고 있는 말을 책을 통해 들은 것만 같았다.


생각지 못한 연년생을 출산하고 양육하면서 나를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들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아이들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는 반복되는 루틴에 사색은 사치, 기억력은 감퇴했고, 사고력이 저하돼 지능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육아 외에 ‘일’이 무엇인지 까먹었고 내가 뭘 했던 사람인지 정체성도 잃어갔다. ‘엄마’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생겼지만 온전히 기뻐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나를 힘겹게 했다.


그렇게 내 일과 생각을 포기하고 내려놓고 아이 보는 것에만 전념하는 나를 바라보는 엄마는 어땠을까.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당연하지 않았으면 싶은 마음이었을 거다.



엄만 네가 일을 그만두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딸을 낳아도 같은 마음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혹여 나와 비슷한 삶을 살게 되진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과 애석한 마음. 자녀를 낳게 되면 당연히 겪게 되는 현상들이 꼭 당신을 닮아 그런 것 같다 여기게 되는 그 마음. 엄마가 되면 한 번쯤 생각하게 되는 그 마음이 엄마에게도 닿았던 것 같다. 일을 그만두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말이, 아직도 내 속에 공명을 이루고 있는 걸 보면, 난 아직 일이 너무나도 하고픈, 온전히 나로서 존재하고픈 욕망이 가득한 사람인 듯하다.